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도종환장관은 조속히 적폐를 청산하라
[특별기고]도종환장관은 조속히 적폐를 청산하라
  • 남정숙 문화기획자
  • 승인 2017.10.27 15:4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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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숙 문화기획자

10월 29일은 지난 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첫 번째 촛불이 타오른 날이다.

무능하고 부패하며 뻔뻔스럽고 비겁한 시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 광장으로 나섰던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과 기대를 안고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정권이 어느새 100일을 넘어섰다.

특히 문화예술인이었으며 자신이 전 시대 블랙리스트 대상이었던 도종환 시인의 문체부장관 임명은 공정, 청렴, 문화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문재인 내각의 신호탄이라 여겨졌고 문화예술인들은 두 손 들고 환영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100일이나 지나도록 정권교체까지 촉발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해결했다는 뉴스는 감감무소식이고, 부패권력에 부역했던 부패권력들은 내쫒으려면 내쫒아 보라는 듯이 여전히 패악을 부리고 있다.

국민은 숨이 막히고 문화계는 답답증을 호소하고 있다.
도종환 장관은 왜 개혁을 서두르지 않는가? 국민은 블랙리스트의 당사자이자 적폐청산의 가장 적임자로서 당신에게 개혁의 칼을 쥐어준 것이다.

누구는 적폐청산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보복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종환 장관에게 문화계 적폐청산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지난정부들에서 자행돼 왔던 블랙리스트는 문화계는 물론이고 방송계, 법조계, 사회단체는 물론 영리법인 등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블랙리스트 사건이 다 같지는 않다. 모든 블랙리스트가 불법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그중에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타 분야 블랙리스트 사건과 다른 특징이 있다.

▲지난 해 12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화예술인들의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시국선언 현장. "진상규명까지 행동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뒷 손들의 고착화 된 관행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일시적  배제 명단이  아니라 고착적으로 자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다. 예를 들면 방송계와 법조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방송출연이나 승진에서 탈락시키거나 배제시키는 단일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구조는 그 당시 인사권자만 알면 깔끔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기획을 하고 문화부가 자신들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산하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왔기 때문에 범인이자 책임자를 찾아내기 어렵다.

산하 기관장들과 진흥기금 심사위원들을 화이트리스트로 앉히거나 자기사람들을 심어놓고 예술가들에게 돌아 갈 국가기금을 중간에서 수십 년 간 갈취해 갔다. 이 구조는 산하 기관장 몇몇이 바뀌었다고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지원시스템 전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장관이 누가 오더라도 쉽사리 손을 댈 수 없게끔 구조화 되어 있다.

이 시스템 하에서 가장 핵심은 기금 심사위원들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좁은 문화계 바닥에서 블랙리스트들을 영원히 배제시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은밀하고 철저하게. 도종환장관이 문체부 장관이 된 후 오랫동안 고착되어 왔던 기금지원 심사구조가 바뀌었을까? 아니 아직 바뀌지 않았다. 물론 짧은 시간에 될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은 기금분배의 불공정성

전 정권의 차은택 다음으로 공연계 실세로 떠오른 박 모씨는 2016년 한해에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뮤지컬 지원심사 위원이었고 동시에 뮤지컬 지원금 대상자이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뮤지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무료로 아르코 극장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보답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청소년 인생멘토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떤 예술가에게는 야박하기도 하지만 맘에 드는 예술가에게는 심사와 수상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어 문화계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힘이없는 예술인들의 것을 중간에서 갈취할 수 있도록 불공정한 배려(?)를 하기도 했었다.

댄스포럼 1억2천만원 부당지원, 유야무야 넘어가나? 

지난 해 블랙리스트 기금 배제의 핵심기관으로 된통 홍역을 치른 문화예술위원회는 올해 초 정권 교체 과도기에서 또 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제2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야기시켰다. 대통령도 장관도 없는 혼란한 그 시기에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는 표면적으로는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으로서 잘못을 사과했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2월 23일 올려놓은 문예진흥기금 지원과 관련한 사과문. 가운데 붉은테두리. 앞에서는 사과를 내걸고 뒤에서는 제2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부적격자에 대한 기금 지원으로 규정 위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징계나 기금 환수 조치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제 버릇 남 못 주듯이’ 블랙리스트 청산은 고사하고 불법적으로 ‘화이트리스트’라 할 특정인에 기금지원과 그 과정에 자격이 되지 않는 심사위원 위촉으로 특정 단체를 배제하는 ‘제2의 블랙리스트’를 주도했다.

지난 봄 무용잡지 댄스포럼을 주최주관하는 ‘크리틱스 초이스’에 문화예술위는 ‘언론사는 기금지원의 부적격자’라는 자체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공연분야에서만 3년간 1억 2천만 원을 지원했다. 반면  우리나라 전통춤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성준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탈락시킨 일은 무용계와 문화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했다.

문화예술위는 공연 관련 기금 지원의 세부규정에도 없는 언론사에 대한 기금 지원은 버젓이 자행한 후 그에 대한 어떠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지난 4월부터 수차례 언론에서 문제제기를 해왔던 지원 부적격자인 댄스포럼에 대한 1억2천만원 환수 조치와 관련자 처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문화예술위원회가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기금지원 규정을 보면 언론사 및 언론사 소속의 단체는 기금 지원을 신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매체인 잡지사인 댄스포럼에 3차례에 걸쳐 기금 지원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맨 아래 붉은줄 박스는 언론에 속하는 무용잡지 댄스포럼 '크리틱스 초이스'는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부당지원 받은 기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적시하고 있는 규정.

정권이 바뀌고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 걸었지만 정작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최대의 문제점으로 떠오른 문예위의 기금 지원 문제는 일부 메이저 언론에서 취급된 내용만 다루고 있는 듯하다.

당시 문화예술위는 기금지원 세부 규정에서 출판물에 대한 지원을 하는 창작산실비평기금의 규정을 공연지원부분에도 적용시켜 자신들의 잘못된 행정처리를 덮으려 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기금의 '중복지원 불가'라는 규정을 위반한 사실만 더욱 명확히 드러냈다.

댄스포럼은 이미 창작산실비평기금을 기금 지원 분야만 바꿔 몇 년 째 지원 받아 오고 있기 때문이다.

▲ 문예진흥기금 심사에서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은 탈락한 반면 기금 지원 부적격자인 댄스포럼 잡지의 '크리틱스 초이스'가 신규 선정됐다. 댄스포럼은 이전에는 다른 공연분야 지원으로 2년째 기금을 지원 받아왔고 올해는 분야를 달리 해 기금을 지원 받았다.

또 한편에서는 지난 2월 문예기금에서 탈락시켰던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배제하기 위한 합법을 가장한 교묘한 규정 바꾸기도 함께 이뤄졌다. 이는 그 이면에 깔린 여러 복잡한 정황들을 자신들이 좌우지할 수 있기에 그런 규정을 만든 것으로 충분히 의혹이 간다. 규정을 바꾸는데 관여한 자들은 득의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배짱이 참 좋다. 그런 비열한 웃음을 언제까지고 봐 줘야 할까?  도종환 장관도 분명히 알고 있을 내용인데, 이에 대한 어떠한 액션이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지 못했다.

▲2017 지역대표공연예술제 무용분야 심사위원 채점표. 점수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과 이에 대한 의혹 제기가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계 권력은 특정인을 중심한 특정 단체의 화이트 카르텔인가?

문화계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도종환 장관만 모르는 사실이 있다. 서울 및 대도시에 있는 대형공연장과 전시장은 원하는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없다. 대공연장 경영은 아직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라 왕정시대처럼 작동되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이나 국립극장, 국립박물관과 같은 국립아트센터는 문화부 전직 차관출신이나 정권의 부역자들이 차지하곤 했었다. 특정한 협회출신이나 같은 대학 라인만 기관장이 될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수십 년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서울과 대도시의 대공연장에는 반드시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인 문화대부들이 뒤에서 버티고 있고, 그 대부에 줄을 대지 못한 사람은 절대 기관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많게는 40년 이상을 문화계 대부로 군림하며 국가 지원금이나 지방비를 좌지우지하며 자신들에게 부역하는 공연팀이나 작가에게 몰아주고 나눠먹기 했다는 의혹이 가득한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부임한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쪼개서 불법 임대를 하거나, 불법대관을 자행하기도 한다. 이들이 아직도 무사한 이유는 기관장 평가를 하는 심사교수진들이 이들의 경영성과를 높여서 보고하는 용역을 수행하기 때문이며, 이들을 임명한 고위 관계자가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카르텔이 단단하고 오래간다. 따라서 문화계는 고위 관계자 - 대형아트센터 관계자 - 부역 예술가와 단체 - 부패 교수라는 고구마 줄기 같은 화이트 카르텔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7월 도장관은 “지난 정권의 공공기관장을 강제로 교체할 수 없다”고 일성을 날리셔서 촛불문화인들의 속을 터지게 했다.

우리가 도종환 장관에게 공공기관장들의 교체를 강력하게 기대하는 이유는 도장관이 MB정권 때의 유인촌 전 장관처럼 완장을 차고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무조건 내쫒으라는 것이 아니다. 부패한 공공기관장들을 선별해서 교체해야 9년 간 썩었던 화이트 카르텔의 고리를 끊을 수 있고, 그것이 문화계 적폐청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의 몸통은 문체부 내부에 있다

▲올해 2월 광화문 블랙텐트에서 열린 ‘<은 눈 위에서 타오르는 99편의 시(詩) ‘검은 시의 목록’> 행사에 참석해 당시 국회의원이던 도종환 장관이  문화계블랙리스트 생성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화계 지원시스템은 크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예술단체에 탑다운으로 지원하는 방식과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바텀업으로 신청된 지역예술단체와 지역문화예술회관의 지원금 신청을 심의해서 지원하는 방식이 있다.

이 두 가지 지원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의방식과 심사위원들이다. 이 중요한 두 기관의 주요관계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적폐세력이라면 어떻게 될까? 블랙리스트 예술단체는 중앙에서도 지방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장관이 제아무리 적폐청산을 외쳐본들 소용이 없다. 임명승인은 장관이 하지만 이 두 기관의 실질적 권한은 문체부 관계자가 키를 쥐고 있다. 장관이 일일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을 때 탑다운 지원방식과 바텀업 지원방식의 실무를 모두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문체부 내부의 고위공무원 중에 있다. 문체부 관계자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동안 문화융성위원이었던 공연제작사 신시네 박명성과 전 국립극장장인 안호상이 적폐세력이라고 떠들썩했다. 이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서 잠시 사람들 눈에 벗어나 있다. 장관이 바뀌고 기관장이 바뀐다고 수십 년 동안 자행되어 왔던 불평등구조가 바뀔 수 있을까?

박명성과 안호상을 호위해 주었던 공무원은 누구일까? 행안부에 있을까, 교육부에 있을까? 이들을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하는데 기여하고 이들과 수십년 간 카르텔로 뭉치고 문화예술계를 부패하게 했던 사람은 바로 문체부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문체부에는 약 22개의 소속기관과 60여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정부기관 중 가장 많은 산하기관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산하기관들의 책임자를 임명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문체부 내부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문체부 고위 공무원에게 줄을 서는 또 다른 이유이다.

문체부 내부를 혁신하지 않는 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청산할 수 없다

도종환 장관은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의 결과만 나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지원시스템을 만들고, 국립예술기관의 장에 대한 추천과 임명승인이 가능한 지위에 있으며, 지원심사 위원에 화이트 카르텔을 심을 수 있는 어둠 속의 보이지 않는 손을 탐정처럼 찾아내고 문체부 내부를 혁신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도종환장관께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잘못된 과거를 나태하고 값싸게 용서하는 것은 그들과 같이 부도덕한 것이다. 촛불시민이 준 칼로 적폐를 도려내고 다시는 이 땅에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지 않게 하시라!

남정숙
30여 년 동안 현장에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역사와 격변을 겪은 목격자이자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1세대 문화기획자이다. 예술경영석사와 경영학박사이다. 예술의 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유네스코아태무형문화유산 등 국내주요 국공립문화기관들의 중장기전략과 수원, 평창, 안성, 부천 등 다수의 도시에 문화정책을 수립을 주도했다.

2005년도에는 국내 최초로 문화마케팅을 개발했고, 기업메세나운동을 전개한 공로로 2006년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최초의 여성총감독으로 세계거리춤축제, 익산서동축제 등 다수의 지역축제를 진행했으며 현재는 슬럼화 된 도시를 문화로 재생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