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창극 ‘춘향실록-춘향은 죽었다’ 성이성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창극 ‘춘향실록-춘향은 죽었다’ 성이성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5.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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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이몽룡은 실존인물이었다'. 오래전 방송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알려졌지요. 성이성(成以性, 1595~1664), 당신이 ‘춘향전’ 속의 ‘이몽룡’입니다. 그러니까, 춘향 또한 실존인물이겠지요. 춘향과 몽룡이 실존인물이라는 시각에서, 창극 한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창극은 보통 해피엔딩이지만, 이 작품은 제목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과거에 급제를 하였으나, 암행어사가 되어서 남원에 내려오지 못했죠. 춘향을 구해내지도 못했고, 그녀는 결국 옥사(獄死) 합니다. 

‘춘향실록 - 춘향은 죽었다’(이하 ‘춘향실록’)은 이런 내용을 관객에게 ‘아리고 쓰리게’ 잘 전달한 수작입니다. 눈 오는 겨울, 당신(성이성)이 남원을 찾아오고, 늙은 사내(방자)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됩니다. ‘춘향실록’은 비극이기에, 오히려 그 주제를 강하게 부각됩니다. ‘신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사랑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지기학은 빼어난 연출이었습니다. 이미 좋은 창극을 많이 만든 그인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대한민국 창극연출과 창극 ‘춘향전’의 계보에서 있어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슬픈 이야기를 깊게 전달해줍니다.

기존의 판소리 춘향가의 눈 대목을 살리면서도, 이 작품의 주제에 맞게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압축시켰습니다. 무대 위에 세트가 없는 상태에서 색감이 살아있는 조명(공연화)과 서정과 격정을 오가는 음악(김백찬)이 작품의 입체감을 더해줍니다. 

창극 공연에서, ‘샹송과 단가’가 만났다면 어리둥절하겠죠? 아다모(Salvatore Adamo)가 부른 
눈이 나니네(Tombe La Neige)가 창극에서도 시작과 끝을 장식합니다. 단가 ‘사철가’에선 백설(白雪) ‘펄~ 펄~’날리고 있죠. 창극 ‘춘향실록’은 이렇게 두 노래를 잘 결합시키면서, 관객의 마음에 파고 듭니다. 

연출은 특히 눈(雪)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잘 만들어냈습니다. 마치 단가 ‘사철가’에 등장하는 “월백(月白), 설백(雪白), 천지백(天地白)”을 무대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춘향실록’에서의 ‘눈’을 문법적으로 얘기한다면, 직유(直喩) 혹은 은유(隱喩), 대유(代喩) 혹은 환유(換喩)와 같은 대상(존재)이죠. 무대의 시각적인 면에서도. 관객의 심리적인 면에서도, 이 작품에서의 ‘눈’은 참으로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국립민속국악원의 배우들은 모두 기량이 출중했습니다. 춘향 역의 정승희는 ‘결기가 있는’ 춘향으로서, 판소리 동편제의 특성을 잘 살립니다. 성이성 곧 몽룡 역할은 좀 아쉽습니다. 이 역할을 맡은 김대일은, 창극계에서 대성할 인물입니다. 연출가 지기학의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큼 김대일의 그의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성이성은 아쉽게도 입체적이지 못했습니다. 무대에서 시종일관 감정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창극도 담백해지고, 쿨해져야 합니다. 창극 속에 내재된 ‘신파적 요소’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 작품 자체는 창극에서의 신파적요소를 많이 지워냈는데, 아직 몽룡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성이성,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더 그랬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분명 조선의 신분제도 속에서, 춘향과 같이 있어도, 마음은 계속 불안했고, 춘향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그리움은 여전했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심정을 주변에 내색하기 어려웠겠죠.

이런 모습이 ‘춘향실록’에서 깊이있게 그려질 순 없었을까요? 어쩌면 당신은 춘향의 무덤 앞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게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목숨마저 버린 그녀에 대한 예의였는지 모릅니다. 

이 작품을 꼭 다시 보기 희망합니다. 그 때의 성이성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였으면 합니다. 나이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상태에서, 비슷한 모습을 일관할 순 없을 겁니다. 성이성, 당신이 남긴 아홉 글자가, 창극 ‘춘향실록’을 통해서 더 깊게 그려지길 희망합니다. “사소년사 야심불능매(思 少年事 夜深 不能 寐)”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창극 ‘춘향실록-춘향은 죽었다’, 2017. 5. 5.~7.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