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 제자리로 되돌려야
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 제자리로 되돌려야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04.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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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역사 이룬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군은 강탈할 권리 없다

거창국제연극제는 ‘한국판 아비뇽 국제연극제’로 비유될 정도로 국내연극인들이 선망하는 무대다. 교황청 궁전의 마당이나 수도원 등이 거대한 야외무대로 변신하는 아비뇽연극제처럼 거창군의 최고 명소에서 야외공연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1989년 경남지역 연극단체들 간의 화합과 연극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월연극제를 모태로 시작된 29년의 역사를 가진 ‘거창국제연극제’가 크나큰 위기에 빠졌다.

▲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관계자및 연극인 심철종이 기자회견에 앞서 대학로 예술가의집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제공]

그동안 거창국제연극제를 조직, 운영해온 거창국제연극제육성진흥회(이하 진흥회)는 지난 18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거창국제연극제를 살려줄 것을 호소했다.

이종일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장은 “거창군은 거창국제연극제를 강탈하기 위해 거창국제연극제를 태동하고 발전시켜온 연극인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모든 지원을 점진적으로 중단시키는 문화탄압을 하고 있다” 며 “거창군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철회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히 이종일 회장은 이날 “거창군이 예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올해 지역 내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등을 담당하는 ‘거창문화재단’을 세워 ‘거창국제연극제’를 강탈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문제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라며 거창문화재단의 설립 배경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인구 7만도 안되는 거창군에서 오는 7월말이면 연극제가 동시에 2개가 개최될 공산이 크다. 진흥회 측은 오는 7월28일부터 8월15일까지 거창 위천면, 북상면 등에서 ‘제29회 거창국제연극제’를 열고 문화재단 측은 7월28일부터 8월13일까지 거창 수승대 야외극장, 거창읍 일원에서 ‘2017 거창국제연극제’를 진행한다.

이종일회장은 “연극제를 두고 진흥회와 거창군의 갈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가 한 지역 내에서 두 개로 나뉘어 밥그릇 다툼을 하는 것에 대해 군민들도 크게 실망하고 있다. 그래서 진흥회에서 내놓은 대안은 ‘거창국제연극제’의 행사 진행을 맡고, 예산집행을 거창군이 맡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거창군은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종일 회장은 “거창군은 지난 3월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 1억5000만원을 받지 못하도록 악의적인 공문을 보내, 온갖 방해와 횡포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뜻있는 후원인, 연극인들의 후원을 받아 역사성과 전통성을 지속하는 ‘제29회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종일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장이'거창군이 관권과 금권을 동원해 민간인이 만들고 29년의 역사를 가진 거창국제연극제를 강탈하려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종일 회장은 "거창군이 '거창국제연극제'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거창문화재단'을 만들면서 이 속에 포함된 것은 거창국제연극제, 거창한마당대축제 두 개 뿐인데, 거창예총, 민예총, 거창향토민속보존협의회 등 거창문화예술단체의 사업은 모두 빠져 있다. 이게 어떻게 문화재단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거기에 거창문화재단을 만들면서 계약직 공무원 6명을 채용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와 운영비가 2억원이상 더 느는데 군민의 혈세를 군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동안 '거창국제연극제'는 거창군의 명소인 수승대 일원 원학동 계곡에서 펼쳐졌었다. ‘맹인이 물소리만 들어도 천하절경임을 알 수 있는’ 명승지로 알려진 수승대는 남덕유산에서 비롯한 맑은 계류가 지나는 야외공연장으로 가장 큰 매력은, 여름 피서와 예술 문화의 연결고리를 이어준다는 것이다. 또한 크고 작은 가설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위천천 계곡 내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관람할 수 있고, 우리나라 유명극단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독특하고 참신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연극축제로 지역문화를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이종일회장이 그동안 이끌어 온 ‘거창국제연극제’는 공연예술의 세계적인 흐름과 실험정신을 만날 수 있는 연극제로 연극뿐 아니라 마임과 퍼포먼스, 국내외 정상급 연극단체를 초청하여 야외공연을 선보였었다. 또한 거창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상품으로 자리잡아 ‘삶의 질 향상부분에서 천국 최우수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거창국제연극제'를 지켜달라는 이종일회장은 오늘부터 힘겨운 싸움을 해갈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연극인 심철종씨는 “문화예술인들을 옥죄려고 한 거창군은 ‘문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를 거꾸로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사르트르는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의 공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 개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합의도 선행돼야 하며, 문화는 우리미래의 거울이다. 개개인을 넘어 사회를 반영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그는 “이종일회장은 28년동안 거창군의 문화 창달을 위해서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해왔다. 거창군이 오는 7월말 같은 연극제를 협업하지 않고 동시에 개최한다면 거울을 깨는 행위다” 라고 거창군의 행태에 거듭 비판을 가했다.

이 자리에서 "여름이면 항상 ‘거창국제연극제’와 함께 해왔다"는 공윤희(65세)씨는 “문화가 없는 사회는 공허하다. 거창군은 ‘제29회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하여 대내외적으로 연극제의 역사성과 전통성, 연극의 질적 확보를 위해서 그 어떤 관권이나 금권으로도 강탈해서는 안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연극을 좋아하는 나같은 관객들이기 때문"이라고 거창연극제의 파행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날 기자회견 내내 이종일 회장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자리한 연극인들도 하루 속히 문제가 해결돼 거창국제연극제의 위상이 다시 서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얼굴 가득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