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분단의 상처에 뿌려진 꽃비, 송창 ‘꽃 그늘'展
[전시리뷰]분단의 상처에 뿌려진 꽃비, 송창 ‘꽃 그늘'展
  • 조문호 기자/사진가
  • 승인 2017.08.2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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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4일까지 학고재 전관에서 열려

얼마 전부터 민중미술이 새삼 뜨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뒤늦게 미술의 가치를 알아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민중이란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백성의 삶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꿈 Dream, 2013,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259x388cm 작품을 배경으로 선 송창 작가. (사진=조문호)

민중미술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들끓음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에 의해 예술이 사회를 향한 발언으로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성완경, 김정헌씨 등 10여명의 미술인들이 힘을 모아 ‘현실과 발언’이란 운동을 펼칠 즈음, 송창을 비롯하여 박흥순, 이명복, 이종구,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씨도 ‘임술년’이란 민중미술 단체를 만들어 나선 것이다. 

▲송창, 굴절된 시간 Refracted Time + 미사일 Missile, 2016, 포탄에 아크릴릭, 우레탄페인트, 조화 Acrylic, urethane paint, artificial flowers on bombs, 가변크기 Size variable

80년대의 한국 정치사는 강압적인 독재 정치를 일삼아온 지배 권력과 이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시민들은 물론 예술가들의 격렬한 투쟁으로 얼룩진 시련의 역사였다. 그 핍박과 가난에도 버텨 온 민중작가들이 뒤늦게나마 인정받아 화단의 주체가 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학고재’에서 “꽃그늘”을 보여주는 송창 역시 이미 작품 값이 만만찮은 민중미술의 대가 신학철, 황재형, 이청운, 강요배씨와 함께 어깨를 겨눌 수 있는 핵심 작가이다.

▲송창, 그곳의 봄 The Spring of That Place, 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Oil, artificial flowers on canvas, 194x379cm

송창은 전쟁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인 분단의 풍경을 그려왔다.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파주, 연천, 포천, 철원 등지의 전쟁의 상처가 또렷한 도시를 여행하며 상처의 딱지를 하나하나 채집한 것이다. 틈이 나면 공원묘지와 추모공원에 놓인 낡은 조화도 수거했다. 비바람에 얼룩진 조화를 씻어내 작품에 덕지덕지 붙였는데, 그 꽃들이 그가 그린 유화 속에 다시 피어난 것이다. 전쟁과 죽음 속에 피어 난 조화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꽃들 사이사이로 유골과 날카로운 쇠못의 자취들이 번득거린다. 냉기 어린 분단의 땅 위에는 음울함과 희망이 뒤섞인 채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작가는 분단의 현실과 안타까운 죽음에 바치는 헌화라고도 했다.

▲송창, 꽃그늘 Flower-Shade, 2017, 나무 실탄박스, 연습용 포탄 및 실탄, 조화 Wooden ammunition box, projectiles and ammunitions, artificial flowers, 가변크기 Size variable (1)

전시장 본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품 ‘꿈’이 웅장한 힘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경기도 연천 지역의 주상절리다. 용암이 굳어 알려진 곳이지만, 송창은 이곳에서 현재의 모습이 아닌 과거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을 본 것이다. 작품은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포연 자국과 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미처 다 짓지 못한 교량의 모습이 전쟁의 폐허를 재현하고 있다.

▲송창, 연천발-원산행 From Yeoncheon to Wonsan, 201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21x259cm

‘연천발 원산행’이란 작품은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그리고 지난해 작업한 '운명'은 북한 미사일과 연천 주상절리를 대치시킨 것이다. 북한 포탄이 떨어졌던 곳을 그린 그 작품은 아름다워도 꽃그늘처럼 그늘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품들은 대체로 농밀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기념비적 주제를 다룬 몇 작품들에서 그런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 예인 “그곳의 봄”(2014)과 “등록문화재 408호”(2014)는 서부전선에서 전사한 유엔군의 시신을 화장하던 화장장 시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장장에 흩뿌려져 있던 조화를 작품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비판하며 사라지고 잊혀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송창, 등록문화재 408호 The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umber 408, 201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27.3x241.8cm

그는 한 때 독산동 근처 시흥의 산동네와 당시 난민 천막촌이 자리 잡고 있던 강남, 그리고 난지도 매립지 등을 그리기도 했다. 철거민과 빈민들의 끔찍하고 잔혹한 생활상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시가 토해내고 밀어낸 더러운 쓰레기 산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지도-매립지’(1984)는 황량한 매립지를 배경으로 격앙된 인간 군상이 그로테스크하게 뒤엉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립지와 군중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송창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것이다. 아름다웠던 난지도의 풍경은 오간데 없고 검붉은 하늘과 대지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만 남았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붉은 쓰레기 더미 너머로 푸른 신도시의 풍경도 어렴풋이 보인다.

▲송창, 난지도-매립지 Nanjido - Landfill, 1984,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2.1x291cm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부분을 작품 속에 담는 온 송창은 회화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사용을 통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한 편으로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침울하고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푼 희망도 담겨 있다.

▲송창, 운명  Destiny, 201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81.8x287.3cm

열일곱 번째 열리는 송창 개인전 “꽃그늘”은’학고재‘(02-720-1524)전관에서 40일에 걸쳐 열리는 대형 전시다. 전시구성도 송창 작업 세계를 연도순으로 살펴볼 수 있게 펼쳐 놓았다. 본관은 조화를 사용한 2010년 이후의 신작 위주로 전시되고, 신관 지하 2층에서는 ‘매립지’ 시리즈를 비롯하여 분단을 다룬 2010년 이전의 대표작과 초창기 작품을 전시한다. 대작중심의 신작에서부터 초창기 작품에 이르기 까지 총38점이 전시되고 있다. 오는 9월24일까지 열린다.

*사진제공=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