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기숙 한예종 교수 "서울무용협회, 무용계의 싱크탱크 역할 충실하겠다"
[인터뷰] 성기숙 한예종 교수 "서울무용협회, 무용계의 싱크탱크 역할 충실하겠다"
  •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6.2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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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 쇄신과 발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체, 문예위 불공정 심의 반드시 책임 물어야"

지난 12일 남인사마당은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었다. 무용인들은 우리 춤의 시조인 한성준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6월 12일을 '한국 무용의 날'로 제정하고 이날 선포식과 함께 한국무용 공연을 가졌다. 이 날이 있기까지는 행사를 주최한 서울무용협회의 공이 컸다. 그리고 그 서울무용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서울무용협회 회장

1966년 충남 서산 출생.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서울시문화재 위원,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 한국춤평론가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6 한국 최초로 춤자료관 연낙재 개관해 공연자료의 발굴과 수집, 조사연구, 기록 출판을 통해 춤의 정신문화적 가치 창출에 힘쏟고 있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이사, 중구문화재단 이사, 한국전통공연예술학회 부회장, 서울무용협회 회장, 연낙재 관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월 문예진흥기금 심사에서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이 탈락한 것에 충격을 받은 성 교수는 무용계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단체를 구상했고 무용계와 문화계 중진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서울무용협회를 만들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한국무용협회가 있는 마당에 다시 협회를 만든다는 것은 분열'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성 교수는 "세대교체, 다양성의 시대를 반추하면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무용계 제도 및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용의 도약을 꿈꾸며 무용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성기숙 교수. 한국무용의 날 제정을 통해 도약을 시도한 성 교수의 비전을 들어볼 시간이다.

지난 12일 '한국 무용의 날'을 제정하고 선포식과 함께 기념 공연을 가졌다. 한국 무용의 날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고 서울무용협회에서 제정한 이유는?

지난 6월 12일 서울 종로 남인사마당에서 한국무용의 날 제정 및 선포식과 공연을 가졌다.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韓成俊 1874~1941)의 예술정신을 기리고자 그의 생일을 한국 무용의 날로 제정했다. 유네스코는 1982년 근대 발레체계의 확립을 통해 서구 무용발전에 기여한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4월 29일을 '세계 무용의 날'로 제정했다. 전 세계 무용인들은 매년 이 날을 기하여 노베르의 예술정신을 반추하고 있다.

근대 여명기 국권 상실의 길목에서 근대적 예술정신을 투영해 우리 춤의 초석을 다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한성준의 문제의식과 폭넓은 활동은 노베르의 예술정신과 비견할만하다. 서양에 노베르가 있다면 우리에겐 한성준이 있다. 그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기념비적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한국 무용의 날은 한성준의 역사의식과 예술정신을 본받아 온 나라, 지구촌 사람들과 더불어 한국무용의 발전과 진화를 견인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서울무용협회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매년 ‘한국 무용의 날’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무용의 날 원년 행사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 제정의 동기도 궁금하다. 

한국무용학 제1세대를 대표하는 나의 은사 정병호 선생은 생애 마지막을 마을춤복원운동에 매달렸다. 일본의 마츠리, 봉오도리처럼 마을춤운동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춤평단을 일궈오신 월간 춤지 발행인 조동화 선생은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 선생을 조명하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창설(2014)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다양한 조언을 해주셨다.

한성준의 탄생일 6월 12일을 ‘한국 무용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한국 무용의 날’ 제정은 광복 이후 우리 무용사를 이끌어 오신 두 분의 문화지성 정병호, 조동화 선생의 유지를 받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무용의 날' 행사는 民ᐧ官, 세대ᐧ계층을 아우르고자 했다. ‘더불어 춤추기’로 춤의 확장성을 꾀했다. 전문무용단체, 일반인무용단, 장애우무용단, 새터민무용단이 출연했다. 특히 김영종 종로구청장께서 직접 무대에 출연해 우리 춤 전통에 스며있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신을 구현한 특별한 무대였다. 그리고 우리시대 손꼽히는 명무들이 참여했다. 채상묵, 정승희, 박재희, 윤덕경, 박은영, 김충한 등이 재구성 및 지도하고 30~40대 젊은 춤꾼들이 무대에 섰다. 중견무용가 윤미라, 임관규는 직접 출연하여 무대를 빛냈다.

영등포여고 특수학급 장애우학생으로 구성된 비욘드예술단은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최승희의 직계제자 인민배우 홍정화에게 직접 춤을 사사한 탈북무용가 최신아씨의 출연도 주목을 끌었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무용의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기꺼히 참여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한국무용의 날 취지에 공감하셔서 대부분 재능기부로 헌신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님, 이기웅 열화당 대표님 그리고 무용계 원로이신 김매자, 김복희 선생님이 참석하시어 축사와 선언을 해주셨다. 올해 행사는 서울특별시와 종로구에서 후원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 예술정신을 현재화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제1회 한국무용의 날 제정 기념 공연이 열린 종로 남인사 마당에서 서울무용협회 성기숙 회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2017 한국 무용의 날 행사는 서울 종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종로는 조선시대 왕궁문화의 메카이자 예악정신(禮樂精神)의 표상인 궁중무용의 총본산으로 예술적 향훈이 살아 숨 쉬는 역사공간으로 명성이 높다. 전통시대는 물론 현재에도 정치1번지이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유서 깊은 지역으로 그 상징성이 크다. 한성준은 1938년 종로 경운동에 근대 전통예능교육의 산실인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해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는 이번 행사가 열린 남인사마당으로부터 약 200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이처럼 종로는 한성준과 인연이 깊다. 한성준 생일인 6월 12일을 한국 무용의 날로 제정해 선포한 올해 행사는 처음부터 종로라는 지리적 개념을 내포한 공간의 상징성을 고려했다. 그러니까 한국 무용의 날을 제정하여 선포식 및 공연행사를 종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치른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서울무용협회의 창립 목적과 앞으로 어떤 비전과 활동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서울무용협회는 지난 3월 18일 창립됐다. 무용계 제도 및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할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무용계와 문화계의 중진들이 동참했다. 협회 창립 즈음, 국정농단이 야기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폭로와 단죄, 대통령 탄핵인용 등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극심한 대혼란에 빠져있었다. 이러한 격랑의 틈새에서 서울무용협회가 창립됐다. 시대적 필연이라고나 할까. 작년 연말부터 전국을 달군 촛불집회가 뜨거운 혁명(Hot Revolution)이었다면, 우리는 차가운 혁명(Cold Revolution)으로 무용발전을 견인하고 건전한 무용사회 풍토 조성에 기여하겠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담대한 발걸음으로 말이다.

협회 창립동인들은 무용계를 둘러싼 대내외적인 변화를 심상치 않게 봤다. 무용계 내적으로도 성찰이 필요했다. 무용의 지속발전과 정신문화적 가치 창출을 위해 보다 능동적으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우리 협회는 '세계 속의 서울', '서울무용의 세계화'를 표방한다. 알다시피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한민국’과 동등한 지위와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인구가 약 5천만인데 그중 1천만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무용협회는 ‘서울’이라는 지명을 앞세웠지만, 활동범위에서는 서울에만 국한시키지 않겠다. 지리적 개념을 넘어 기호와 표상으로서 ‘서울’과 ‘무용’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브랜드화하려고 한다. 향후 차별화된 활동을 통해 서울무용협회는 좀더 선명한 이미지로 구축될 것이다.

추진과제로는 ▲무용의 제도 및 정책의 공론화 ▲무용인 권익보호와 복지증진 ▲생활 속의 춤, 춤의 생활화 ▲세계무용도시 교류협력 ▲남북무용교류 활성화 ▲무용인프라 구축 등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을 중심 축에 두고서 ▲서울의 무용유산 발굴 보전 ▲서울의 기억 속 무용공간 역사유산화 ▲서울무용의 스토리텔링화 ▲무용인마을 조성 ▲커뮤니티댄스의 지역자치화 ▲자치구 문화재단 연계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3월 서울무용협회를 창립했다. 사실 한국무용협회가 있는데 일부에서는 서울무용협회의 창립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최근 한국사회의 모습과 무용계 상황은 놀랍게도 해방직후의 양상과 닮아있다. 좌우 이념대립, 시대적 혼란, 그리고 세대교체라는 점에서 그렇다. 서울무용협회는 근대 격동의 시기,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예술춤의 탄생과 진화를 견인하고 6ᐧ25전쟁 직후 폐허를 딛고 일어서 새한국무용 건설에 매진한 선배무용인들의 웅건한 예술정신을 계승해 이 땅에 새로운 무용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서울무용협회 창립에 대해 일부 부정적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무용협회가 창립된 지 5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무용계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반면 ‘양극화’, ‘풍요 속의 빈곤’이 초래됐다. 급속한 예술환경의 변화 속에서 세대교체, 다양성의 시대를 반추하면 서울무용협회의 탄생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이다. 서울무용협회의 창립은 한마디로 시대적 요구라고 본다. 어떤 철학과 시대정신을 표방하는가,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갖는가, 그리고 어떤 활동과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 또는 행사는 지양하고 무용계의 제도 및 정책의 싱크 탱크 역할에 충실하겠다. 무용계를 위한 공적인 일이라면 기존의 협회 및 단체들과도 적극 공조하고 협력할 것이다.

▲제2회 한성준예술상을 수상한 국수호 디딤무용단장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상장을 수여받고 있다.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로 몸살을 앓았다. 새 정부에서도 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월 문예진흥기금 심사에 많은 문제가 또 노출됐다. 성교수가 신청한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이 탈락된 것을 규탄하는 20개 무용단체 대표자들이 성명서를 냈다. 그 과정에 부적격자까지 기금지원된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제2의 블랙리스트라 명명하며 계속적으로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오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뜨겁고 또 당사자로서 관계기관에 이의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간의 과정과 문제점,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을 조명해온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의 탈락은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개 무용단체 대표자들은 불공정 심사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번 사건은 블랙리스트 이후에 초래된 문예위의 불공정심의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장르불균형 편파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시공모 문예진흥기금 심의운영규정 위반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은 무용분야에서 유일하게 탈락됐다. 발레, 현대무용 등 서양무용에 약 95% 지원됐고, 순수 한국무용에 5%, 전통무용은 0%였다. 문화사대주의적 예술행정의 결정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용분야 심사위원 2명 모두 현대무용 전공자였다는 점이다. 심사위원 위촉에 관여한 무용분야 예술소위원 역시 현대무용 전공자였다.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다.

특히 2명의 무용분야 심사위원이 부여한 약 40점이라는 점수편차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치명적 결과다. 그들은 4년째 충청남도 매칭지원으로  지역대표공연예술제에서 지속 지원돼온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에 50점대 초반의 점수를 부여했다. 반면 올해 지역대표공연예술제에 신규진입한 크리틱스 초이스엔 90점대 초반의 점수를 부여했다. 약 40점이 차이나는 매우 이례적인 점수인 것이다. 문화계 어떤 분은 무용계는 아직 계몽되지 않은 미개사회라고 비꼬았다. 이성의 작동이 불허된 비상식적 결과라는 것이다. 무용계의 구성원으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2017 지역대표공연예술제 무용분야 총 지원예산은 2,030,000천원이었다. 무용분야에서 신청한 모든 단체가 증액됐다. 총 185,000천원이 증액됐음에도 유일한 전통무용축제인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하나만 탈락됐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정위반이라는 점이다. 문예진흥기금 운영심의규정 제7조 1항에는 심의위원 자격은 '해당분야 10년 이상 경력자'로 명시돼 있으나 전통분야 심사위원 중 자격미달자가 있었다.

그는 또 제척/기피에 해당되나 이 역시 무시됐다. 제8조 제3항 규정위반으로 보인다. 그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에 40점을 부여했다. 이는 2017  지역대표공연예술제 각 사업별 전체 점수 중 최하점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불공정심의에 대해 관계기관에 이의 신청했다. 이번 사건은 수십 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문제점이 지적됐다. ‘제2의 블랙리스트’로 명명되고 있다.

지난 19일 도종환 신임 문체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블랙리스트 지원배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는 청와대->문체부->문예위로 특정인을 배제하라는 하향식 지시였다.

지역대표공연예술제 불공정심의는 블랙리스트 사건이후 발생된 문예위 자체의 규정위반 등 불공정심의가 자행됐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일 수 없다. 당연히 재심의해야 하고 관련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부디 ‘영혼이 있는 공무원’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한성준예술상을 제정해서 현재 3회까지 시상을 했다. 상의 의의와 그동안 수상자 선정 배경이 궁금하다.

2014년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韓成俊. 1874~1941) 선생의 예술적 업적과 춤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성준예술상이 제정됐다. 그동안 창작무용가 김매자ᐧ국수호 선생 그리고 국악학자 이보형 선생이 수상했다. ‘한성준’이라는 거장의 이름이 붙은 상이기에 관심들이 뜨겁다. 심사위원들은 한성준이 단지 기예능인 차원이 아닌, 당대 시대정신을 구현한 창작자라는 관점에서 이 상의 수상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일부 불만인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성준예술상의 정체성을 뚜렷이 한 것만은 사실이다.

한성준예술상은 전통춤의 보존 계승에 기여한 무용가, 한국 춤의 예술미학적 발전에 기여한 안무가를 비롯 전통가무악 분야 연구업적이 뛰어난 학자 및 해외 한민족무용가 중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없다. 대신 다음 년도에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기간에 ‘한성준예술상 수상자 초청공연’을 기획해준다. 이론가 혹은 학자가 수상한 경우엔 학문적 업적을 심층 조명하는 학술심포지엄을 마련한다. 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시상제도라고 의미부여하는 분들도 계신다.(웃음)

심사위원의 권위가 곧 한성준예술상의 권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매년 심사위원 위촉에 제일 많이 고심한다. 시상식에는 무용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여 축하와 성원을 보내주신다. 참 감사한 일이다.

춤자료관인 연낙재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춤 비평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춤’지의 조동하 선생이 평생을 모은 자료를 성교수에게 유산으로 남겼는데, 그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어떻게 운영하고 있고 어떤 일을 해 나갈 것인지도 궁금하다.

▲지난 2014년 9월,동숭동 연낙재에서 열린 한성준 후속세대,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예술인들.

연낙재(硏駱齋)는 2006년 3월 21일 국내 유일의 춤자료관으로 문을 열었다. 월간 춤지 발행인 고(故) 조동화 선생이 평생 모은 근현대 무용자료의 기증이 연낙재 개관의 산파역할을 했다.

연낙재 이름은 조동화 선생이 직접 지으셨다. 연낙재 이름의 시원은 춤지의 집 금연재(琴硏齋)와 인연이 닿아 있다. 금연재의 연(硏)자와 연낙재가 있는 동숭동 뒷산 이름 낙산에서 낙(駱)자를 조합한 것이다. 금연재는 추사 김정희의 ‘一琴十硏齋(일금십연재)’ 현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한 개의 거문고와 열 개의 벼루’를 뜻한다. 그러니까 연낙재에는 학문과 풍류를 숭상하고 즐겼던 옛 선조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뜻이 깃들어 있다.

정병호 선생은 작고하시기 전 소장했던 모든 자료를 연낙재에 기증했다. 최승희 공연자료를 비롯 민속예능자료 등 사료적 가치가 높다. 김진걸 선생, 박외선 선생의 아드님인 마종기 시인 등 많은 분들이 무용자료를 기증했다. 희귀자료는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1872년 진주목사 정현석이 쓴 『교방가요(敎坊歌謠)』가 대표적이다. 연낙재 소장자료는 무용 관련 국내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연낙재는 개관이후 전시, 학술세미나, 인문강좌, 출판, 공연, 영상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승희, 조택원, 김민자 등 춤선구자들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했다.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을 기리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창설했고 더불어 한성준예술상을 제정했다. 3년 전 이기웅 열화당 대표께서 한성준 영상다큐멘터리 상영회 때 축사에서 ‘고독한 기록자’의 운명을 설파하시면서 연낙재의 활동에 힘을 실어 주신 적이 있다. 무용계 및 문화계 어른신들의 관심과 성원, 격려의 말씀에서 큰 힘을 얻는다. 연낙재는 순전히 자비로 운영된다. 이 시대를 사는 학자로서 소신과 신념, 그리고 사명감으로 운영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웃음)

연낙재는 한국무용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 예술적 상상력이 분출하는 춤저장고를 꿈꾼다. 무용을 화두로 한 ‘생각의 집’, ‘정신의 집’, ‘기록의 집’이기를 희망한다. 무용전문박물관으로 전환하려는 계획도 있다. 한국무용사를 살찌우고 춤의 정신문화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유의미한 공간이 되도록 정성을 다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무용계의 일원으로서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강조했다. 그때 얼마나 반겼는가. 국정농단으로 자행된 블랙리스트 사건은 민족사의 불행으로 종말을 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강조했다. 문화예술지원 심의는 좌우이념의 진영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심사과정이 공정한가, 아니한가, 예술행정이 정상적인가, 아닌가의 여부가 잣대가 돼야 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적폐청산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국정철학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문화예산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적재적소에 잘 쓰여지고 있는지 정교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공공기관 및 국공립무용단체의 경우 단체의 이념과 정체성에 맞게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문예위는 공정한 예술지원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조직을 전면 쇄신해야 할 것이다.

시인 출신 문체부 장관이 탄생되어 기대치가 한층 높아졌다. 블랙리스트는 물론이고 제2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철저히 재조사하길 바란다. 새 정부 무용정책의 방향과 로드맵은 폭넓은 여론 수렴을 통해 정교하게 재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문화행정이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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