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늙은 괴물의 생존분투 블랙코미디연극 <고령수감자>
두 늙은 괴물의 생존분투 블랙코미디연극 <고령수감자>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7.09.1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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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17일까지 대학로 열림홀, 극단 가음(加音)
 ▲사성구 작, 연출 정호붕 연출 극단 가음(加音)의 <고령수감자>.

극단 가음(加音)의 연극 <고령 수감자(작 사성구, 연출 정호붕>가  13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열림홀에서 막을 올린다. <고령 수감자>는 빨치산 할머니와 박카스 할머니가 벌이는 생존투쟁 블랙코미디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머로 돌려치기 하고 기상천외한 상황에서 웃음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한다.   

“이 나라의 뚫린 구멍이 너를 이 감방으로 강제로 끌고 온 거이야. 에미나이, 기래도 대한민국 만세가 주둥이로 술술 나오네?”

“이 할망구 진짜 빨갱이네. 김일성 만세! 이렇게 외쳐 봐요!”

고령 수감자 감옥 409호로 이감된 첫날, 트로트와 화투점을 즐기는 박카스 할머니 조막래와 걸핏하면 총살을 들먹이는 빨치산 할머니 최필녀는 서로 탐색하고 견제하느라 첫날부터 기싸움을 벌이는데, 그 둘 앞에 '수신인 막내 앞. 발신인 왕십리에서' 라고만 쓰인 소포가 도착한다. 

당연히 조막래는 소포가 제 것이라 하는데, 최필녀가 왕십리는 자기 본적지고, 이름 필녀는 한자로 막내라는 뜻이라며 자기 소포라고 우긴다. 머리채를 잡고 싸움이 일어나고, 그때부터 두 사람, 서로 으르렁거리며 소포를 차지하기 위해 파란만장한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고 화해시키는데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정호붕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연출을 맡았으며, 절묘한 상상력과 기발한 입담으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가 사성구 중앙대 겸임교수가 <고령 수감자>의 대본을 썼다.

연극 <여자이발사>로 거창국제연극제 대상을 이끌어냈던 명품배우 박은주가 가시밭길 보다 모진 삶을 살아온 빨치산 할머니 최필녀의 역을 맡아 분투하며, 배우 이하나가 전쟁고아에서 수출역군 공순이로, 카바레 여급에서 소매치기 안테나로 전전하다 결국 박카스 할머니로 전락하는 조막래의 굴곡진 삶을 연기한다. 

극단 미추 출신의 중견배우 이기봉은 이상한 교도관, 안기부K, 빨치산 장교 리철기, 카바레 가수 남봉, 소매치기의 전설 홍당삼 등 1인 5역의 각기 다른 인물로 빙의된 듯 팔색조 연기를 선보여 이 극의 감동과 재미를 더한다. 떠오르는 신예배우 라소라는 비밀스런 죄수귀신 0418역을 맡아 클라이맥스에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사성구 작가는 “이 작품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산해 낸 기형적인 두 괴물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낳고 버린 슬픈 샴쌍둥이에 대한 보고서”라고 이 연극의 사회적 메시지를 밝혔다.

연극 <고령 수감자>는 왜 두 노인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편을 가르고, 서로 죽일 듯 물어뜯는 이 나라의 뒤틀리고 기이한 부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과연 서로가 서로에게 무자비한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연극 <고령 수감자>는 기발한 극적전개 속에 따뜻한 눈물과 감동, 참을 수 없이 터지는 웃음을 담아냄으로써, 빨치산 할머니와 박카스 할머니가 서로 부둥켜 안 듯 언젠가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분열과 모순된 증오가 서로 어루만져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관객들에게 아름답게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