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비(文武大王碑) 현현하신 뜻은?
문무대왕비(文武大王碑) 현현하신 뜻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9.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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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반도의 방략, 역사로 말해 줘

한반도 역사에 있어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文武王) 김법민(金法敏, 재위 661~681)의 존재는 특별하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장자로서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외세를 끌여 들여 이룬 통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몸소 겪은 인물이다. 동시에 용력과 결단으로 외세를 물리침으로써 오늘날 한반도의 국가지형을 기초한 인물이다. 

 서기 660년부터 668년까지 이어진 나당 연합군의 백제와 고구려 공격에 동원된 당(唐)나라 군대는 애초부터 신라를 돕기 위해 온 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신라를 이용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한 뒤 신라까지 집어 삼켜 한반도 전체를 수중에 넣을 참이었다.

백제 정벌을 마친 당이 백제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한 뒤, 663년엔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칭하고, 문무왕을 계림 대도독에 임명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은 668년 고구려를 멸한 뒤엔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 백제 · 신라에 이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장치를 완료하려 했다.

신라로선 당나라를 이용해 백제 · 고구려를 멸한 뒤 ‘삼한일통’(三韓一統) 반도의 패자(覇者)를 꿈꾸었겠지만 오히려 당의 음흉한 간계를 도와 자신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잃고, 반도 전체를 헌납하는 꼴이 될 뻔했다.

다행히 문무왕은 똑똑했다. 그는 용력과 지략, 자주성을 겸비한 지도자였다. 외세를 물리치고 삼한이 뭉쳐야 함을 알게 된 그는 당의 지원을 받아 웅진도독이 된 부여 융(夫餘隆) 세력과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 부흥세력을 원조하는 한편, 신라 내 친당 세력에 대한 척결도 과감히 수행했다.

당군과 신라군의 전투가 치열해 지는 가운데 674년 당은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신라왕에 봉하며 본격적인 분열책과 침략을 개시했다. 하지만 전투가 절정에 달한 675년 설인귀의 당나라 군대가 문훈(文訓)이 이끄는 신라군에게 참패했다. 이어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당군도 매초성(買肖城)에서 대파당했다.

신라군은 크고 작은 18회의 전투를 모두 이겨 북쪽 육로로 들어오는 당군을 저지했다. 이어 676년 바다에서도 신라의 해군이 당나라 해군을 소부리주 기벌포(伎伐浦)에서 크게 이겨 서해 제해권도 장악했다. 이로써 당은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고, 신라는 원산만과 대동강을 잇는 국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록 불완전한 삼국통일이었지만 이나마 문무왕의 용력과 지략, 자주적 결단의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한반도 민족의 영역과 정체성을 이만큼이나마 지켜낸 기초가 된 것이다. 만약 이때 문무왕이 당나라에 기가 꺾여 화평책 등으로 자신의 안위만 꾀하거나 백제 · 고구려 유민정책에 실패했더라면 이때 이미 한반도 전체가 중국역사에 흡수되고 말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체성을 논할 수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문무왕을 기념하는 비문 상단부가 경주 주택가 수돗가에서 빨래판이 된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조선시대 발견됐다 사라진 지 200년 만이며, 1961년 비문 아랫부분 발견 이래 근 50년 만에 나머지 부분을 찾은 셈이라 한다. 

남과 북의 분열로 여전히 통일과제를 안고 있는 오늘날 한반도에서 삼국통일의 주역인 문무대왕비의 현현(顯顯)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주도하에 자기의 영향권 속에 한반도 전체를 주관하고 싶어 하는 미국, 이를 견제하려 한반도 북반부 만이라도 영향권에 두고 싶은 중국. 이른바 남한의 ‘흡수통일론’(남북자유총선론)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도 결국은 상당부분 이 두 외세의 입장을 의식하거나 대변하는 각각의 통일론이다.

어느 쪽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인지는 역사가 증명하겠지만 1400년 전 문무대왕비의 현현은 여전히 외세가 작용하는 현대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역사적 지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때 삼한(三韓)이 뭉쳤어야 했듯 오늘날도 삼한(영남, 호남, 이북)이 뭉쳐야 하는 것을... 결국 우리끼리 뭉쳐 외세를 이겨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