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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장현수의 춤‘청안(靑眼)’과 노정식의 춤 ‘망각’
2017년 09월 15일 (금) 11:11:48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불교에 무재칠시(無財七施)란 용어가 있다. 돈 없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방법을 말한다. 그 중 하나가  안시(眼施)다. 따뜻함을 품은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주는 것이다. 

장현수는 이를 청안(靑眼)이라 명명했다. 1998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후 20년 춤꾼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훈련장으로 있는 장현수는 “현대인들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 비춰진 삶의 고단함을 한국무용을 통해 담담히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청안’(8.18~20, 무용전용 M극장)은 승무로부터 시작하여 부채춤, 소고춤, 살풀이, 무당춤 등 전통춤사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여섯 개 장면으로 구성된다.

무대를 둘러 싼 두 면의 벽에 나비가 날고 있다. 한 쪽 구석에 커다란 북 하나가 놓여 있다. 검정색 장삼에 몸을 감추고 머리에 초록색 고깔을 깊게 눌러쓴 장현수의 승무로 공연이 시작된다. 여섯 개 단락 중 첫 번째 춤인 심안(心眼)이다. 고깔 너머로 살짝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엄숙하다.

이 엄숙함이 흐려지면 마음의 정화(淨化)가 필요해진다. 두 손에 부채를 든 이소정, 전정아와 함께 추는 3색 나비춤이 뒤를 잇는다. 부채가 나비처럼 팔락일 때 벽면에 그려진 나비도 살아나서 날렵하게 춤추는 듯한 조일경의 무대미술이 인상적이다. 세 번째 장면에선 소고와 장구가 등장한다. 흔들림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약해지는 마음의 기를 추슬러 주는데 마당놀이를 닮은 장현수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한 몫을 한다.

그는 무대 곁에서 생음악을 연주하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더니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장구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국립무용단 입단 10년을 맞아 아르코 대극장에서 첫 안무작인 ‘검은 꽃-사이코패스증후군’을 공연했을 때 썼던 작품 평이 떠오른다. 

“무대엔 춤꾼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춤은 없었고 분주하게 전개되는 상황만이 나를 눈감게 했다. 국립무용단의 주역무용수로서 안무가보다 춤꾼으로 잘 알려진 무용가가 처음으로 대작을 기획한다는 부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을까. 과욕을 버리고 먼저 마음을 비울 일이다.”

그 때(2008)년의 장현수가 아니다. 무녀로 단장한 그녀의 춤이 잠들었던 영혼을 불러 깨우며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간다. 산자와 죽은 자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춤이 무당춤이다.

피날레로 보여준 심무(心舞)에서 장현수가 또 한 번 변신을 꾀한다. 심무는 두 사람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마음의 춤이다. 무릎까지 올라간 다홍색치마에 초록색 소매 단이 붙은 노랑 저고리를 받쳐 입은 장현수는 첫사랑에 빠진 처녀의 청순한 매력을 풍긴다. 현대무용가인 조성민의 경쾌한 스텝과 함께 하면서 이도령과 춘향의 첫 만남을 연상시키는 로맨틱하면서도 코믹한 밀당 장면을 연출한다.

무대 한 편에 소도구들을 비치해놓고 장면과 장면이 단절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 것이나 해설자(장승헌)가 여러 번 등장하면서도 이질감 없이 무대 위에서 춤과 공존하는 연출은 세련됨이 돋보였다. 관객들이 무용수들의 호흡을 느낄 만큼 가까운 소극장은 마음을 열고 따뜻한 눈으로 춤을 통한 위로를 주고자 했던 ‘청안’의 기획의도에 적합한 무대였다.    

노정식의 ‘망각(Oblivion)'(8.19~20, 대학로예술대극장)은 ’Memory-storm cloud'(2014, 25분)와 ‘마력의 눈동자’(2011, 35분) 두 작품을 ‘망각’이란 제목으로 재구성한 공연이다.

오블리비언(oblivion)이란 뜻이 잊혀짐 혹은 잠재의식을 뜻하는 만치 이 작품은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뇌 속에 저장된 기억과의 관계, 또는 뇌 속 잠재의식의 힘을 추적한다. 앞 작품엔 살색 타이즈를 입은 두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현실과 기억의 대칭일 것이다. 폭풍우가 치는 듯 천둥소리가 간혹 들려오지만 흰 벽면 배경에 음악은 낮게 깔리고 조명은 유연하다. 부드러운 무대와 스피디한 춤사위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관객들은 편안해진다.

‘마력의 눈동자’는 잔잔한 표정과 단순한 춤사위가 만들어주는 분위기 속에 눈 빛 만으로 타인을 제압하는 힘을 지닌 메두사의 예리한 눈동자가 있어 긴장감이 조성된다. 여인이 긴 꼬리가 달린 드레스를 끌며 퇴장하고 난 후 흰 눈이 꽃비처럼 내리는 피날레가 인상적이다. 같은 톤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안무자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안정된 두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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