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단색화 그 이후' 논의에 '그 이후'가 없다
[발행인 칼럼]'단색화 그 이후' 논의에 '그 이후'가 없다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17.05.08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색화 열풍 사그라질 것' 주장에도 여전히 단색화에 목매는 현실, 화랑 옥션 결탁 원인?

최근 미술계에는 이른바 '단색화 열풍'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한국의 단색화가 인기를 모으고 있고 이에 메이저 화랑들은 그 바람을 타고 단색화 전시를 주로 하며 열기를 계속 이어나가려는 분위기다. 몇몇 사람들은 이 상황을 '미술한류'라고 지칭하며 마치 침체된 미술계가 단색화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단색화 열풍의 시작은 해외에서 열린 비엔날레를 통한 서구의 관심이었다. 해외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경매가의 급등 또한 단색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 지난달 27일 열린 '단색화, 그 이후' 세미나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단색화를 '새로운 한류의 주역'이라고 언급한 후 단색화의 대표 작가인 김환기의 <무제>가 서울옥션이 홍콩에서 개최한 경매에서 48억 7천만원에 낙찰됐고 유채화 ‘12-V-70#172’가 63억 2천만원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연달아 갱신하자 국내의 '단색화 열풍'은 더 거세졌다.

하지만 단색화 열풍이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있었던 '이우환 위작 논란'이 대표적인 그림자다. 이 화백은 위작 논란이 일자 그림이 진품임을 주장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고 오히려 '돈만 밝힌다'는 따가운 질책을 떠안아야했다. 단색화의 대표 작가이자 단색화 바람을 타고 명성을 떨치던 이우환 화백의 명예가 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명암은 드러났지만 단색화의 바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열풍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단색화 열품이 작품의 질보다는 가격에 촛점이 맞춰지다보니 결국 '승자 독식'이 되고 있고 가뜩이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미술계의 고질병이 오히려 더 심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시장과 컬렉션이 다양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한국미슬의 해외진출 전략 세미나 '단색화, 그리고 그 이후'가 열렸다. 아무래도 단색화 열풍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세미나이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다.

미술평론가와 작가, 미술관 및 화랑 관계자 등 12인의 미술계 전문가들이 모여 치러진 이날 세미나에서 화두가 된 것은 승자 독식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다양성을 담은 담론을 만들어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적들이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윤진섭 전 국제미술평론협회 부회장은 "단색화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지나치게 단색화에 기울었다"면서 이 현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에서 단색화 이후의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주가 된 이야기는 '연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였다.

변홍철 그레이월 대표는 단색화 이후로 '민중미술'이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변 대표는 "한국을 방문하는 컬렉터들이 DMZ와 JSA에 가장 관심이 많고 방문하고 싶어한다. 분단 상황이 현대 한국이 가장 큰 특징이듯, 이를 현대미술의 맥락과 접목시켜 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리얼리즘이고, 민중미술"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지적과 대안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세미나의 주된 내용은 지원의 필요성, 그리고 제도기관의 책임이었다.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해외 활동을 위한 지원과 더불어 '큐레이터 위크샵'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왓고 2~3년 임기로 제도기관장의 임용이 경신되는 상황에서는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어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이번 세미나 결과를 보고 "대형화랑의 민중미술 띄우기 작전과 정부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자신들의 임기연장을 위해 협업하는 행사가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정부의 불공정한 예술지원자금지원정책도 문제지만 대형상업화랑과 예술지원기관의 결탁도 개혁해야할 과제"라면서 "상업자본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능있고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정부지원이 돌아가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인사는 "K-POP도 정부 지원 없이 소속사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굳이 정부가 지원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 "상업적으로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장르를 '해외 수출'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지금의 흐름이 '단색화 이후'를 논해야하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단색화 바람'에 머물러있다는 점이며 그 이면에는 화랑과 옥션의 결탁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인기가 있다'는 가장 좋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들을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여기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발상이다. 이름있는 작가들에게만 결국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는 식이다.

김환기의 작품이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자 마치 김환기를 '미술계를 살릴 구세주'인양 표현한 몇몇 언론의 시선이 바로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미술을 상업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니 몇몇 이름있는 작가에만 기대고 당장 돈이 되니까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에만 골몰하는 근시안적 사고는 분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단색화와 민중미술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화랑과 옥션의 결탁이 이뤄낸 결과물이 지금이라면 이것만으로는 쉽게 결말을 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차분하게 '그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