경주 낭산 일원에서 통일신라 가릉(假陵) 발견
경주 낭산 일원에서 통일신라 가릉(假陵) 발견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7.02.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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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량의 석재 및 명문기와 등 유물 300여점 발견, 경덕왕의 형 효성왕 가릉으로 추정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통일신라 시대 가릉(假陵, 왕의 죽음이 임박하여 사전에 능침을 만들어 두는 무덤)이 발견됐다.

지난 9일 문화재청은 경주 낭산에서 신라 왕릉에 사용되는 다량의 석재와 건물지, 담장, 도로 등을 확인했고 명문기와 등 300여점의 중요 유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 왕릉 석재 노출 세부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사된 유적은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과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이 발견된 전(傳) 황복사지(黃福寺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약 135m 떨어진 지점의 논 경작지로서,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홍수로 인해 파괴된 신라왕릉과 관련 석재유물(면석, 탱석 등)들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던 곳이다. 

학계에서는 신문왕릉이나 성덕왕비의 소덕왕후릉, 민애왕릉 등과 비슷한 급의 폐왕릉지로 추정되거나, <삼국유사> 기록에 나온 의상대사(義湘大師)의 탑돌이와 관련있는 절인 황복사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지다. 

경주시는 유적의 중요성을 고려해 훼손을 방지하고 폐왕릉지에 대한 앞으로의 복원‧정비를 위해 이번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경주 낭산 동쪽일원 내 추정 고분지에서 확인된 석재 유물은 탱석(면석과 봉토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돌), 면석(기단면이나 석축면을 형성하는 비교적 편평하고 넓은 돌), 지대석(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 놓는 돌), 갑석(대석 위에 올리는 돌), 미완성 석재 등으로 신라 왕릉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적이며 그 주변으로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도로(너비 16~17m) 등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 귀면와(도깨비기와)등 유물 3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해본 왕릉의 지름은 약 22m로, 전(傳) 경덕왕릉(765년)과 비슷한 규모로, 조사 결과,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으로 출토된 점, 후대에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된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판단할 때, 당시 왕을 위하여 사전에 왕릉을 준비하던 도중 어떠한 사유인지 축조공사를 중단하였던 가릉(假陵) 석물로 추정된다. 

가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가릉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 관청이나 특수한 용도의 건물로 추정되고 불교 관련 유물이 나오지 않았고, 관청명으로 추정되는 ‘습부정정(習部井井)’, ‘습부정정(習府井井)’이라고 적힌 명문기와 등의 유구로 봐서 신라 왕경의 행정 조직체중 하나로 알려진 습비부(習比部)와 관련된 관청이었을 가능성도 추정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앞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를 비롯한 신라왕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