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자효 시인 “시는 인간 정신의 압축 표현, 사람이 되는 밑바탕이다”
[인터뷰] 유자효 시인 “시는 인간 정신의 압축 표현, 사람이 되는 밑바탕이다”
  •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6.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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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아름다움 알게 해주는 시에 정지용문학상을, 우리 시조만 지켜도 국난 극복한다”

방송 기자로, 정치부 기자와 프랑스 특파원을 거쳐 시사프로 진행과 정치부장, 방송국 이사까지 ‘유자효 기자’의 이력은 이렇게 화려하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삶이 아닌 시인의 삶을 선택했고 그렇게 현역 시인으로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여하고 정지용의 고향 옥천에서 지용제를 열고 있다.

프랑스 특파원으로 있던 당시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렸던 그에게 프랑스가 보여준 문화를 통한 휴식은 그를 문화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어릴 때부터 시를 외우고 이를 통해 시를 생활화하는 프랑스의 문화 수준을 그는 한국에도 접목시키고 싶어했다.

정치인이 결국 그 나라 문화를 보여주는 척도이기에 ‘정치인은 시를 알아야한다’고 말하는 시인, 시조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시조 하나만 있어도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시를 사랑하는 시인, 우리말의 아름다움, 나아가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시의 힘. 유자효 시인이 말하는 시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이제 만날 차레다.

▲ 유자효 시인 (사진=정영신 사진가)

정지용문학상을 해마다 수여하고 지용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이 두 행사의 의의는?

정지용 선생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6.25 때 서울에서 행방불명이 됐다. 하지만 그가 월북한 것으로 오인이 됐고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이 문화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중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에 '해금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많은 문화인들의 노력으로 해금이 됐다. 해금되자마자 바로 연 것이 '지용제'였고 박두진 선생이 첫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회부터 정지용 선생의 고향인 옥천에서 매년 지용제를 열고 있다.

지용제는 한 문화인, 한 개인의 이름을 건 최초의 축제다. 지금 시인들의 이름을 건 축제들의 효시가 지용제다. 정지용문학상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은 정지용문학상이 최초다. 시인의 이름을 건 최초의 축제이자 최초의 문학상. 그것이 지용제와 정지용문학상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문학상의 선정 기준이 조금 독특하다고 하는데

지난 1년간 가장 좋은 작품에 상을 주는데 작가가 아닌 '작품'이 대상이다. 작품성이 높은 시도 좋지만 우리가 상을 주는 시는 '낭송하기 좋은 시'다. 작품성이 좋다해도 낭송이 어려운 시는 상을 주기가 어렵다.

낭송하기 좋은 시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시라는 뜻이다. 정지용 선생이 바로 불모지의 시대에서 아름다운 한국어로 시를 써서 한국의 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린 분 아닌가. 어려운 시보다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시를 알리는 것이 정지용문학상이다.

올해 상을 받으신 김남조 선생의 시 <시계>만 해도 그 시 속에 90년의 인생이 조망되지 않은가. 90 연세에도 이처럼 시를 쓰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시다. 시에서 인생이 느껴지니 작품성도 좋고 여기에 낭송하기도 참 좋다. 이번 김남조 선생의 수상이 많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번에 김남조 선생에게 상을 드렸다.

프랑스 특파원 당시 ‘문화 쇼크’를 받았다고 들었다. ‘쇼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건데

10여년간 방송 기자로 치열하게 살다가 프랑스 특파원으로 갔는데 정말 옆을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숨가쁘게 뛰었다. 저뿐만이 아니라 제 또래들이 다 그랬다. 쉬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고 회사도 쉬는 것을 좋지않게 여기던 때였다. 일하고 밤에는 술마시고 그런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로 갔고 가족들과 이탈리아 카프리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카프리에서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곳의 인상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편하게 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그 아이디어로 점철된 도시라는 것이었다. 전부 쉬는 시설만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이 '휴식은 죄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구나. 휴식은 정말 필요한 것이구나. 이것이 문화구나'였다.

게다가 파리에는 문화 이벤트가 끊임없이 열렸다. 매일매일 연주회가 열리고 공연이 열렸다. 사는 게 이런거구나 싶더라.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자기 뜻대로 살고 싶다며 그런 자신의 삶을 가지고 책을 쓰는 모습도 봤다. 

'한국에 가면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내뜻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이 참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방송사 파업 사태가 벌어지고, 민영방송이 생기고, 그곳으로 옮겨 부장직을 수행하고 하다보니 어느새 나이가 들었네(웃음).

프랑스의 교육은 정말 부러웠다. 유치원에 들어가면 시를 외우게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8개 과목 중 4과목이 국어(프랑스어) 관련 과목이다.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시 100편을 외운다. 프랑스 대통령들을 보면 말을 참 세련되게 하는데 그게 바로 이 교육 덕분이다. 정말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교육이 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시를 알아야한다’는 말을 한 바 있다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거의 시인이다. 아마도 앞에서 말한 교육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퐁피두 대통령도 굉장히 문화적인 인물이었고 데스탱도 문인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철인의 면모를 지녔다.

언젠가 엘리제궁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대통령이 와 있더라(웃음). 대통령이 조용히 들어와서 사람들과 격의없어 웃고 즐기는 모습을 나는 본 것이다. 80년대에(웃음).

프랑스 정치인들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에는 언어의 3요소가 제시되어 있다. 말, 제스쳐, 의상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공식적인 자리를 앞두면 양복에 맞는 넥타이를 골라줄 것을 요청하면서 의상에 신경을 썼다. 올랑드, 마크롱 대통령도 보면 기품이 있다. 이게 바로 프랑스의 문화다.

사람의 말은 인격의 발현이다. 시라는 것은 아름다운 언어를 한데 모은 것이다. 시를 알면 저절로 아름다운 말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인격이 높아지는 거다. 과거 영국의 처칠 수상 같은 분도 보면 상당히 기품이 있고 말도 험하게 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바로 그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정치인의 모습에서 그 나라의 문화 척도가 보인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문화적 소양이 좋은 나라라는 것이 프랑스의 정치인을 보면 나온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모델이라고 본다.

다행히 지금 대통령은 말을 잘하는 것 같다. 이 역시 인격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번에 시인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했는데 드골 정권 시절 앙드레 말로가 정말 많은 역할을 해 왔다. 정치인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잘해주시길 바란다. 도종환 장관이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였다는 점을 기억해달라(폭소).

▲ '시는 사람을 형성하는 밑바탕' 유자효 시인의 믿음이다 (사진=정영신 사진가)

정서적인 부분에서 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지?

시는 예술의 원형이다. 근본적인 원형이다. 언어가 생기기 전에 시가 먼저 나왔다. 순수의 세계가 시의 출발이다. 시에 대한 소양을 갖는다는 것, 시를 공부하는 것, 시적인 표현을 익히는 것은 사람을 형성하는 밑바탕이라고 본다. 

정치인을 보면 참 안타까운 것이 있다. 왜 연설이나 스피치를 할 때 시를 인용하지 않을까? 정치인이 조롱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존경받는 정치인이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시적, 나아가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알라는 것이 아니라 기초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가 바로 시다.

시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않나. 철학자 니체도 시인이었고 석가나 예수도 시를 통해 말씀을 전했다. 인간의 고양된 형식을 압축적으로 표현했기에 이들도 시로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 시뿐만 아니라 외국의 유명한 시들도 읽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 그 동안 천재 시인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들을 잘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국제펜 부회장 때 전통시조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다. 전통시조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추진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와 시조를 같이 써왔다. 우리나라가 700년을 이어가는 장르가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한국문화의 아이콘은 시조라고 본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좋은 글이 있고 그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시조라는 장르가 있다. 이는 엄청난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이다.

앞으로도 시조는 발전할 것 같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시조를 써야한다는 인식도 생기는 것 같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실제로 시조를 쓰셨고 시조백일장도 열었는데 앞으로 우리 정부도 시조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은 시조 시인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 순간 시조는 세계적인 문학이 될 수 있을거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은 시조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펜에 있었을 때 회의를 한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었고 세계전통시협회가 만들어졌다. 10여개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발상지고 종주국이다.

한국은 시조, 중국은 한시, 일본은 하이쿠, 유럽은 소네트 이렇게 정형시가 있지 않나. 자유시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런 정형시를 살리고 발전시키자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하이쿠의 경우는 한 줄로 마무리하는데 그 한 줄도 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웃음). 그럼 시란 무엇일까? 외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최고의 시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침묵‘이 최고의 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옴‘이라는 단어에 우주의 전 질서가 잡혀있다고 하는데 그 상태가 바로 최고의 시가 아닌가싶다. 압축하고 압축해서 결국 한 마디로, 더 나아가서는 침묵으로 표현하는 것. 그게 시의 본령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 지난 5월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는 유자효 시인

시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당연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700년을 이어왔잖나. 다른 장르는 다 없어졌다. 시조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장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도 고조선 때부터 시조가 불러져왔다. 그렇기에 시조는 한국인이 필히 가져야하고 우리의 인문학에 있어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시조만 지켜도 국난 극복 충분히 가능하다. 문학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문학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시조다. 우리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될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지면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그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동시화집을 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까 동시가 쓰고 싶어지더라. 또 언젠가 ‘문학의 완성은 아동문학’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나 동시는 나이가 들어도 기억하잖나. 그래도 50년 가까이 시를 쓰니 자연스럽게 동시가 몇 편 있던 것 같더라. 이왕 시집을 내보자고 작심하고 썼다. 나이가 칠순이 되고 손자도 보고 해서 의도적으로 쓴 게 50편 정도 됐다.

그런데 동시는 아기들도 볼 수 있어야하지 않나. 그러려면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침 친분이 있던 전준엽 화백에게 부탁했더니 하겠다고 하더라. 작업한 뒤 전 화백이 시화전을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저는 거절했지만 전 화백이 ‘그건 내가 다 준비하겠다’면서 시화전도 갖게 됐다. 오프닝 날이 제 생일이기도 했는데 아는 친구들 몇 명 불러서 ‘그림이 있는 생일파티’를 하게 됐다(웃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도종환 장관에게 한마디를 하자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은 시인이었고 이제 장관직에 올랐으니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좋은 시인이 꼭 좋은 행정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했다고는 하지만 행정은 그렇게 익숙한 일이 아닐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고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전 정권의 시행 착오를 극복하고 문화의 격을 높이는 장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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