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되다' 뫼르소를 만나다
'남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되다' 뫼르소를 만나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9.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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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이방인', 원형 무대와 전박찬의 호연이 '원작의 울림' 생생히 전한다

뫼르소. 그는 막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뫼르소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눈다.

이웃인 레이몽과 친해진 그는 어느날 같이 해수욕을 하러 가다가 레이몽을 미행한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아랍인들의 칼에 부상을 입은 레이몽을 본 뫼르소는 얼마 뒤 레이몽을 찌른 아랍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권총을 발사한다.

극단 산울림이 3년만에 선보인 신작 <이방인>은 원작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충실히 따른다. 원작을 극에 맞게 변환하지도 않고 심지어 중요한 장면들도 원작의 시점 그대로 뫼르소의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꾸며진다. 산울림 측의 표현을 빌면 "소설에서 '이야기된 것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방인> 속에 들어가 있다.

▲ 극단 산울림 <이방인> (사진제공=소극장 산울림)

이 극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먼저 원형의 무대다. 물론 무대는 뫼르소의 집, 양로원, 해변, 재판정, 감옥 등 다양한 장소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원형의 무대가 엄청난 극의 에너지로 표현되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바로 뫼르소의 살인 장면과 재판 장면이다.

살인을 하기까지의 갈등과 불안감을 표현하는 뫼르소의 대사와 함께 어지럽게 돌아가는 듯한 조명 속에서 원형의 무대는 태양의 모습으로 상징이 된다. 뫼르소가 재판에서 살인의 이유를 '햇빛 때문'이라고 한 이유를 이 장면이 설득력있게 보여준 것이 원형 무대다.

또한 재판 장면에서도 이 원형 무대가 힘을 발휘하는데 뫼르소를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재판관으로 등장해 각각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바꾼다. 원형에 맞춰 질서있게 진행되는 이 재판 장면은 변호사, 검사, 재판관 역을 맡은 배우가 각각 극 초반에 나왔던 양로원장, 노인, 이웃집 주정뱅이로 변하는 모습은 익숙한 장면인 듯 하면서도 놀라움을 준다.

안경만 벗어도, 모자만 써도 금방 다른 캐릭터가 되고 관객은 '아, 아까 그 원장이 이 사람이었어?'라는 놀라움을 주게 된다. 재판의 긴장감과 엄숙함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뫼르소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의 열연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 여러 배우들이 호연을 펼치지만 이 연극은 전체를 뫼르소가 이끌어야하는 작품이다. 뫼르소의 모노드라마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사량도 많지만 문어체에 격한 감정 표현을 하며 극을 주도해야하는, 연기가 어설프면 극까지 망치게 되는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연기해야하는 캐릭터가 뫼르소다. 바로 이 역할을 훌륭히 해낸 배우가 전박찬이다. 

▲ 호연을 펼친 뫼르소 역의 전박찬 배우 (사진제공=소극장 산울림)

살인을 했다는 점은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모신 것이 문제가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애인과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한 것이 문제가 된다. 원치 않게 '이방인'이 되어야하는, 남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게 되는 뫼르소의 모습이 전하는 울림은 이 연극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다만, 원작을 읽지 않은 이들이나 극적인 엔딩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 연극의 엔딩이 약간 어색할 수 있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라는 원작의 마지막 문단이 뫼르소의 입을 통해 나오자마자 바로 극이 끝나기 때문이다.

임수현 연출가는 이 부분에서 '열린 결말'을 생각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결국 결말은 관객이 정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결말로 막을 내리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치 산울림의 레퍼토리인 '고전극장'의 연장선상을 보는 듯한, 그렇기에 원작의 감정을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도 제대로 전달한 작품. <이방인>이 전하는 울림을 무대에서 직접 느껴보면서 가을을 맞이해도 좋을 듯하다.

<이방인>은 10월 1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