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육부로 무겁게 춰야 한(恨)이 신명(神明)으로 승화되는 살풀이춤
오장육부로 무겁게 춰야 한(恨)이 신명(神明)으로 승화되는 살풀이춤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11.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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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앞 '스튜디오SK'에서 열흘동안 열린 ‘한국민족 춤제전’

우리 고유의 몸짓과 정신으로 사회와 소통하려는 의지로 창립된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 장순향)의 '2017 한국민족춤제전'이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 성대입구 '스튜디오SK'에서 열렸다.

특히 지난 18일에는 무형문화재비지정 ‘살풀이춤’ 판이 진행됐는데 추운 날씨에도 많은 관객들이 참여했다. 당초 사진가 정범태(한국민족춤협회 고문)선생을 모시고 살출이춤의 맥을 짚어보는 대담이 예정되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정 선생님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 공연을 마치고 관객과 함께 기념촬영 Ⓒ정영신

무용가 김영희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비지정무형문화재 4개의 살풀이춤이 선보였다. 김영희 무용가가 "난초가 개화하는 순간의 신비로움을 자연 속에서 잎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춤사위가 조갑녀류의 살풀이"라며 시작을 알리자 조갑녀 선생의 춤사위가 동영상을 통해 소개된 후 서정숙씨의 살풀이공연으로 이어졌다.

조갑녀 선생은 남원 권번 출신이다.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민 살풀이춤은 원형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전통춤으로 무거움을 중시한다.

서정숙 춤꾼도 관객과의 대담에서 독을 품듯이 무겁게 춤을 춰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늘 춤은 무거워야 한다며 항아리도 아니고, 독을 드는 것처럼 무겁게 춰야 한다고 했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조갑녀류의 서정숙춤꾼 Ⓒ정영신

조갑녀의 춤은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고 한다. 손맥을 시원하게 풀어버리면서 손끝으로 춤에 꽃을 피우는 우리 춤, 비정비팔 (非丁非八)의 발사위는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중요시하는 춤의 철학을 담고 있다.

중앙에 화문석을 깔고 그 공간 안에서 슬픔과 흥의 감정표현을 시나위 장단에 몸을 실어 그대로 우러나오는 대로 추는 즉흥성이 강한 춤으로 100번을 추어도 100번이 다 다르게 나오는 춤이라고 한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조갑녀류의 서정숙춤꾼 Ⓒ정영신

두 번째로 이필이춤 보존회 회장인 이순자 춤꾼이 이필이의 살풀이춤을 보여줬다. 한과 흥의 미학이 돋보이는 이필이의 춤사위는 경상도 특유의 멋과 엇박의 묘미가 끊어지듯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와 영혼이 결합하여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몸짓 같았다.

이필이 선생의 수제자 이순자 춤꾼은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춤을 추라'는 스승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며 마음가짐을 중요시 하라는 가르침을 지금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이필이류의 이순자춤꾼 Ⓒ정영신

그리고 우리민족의 슬픈 정서(情緖)를 맺고, 풀고, 밀고, 당기는 한(恨)이 바로 신명(神明)이 되고, 신명(神明)이 바로 한(恨)이 되는 세계를 보여주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보는 것 같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봄이 오고, 봄이 왔는가 하면 여름으로 치닫고, 온갖 불덩이를 산야에 뿌린듯하다가 이내 앙상한 나목이 겨우내 인내로서 혹한을 견디면서 새싹을 담담하게 내보이는 순정한 변화는 우리민족의 기질인 은근과 끈기가 맞물려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필이 선생은 예술적 재능과 예지를 지녀 일찍부터 전통무용인 춤으로 예술계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면서, 독특한 창작 무용을 개발해 무용계에 일대변화를 일으키면서 더 높은 춤의 경지와 예술세계를 탐닉해온 것이다. 

이 선생은 어렸을 적 담장너머로 흘러나오는 전통가락 소리에 숨어 춤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춤이 남편이자 나의 평생 연인이다”고 밝힐 정도로 춤에만 정진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이필이류의 이순자춤꾼 Ⓒ정영신

사회자 김영희 무용가는 정범태 선생이 대담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선생이 자주 말씀하셨던 눈대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대목은 판소리나 살풀이춤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을 말하는데 이것은 관객이 어떻게 듣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눈대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살풀이에서는 수건을 집어 올리고 던지면서 한을 진하게 풀어내면서 슬픔이나 신념을 다해 혜원으로 이뤄내는 것을 눈대목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을 보면서 눈대목을 어디에 둘 것인지 설정해보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또한 한영숙 선생은 “승무를 출 때는 중의 마음이 되고, 태평무를 출 때에는 왕비의 마음이 되고, 살풀이춤을 출 때에는 너 자신이 되라고 했다” 는 일화를 전하면서 살풀이춤은 어디에나 열려있는 춤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 '살풀이류파전'을 진행한 무용가 김영희 Ⓒ정영신

이어 비손무용단 예술감독인 임관규씨가 박금슬 선생의 춤사위를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었다. 이 살풀이춤은 길들여진 춤이 아닌 지역의 정서와, 당대의 정서를 담아내는 춤을 추어 온 것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힘의 조화에서 나오며 음악과 하나가 된 혼이 담긴 춤사위로 알려져 있다.

박금슬 선생은 전국의 민족 춤을 총집결하기 위해, 절에 있는 중한테도 배우고, 심지어는 악사에게 춤을 배우며 우리 춤의 춤사위를 집대성한 분이다.

박금슬선생의 입춤은 무대가 아닌 우리일상에서 출 수 있는 한과 정신, 거기에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 응어리를 한없이 곰 삭이며 절제된 몸짓으로 우리의 모든 원형질을 녹여내는 춤사위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박금슬류의 임관규춤꾼 Ⓒ정영신

관객과 춤 토론회에서 임관규 춤꾼은 “춤은 오장육부로 춰야 되고 단전에 의해서 춰야 한다“고 했다. 이는 뱃속, 마음속, 몸속으로 춤을 춰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누구나 춤은 팔과 다리로 춘다고 생각하는데 박금슬선생은 단전의 호흡을 끌어올려 춤을 추게 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과학적이고 몸의 움직임을 자연의 이치로 풀어냈다는 의미다.

그리고 긍정적인 자세의 움직임에서 섬세하고 민첩한 버선발 한 디딤마다 춤사위를 통한 아름다운 선, 의상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와 시나위장단은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장 같은 풍모의 몸놀림을 보여줬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박금슬류의 임관규 춤꾼 Ⓒ정영신

마지막은  장순향(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 교수가 김애정류의 살풀이춤으로 답했다. 김애정선생은 13세에 마산 남선권번에 들어가 송엽봉, 박동실, 소리제의 맥을 이어 영남지방에 드문 여류명창으로 인정받아 김소희선생과 함께 활동했다고 한다.

일찍이 ‘마산 나고 김애정이 났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 온 명인이지만 인간문화재가 되지못했다. 김애정 선생에게 배운 춤꾼은 장순향 교수가 유일하다.

30여년 만에 복원하여 세상에 처음 내놓은 작품이라서 의미가 더 새롭다는 장 교수는 다소곳하고 우아한 춤을 보여줘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김애정류의 장순향 춤꾼 Ⓒ정영신

장순향 교수는 춤으로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인간의 억압된 고통을 표현하고, 춤을 통해 몸짓으로 저항해 왔다. 춤에 모든 것을 응집시켜 하늘과 땅에 마음속으로 목놓아 절규하며 고(誥)하였다. 국정논단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전국의 춤꾼들이 광장으로 나와 예술로 저항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를 춤으로 소통했다.

▲ 무형문화재비지정 김애정류의 장순향 춤꾼 Ⓒ정영신

회사원이라고 신분을 밝힌 한 관객은 “공연을 보고 내 살(煞)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며 한스러운 마음, 억눌린 마음은 한(恨)을 넘어서 승화한다. 고운 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운 정도 있는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극복해야 한다는 심성을 춤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은 분단 70년의 민족적 비극을 종식시켜 남북 춤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의 계승발전을 위해 나눔과 상생을 바탕으로 갈등과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 소통과 치유의 문화를 통한 창조적이고 자긍심 있는 활동을 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