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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금옥 무용가 “한국 무용의 명맥 잇는 하나의 줄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선 무용과 한국 무용에서 한민족의 동질성을 느껴
2018년 01월 29일 (월) 10:08:45 이은영 편집국장/박우진 기자 press@sctoday.co.kr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뤄내기 위한 남북간의 평화공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인 현송월이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인 강릉과 서울을 돌아보고 북한공연단의 남한 내 공연을 서울 국립극장과 강릉아트센터로 결정하면서 예술을 통한 화해무드가 급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국민들 또한 이러한 계기를 통해 남북간 긴장완화, 평화 안정시기가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간절하다.

북한 금강산가극단 출신으로 남과 북을 오가며 우리 무용을 하는 춤꾼, 신금옥 씨를 본지<서울문화투데이>가 지난 12월에 서울에서 만났다.

지난해 3월 ‘연연’ 이라는 이름의 한국 무용 공연에 이어 5월에는 일본 능악당에서도 공연을 선보인 신금옥 무용가. 그녀는 재일교포 2세로 1975년에 재일조선인예술단 (현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해 조선무용(북한무용)으로 무대에 선 무용가였다.

그러다 1983년에 금강산 가극단을 나와서 20여년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녀는 이후 한국 무용에 심취해 이매방류 살풀이 이수자인 조수옥 선생을 사사하며 현재는 10여년 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 무용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녀는 한국국적을 취득했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 경계인임을 느낀다고 한다. 남과북이 하나돼서 자신의 정체성이 한반도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 신금옥 무용가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예술단 (현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해 조선무용을 배웠던 무용가다.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20여년 전 예술단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 건강 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에어로빅, 요가, 스트레칭, 재즈 댄스 등을 해봤는데 재미없게 느껴졌다. 예술에 대한 나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1주일에 한번 한국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한국 무용은 공연을 통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한국 무용은 예술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것 같아서 한국 무용을 공부하게 되었다. 

한국 무용을 배우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한국무용을 배우면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한국 전통무용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젊었을 때는 동적인 조선무용을 하다 보니 한국무용은 정적인 춤사위나 음악 때문에 싱겁다고 느꼈다. 젊었을 때 김천홍 선생님의 궁중정재 공연도 봤었는데 답답하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다시 봤을 때는 동적임 속에 정적임이 있고, 정적임 속에 동적임을 장단에서 느꼈고, 조수옥 선생님 공연에서는 호흡이나 정적인 기운이 인상적이었다. 한국무용을 하면서 마음 속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돼서 행복하다. 

여러 선생님들에게 춤을 배우고 있다 들었다
2002년에 이매방류 살풀이 이수자이셨던 조수옥 선생님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주일에 1번 씩 배웠는데 배우다 보니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그래서 나중에는 조수옥 선생님의 조교가 되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12년을 보냈다. 또 다른 선생님들이 일본으로 워크숍등을 위해 오시면 직접 가서 배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한영숙류 태평무는 이수진 선생님에게, 영남교방춤은 박경량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최근에는 김경란 선생님을 비롯해 세 분의 선생님에게서 진도북춤을 배우고 있다. 정식 제자가 아님에도 잘 가르쳐주셔서 잘 배우고 있다.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국에서 그동안 배운 춤을 무대에서 선생님들 앞에서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나? 

태평무를 추었을 때 선생님들께서 나를 격려하시려고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특히 박경랑 선생님은 나의 상반신의 움직임, 팔놀림이 곱다고 말씀해 주셨다. 

금강산 가극단에 대해 소개하자면? 

일본에서 조선무용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가극단으로 조총련, 조총련 교포들의 지원을 받아 전국 단위로 활동하는 단체이다. 지방에 가무단이 있지만 전국 단위로 활동하는 가극단은 금강산 가극단이 유일하다. 원래는 재일조선중앙예술단이었다가 1974년에 금강산이라는 가극에서 이름을 따와 금강산 가극단으로 명칭을 바꾸게 됬다.

재일조선인예술단 당시에는 탈출, 살풀이 등 전통 무용 공연을 많이 했었다. 금강산 가극단으로 바뀌고 나서는 창작극이 많아지고, 기본 동작들도 현대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 금강산 가극단 시절의 신금옥

금강산 가극단 공연에 대해 일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반응은 좋은 편이다. 금강산 가극단에서는 1년 단위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적으로 공연을 한다. 지방 공연을 가면 관객들 중 절반은 일본 사람이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같은 대도시 공연에서는 우리 문화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만 지방 소도시 같은 곳에는 우리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공연을 하면서 일본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많이 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노래와 일본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하고, 무용 공연을 하기도 했다.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는가? 

세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조선 무용 전수를 받기 위해 다녀왔었는데 이 때가 처음 한반도 땅을 밟아본 순간이었다.     

북한에서 조선무용은 어떤 분들에게 전수 받았나?

조선무용 교육은 인민문화궁전, 평양대극장에서 연습을 했고, 전수는 평양에 만수대예술단에서 받았다. 종합예술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에게서 전수를 받았고 그 분들이  작품도 만들어주셨다.

내가 입단하기 전에는 일본 정부에서 북한을 갔다가 재입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북한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귀국선을 타고 니가타 항에 오시면 단원들이 그곳을 찾아가 배 안에서 무용을 배우기도 했다. 단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일부러 오셨던 것이다. 재입국이 허용된 후에는 선생님들도 일본에 직접 오셔서 단원들을 가르치셨다. 

조선무용 하면 무용가 최승희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조선무용에 있어서 최승희의 영향은 큰 편인가? 

최승희 선생이 조선 무용의 기본 동작을 책으로 엮은 것과 본인이 직접 남긴 영상을 토대로 조선무용을 배웠다. 당시에는 입춤 기본동작이라고 해서 최승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신무용도 있었다. 

현재 북한 무용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책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데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최승희 기본동작을 재검토해서 장단을 중심으로 기본 동작을 맞추고 있고, 과거에는 전통 춤이 많이 사라졌지만 최근에는 다시 복원하려는 중이다.  

한국무용을 12년 정도 배우고 나서 일본 내에서 ‘화인회’를 조직했는데 무용단이 아니라 모임 성격의 ‘회’를 만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친목모임처럼 가볍게 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했다. 또한 무용단을 꾸릴 만큼 여건이 마땅치 않았다. 모임은 1주일에 1번 정도 모여서 같이 한국 무용을 배우고, 연습을 한다.

교포들 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같이 활동하고 있다. 모임에서 내가 한국 무용을 가르치고 있는데 더 잘 가르치기 위해 1년에 2~3회 정도 한국에 와서 여러 선생님들에게 더 깊게 배우고 있다.      

   
▲ 신금옥 무용가의 살풀이춤

작년 3월 ‘연연’에 이어 5월에는 일본 능악당에서 ‘여무’ 공연을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었나

교포 분들 중에 한국 무용을 열심히 배우시는 분들이 많다. 돈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문제들 때문에 공연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기획해서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연을 기획하게 됬다.

또한 한국 무용을 배울 때부터 내가 이 나이에 한국 무용을 배워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항상 있었다. 그런 고민이 두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였다. 비록 큰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 활동들을 통해 한국 무용의 명맥이 이어지게 하는 하나의 줄이 됐으면 한다.  

금강산가극단을 퇴단하신 분들이 꽤 있을텐데 그 분들을 규합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어렵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지금은 거의 없지만 예전에 어떤 분들은 제가 한국무용 한다고 하면 반역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취득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해방 후 1세대 교포 분들처럼 내 아버지께서도 조선 국적만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출생 신고는 남한에서도 할 수 있어서 내 아버지께서 고향인 전라도 나주로 출생 신고를 하셨다. 그 덕분에 나는 남한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 

본인에게 한국무용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 선생님한테서 직접 배우면서 느낀 점은 무용을 통해서 맺어진 인연이지만 우리 모두가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생활 양식이나 말투 같은 데서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또한 한국 무용이나 조선무용이나 뿌리는 같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은 바로 ‘한’이다.

내가 일본에서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한국무용과 조선무용이 다르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뿌리는 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어렵지 않다고 한다. 서로가 이해해주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1세대 선생님 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요즘도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과거에는 일본 뉴스에 북조선, 한국 이야기가 나오면 좋은 이야기는 많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한류 덕분에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일본인 이웃들도 한국 음식 가르쳐 달라고 하는 등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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