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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원작자 톨스토이(1828~1910)에게
2018년 02월 08일 (목) 17:51:00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press@sctoday.co.kr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보았습니다. 당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참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죠? ‘

안나 카레니나‘는 말할 것도 없죠. 이번 뮤지컬을 보면서,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3년, 조 라이트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를 떠올렸던 분도 많을 겁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참 좋은 뮤지컬입니다. 관객을 향해 ‘생각’을 던지고, ‘느낌’을 끌어내는 줍니다. 뮤지컬이 연극에 비해서 삶을 깊게 다루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뮤지컬이 오페라에 비해 음악적으로 깊이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선입견이 좀 달라 질 것 같습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오직 안나의 삶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여러 인물들을 소중히 다루고, 특히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걸 작품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잘 설계된 작품입니다. 일관된 흐름을 잘 지켜나가면서, 그 안에서 변화되는 음악을 통해 극을 흥미롭게 이끕니다.

한국의 창작뮤지컬을 보면, 관객의 박수유도를 염두에 둔 탓인지, 끝 부분에 가선 대개 음정을 높이고, 길게 끌다가 강하게 맺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 많아서 식상하거나, 때론 유치합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노래가 끝나지 않은 듯이 끝을 맺습니다. 이럴 때는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인물의 고뇌가 객석에 전달됩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과 느낌으로 이어가는 수준 높은 뮤지컬’임을 확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두 남자(브론스키, 카레닌)의 노래도 꽤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뮤지컬 넘버에 러시아적인 음악을 의도적으로 삽입한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이 러시아사람이 만든 작품이기에 러시아음악적 분위기가 잘 배어 있습니다. 2막의 농부들의 장면이 특히 그렇죠. 또한 이 장면은 인간에게 지친 사람들이 왜 자연에게 다가가는가가 ‘자연스레’ 전달됩니다. 이런 뮤지컬 장면을 보면서, 당신의 원작 ‘안나 카레니나’ 주는 다층적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안타 카레니나’는 이렇게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음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장 큰 약점은 ‘가사 전달’의 어려움입니다. 외국작품을 번안해서 공연할 때, 가사 전달이 안 된다는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 작품도 그런 범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사를 어떻게 부치느냐” 혹은 “가사를 어떻게 고치느냐”에 따라서, 관객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에 큰 차이를 보이게 되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할 때, “뭘, 알고 싶은 걸까?” “알고 싶은 게, 뭘까?”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노래와 연결되면 아주 달라지죠. 선율과 리듬의 장단고저에 따라서, “뭘알 (고 싶은) 걸까”로 들리는데, 이걸 가사의 위치를 바꾼다면, “알고 (싶은 게) 뭘까”로 들리게 됩니다. 전자와 후자에 따라서 관객의 감흥을 사뭇 달라지죠.

이 작품은 번역과 번안의 단계가 너무 느껴집니다. 아직 우리말(한국어)로 작품이 익지 못했습니다.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서, ‘노래의 선율의 강약과 고저를 고려해서’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부치는 덴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게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이번 초연을 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안나의 모성(母性)이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안나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몰래 찾아와서, 아들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노래합니다. 그런데 참 어색합니다. 우선 가사가 참 많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온 ‘어미’가 잠자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많은 수식언으로 노래할까요? 설령 러시아어가 그렇더라도, 우리말로 보다 다듬을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단순하게 강하고, 모성이란 것 자체가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요? 문어체(文語体)라 보기도 힘들고, 시어(詩語)라고 보기도 힘든 가사들을 앞으로 잘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래의 율격과 가사의 율격에 대한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초연된 작품을 보면서, 이 작품이 갖는 깊이를 유추하게 되는 게 많습니다. 이 작품은 그저 뮤지컬이 연행되는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즐겨보자는, 그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는 뮤지컬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뮤지컬 ‘안나 카라니나’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우호적으로 접근하는 뮤지컬도 아닙니다. 안나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안나와 관계되는 인물에 대해서도 매우 감정적으로 충실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에선 크게 드러나진 못하지만, MC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인물)에 대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입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한국에서 보게 된 것이 기쁩니다. 오랜만에 ‘좀 다른’ 뮤지컬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앞으로 이 작품이 ‘더 깊은’ 뮤지컬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이 작품처럼 관객에게 ‘생각과 느낌의 깊이가 전달되는 뮤지컬’이 많이 공연되길 바랍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뮤지컬작품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지게 될 겁니다. 그건 바로 당신, 톨스토이의 바람이기도 하겠지요.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2018. 1.10 ~ 2. 25.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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