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과 함께 인간성까지 묻어버린 땅의 기록, 문선희의 ‘묻다’전
가축과 함께 인간성까지 묻어버린 땅의 기록, 문선희의 ‘묻다’전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7.11.2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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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사진전, 청운동 류가헌에서 오는 12월3일까지 열려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사진가 문선희씨의 ‘묻다’ 사진전이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산 채로 매장된 동물들로 인간성마저 묻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는 한 사진가의 '땅에 대한 기록'이다. 질문과 매몰을 동시에 의미하는 제목 ‘묻다’처럼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동물들을 땅에 묻었고,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며 전시장의 사진들이 묻고 있다.

▲ 11800-02_50x50_c-print_2014 (사진제공 : 류가헌)

환경이 오염되어가는 현장과 인간의 잔혹성을 함께 돌아보게 한, 사진가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살 처분된 가축의 메몰지를 찍은 문선희의 사진들은 섞어가는 땅의 디테일이 마치 한 폭의 추상화처럼 아름답기도, 섬뜩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이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는 2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가축들은 산채로 묻혀 갔다. 곳곳에 사체 썩는 악취가 피어오르고, 대지의 자정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한지도 오래됐다. 자연환경만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까지 잃어 간 것이다.

▲ 84879-04_90x90_c-print_2015 (사진제공 : 류가헌)

본 기자는 장터촬영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마치 외계인처럼 온 몸을 가린 검역원들이 마을 입구에서 소독약을 뿌리는 모습을 흔하게 봤었다. 때맞추어 언론에 소개된 가축 매몰 현장을 지켜보며 문제의 심각성에 발을 동동 굴렸으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언제 그런 일이 있느냐는 듯 쉽게 잊혀졌다.  문제가 생기면 바르르 끓고, 시간만 지나면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이다.

사진가 문선희는 구제역과 AI로 동물을 생매장한 3년 뒤 모습을 찾아다녔다. 천만마리 이상의 생명을 삼킨 사천 팔백여 곳의 땅에서 백 여 곳을 택해 법정 발굴 금지기간이 지난 후 찍었다고 했다. 여린 그녀가 질퍽질퍽 불편하기만 한 그 자리를 찾아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그 흔적을 기록하여 이 사회를 향해 ‘이래도 되느냐?’는 듯 질문을 내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동물이 산 채로 매장된 매몰지의 표피적인 형상에 불과하겠으나, 그 형상 하나 하나에는 땅에 대한 환경문제보다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물음의 메시지가 더 강하다.

▲ 2312-01_100x100_c-print_2014 (사진제공 : 류가헌)

대부분의 메몰지는 비닐로 은폐된 채로 버려졌지만,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땅은 다양한 색깔로 썩어갔다. 기이하게 죽어가는 풀의 형태가 만든 참혹한 현장이 사진의 리얼리티에 의해 형태와 질감, 색깔까지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을 이용해 더 자세히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흙이나 뼈, 풀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진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사진 옆에는 매장량인 것 같은 작가만이 알 수 있는 숫자들이 쓰여 있는데, 그게 바로 작가의 질문 방식이다. 정부가 분명한 규칙을 만듦으로써 모호한 땅이 생겨났듯이, 사진가 문선희는 분명한 사진을 찍음으로써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 299_50x50_c-print_2015 (사진제공 : 류가헌)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사진가 문선희의 사진을 너무 예쁘게 찍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아름답게 보이는 미시적 리얼리티는 가시적인 것에 길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또 다른 항변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것이 예술이라는 것과 사실적인 것이 사진이라는 그 자체도 뒤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찍던 작가의 색깔이고 말하는 방식이니, 탓할 바는 아니다.

스스로에게도 책임을 물어 동물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는 사진가 문선희씨의 말을 들어보자. “정부는 규칙을 만들었고, 그 규칙에 따라 예외 없이 파묻었다. 그곳에 죽음은 없었다. 다만 상품들이 폐기되고 있을 뿐이었다.

판단은 거세되고 효율만이 작동하는 동안 동물들은 면역력을 놓쳤고, 대지는 자정능력을 잃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4,800여 곳의 매몰지에서 피로 물든 지하수가 논과 하천으로 흘러나왔고, 썩지 못한 사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했다.“

▲ 1765_90x90_c-print_2015 (사진제공 : 류가헌)

이 전시는 청운동 ‘류가헌’(전화 02-720-2010)에서 12월 3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