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기획팀장 김덕희님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기획팀장 김덕희님께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7.09.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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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에요.” 공연을 보기 전, 당신은 내게 그리 말했죠. 작품을 다 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 작품을 불호(不好)하는 관객은 어째서 그럴까?” 내겐 근래에 본 공연작품 중에서,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수작이었습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작품을 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작품은 지나치게 난해할 때,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죠. 기획이나 배우처럼 공연에 일찍부터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쉽게 이해하고 좋아하는데, 관객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소통이 안 되니, 불호가 되겠죠. 공연예술은 궁극적으로 관객과의 교감이 목적이기에, 이렇게 스스로 ‘예술’ ‘현대’ ‘난해’ ‘깊이’ 등을 운운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무척 싫습니다.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을 누가 ‘난해한’ 작품이라고 하던가요? 그간의 ‘서울예술단’ 혹은 ‘창작가무극’의 공연형태에서 살짝 빗겨간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이 작품은 이른바 현대예술의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예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적이 아니라 ‘현장적’이고, 난해(難解)함이 아니라, 난만(爛漫)함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예술가들의 치기까지도 보듬어주고 싶은 밝고 따뜻한 작품입니다. 공연 전 로비부터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있었고, 관객과 교감하려 했습니다. 무대와 조명도 난해침울(難解沈鬱)이 아니라, 생기발랄(生氣潑剌)했습니다. 

이 작품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구요? 반은 맞고, 반을 틀립니다. 이상이란 사람이 그렇고, 그의 시가 그렇죠. 모호함이 매력적입니다. 각색(오세혁)은 이런 모호함을 매우 명쾌하게 이어나가더군요. 어떤 부분에선 오히려 ‘설명적’이었습니다. 이상이란 사람과 시, 그의 주변인물을 끝까지 끌고 가면서, ‘스텝 바이 스텝’으로 이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레벨 업’시켜주더군요. 

각색(오세혁)과 연출(오루피나)는, 마치 ‘친절한 과외교사’ 같았답니다. 이거, 칭찬입니다. 

내가 본 이 작품의 최대의 매력은, 서울예술단의 출중한 아티스트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죠. 가까이서 보니, 더 잘 하는게 보이더군요. 서울예술단 단원은 각자 무용이면 무용, 연기면 연기, 대사면 대사, 모두 과거의 전공이 있겠지만, 이 작품에선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총체예술인’이었습니다. 그것 아세요? 서울예술단이 88예술단이란 이름으로 처음 출발하면서, 바로 장르가 해체되고 장르가 만나는 ‘총체예술’을 지향한 국내 최초의 단체란 것을. 

서울예술단의 이번 작품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앞선 것은 아닐까요? 그것 때문에 ‘불호’하다면, 그건 혹시 당신의 작품을 보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전근대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생각한다거나, 감정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연극적인 대사를 통해서 상황과 감정을 가져가고, 그것이 꼭 클라이맥스에서 ‘빵’ 터져야 하는 것은, 오히려 이제는 너무도 식상한 공연방식입니다. 

‘굳빠이, 이상’은 연출자가 공간을 아주 잘 활용하였고, 여기에 ‘영상 - 음악 - 안무’가 작품의 주제를 적절하게 부각시키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무용수들의 대사와 가사, 움직임과 분위기에 딱 맞는 음악을 게속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중간의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는데, 그걸 좀 더 집중해서 더 듣고 싶은 마음마저 들더군요. 안무는 참 재밌더군요. 같은 듯 다르고, 모두 비슷한 하면서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움직임이 좋았습니다. 

서울예술단에 최정수 (이상, 身)와 고석진(서혁민)과 같은 중견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김용한 (이상, 知), 강산준(길진섭)과 같은 신예가 있어서 기대됩니다. 형남희(김기림)과 최예슬(최승희)의 듀오를 가까이서 보는 얼마나 ‘심쿵’하던지요. 

김덕희 기획팀장님, 서울예술단은 이런 작품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각이 이미 그러했겠지만, 앞으로 이런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강조에 강조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호/불호’가 더욱 갈리는 작품을 많이 기획해 주세요. 그런 논란 속에서 대한민국 공연예술이 더욱더 다변화되겠죠? 이번 작품처럼 대한민국의 여타 공공예술단체와는 다른 작품을 기획해서 공연해주세요. 

당신은 한 인터뷰에서, “공공단체는 민간에서 하기 힘든 실험적 작업을 해야 한다!” 맞습니다. 
민간에서도 할 수 있는 작품을 재원이 풍부하니까, 좀 ‘럭셔리’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정말 싫습니다.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또 다른 작품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주세요. 

‘꾿빠이, 이상’을 본 후, 이 대사가 귀에 남습니다. “너는, 쏟아지는 소나기 사이로 질주하는 우산이다!” 서울예술단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예술단의 기획이 그러길 바랍니다. 서울예술단의 작품이 그래야 합니다. (*) 

*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 2017. 9. 21. ~ 30. CKL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