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의 딜레마
[성기숙의 문화읽기]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의 딜레마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5.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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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무형문화재 진흥법에 의거해 얼마 전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명단이 발표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쉬운 인선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무형문화재는 보는 이의 관점과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처방과 대안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독립된 기구로서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잔뜩 기대를 품었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 및 전문위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에 관한 문화재청의 입장과 태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무형문화재 전승현장에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으로 권위를 쌓아온 인사들은 대부분 제외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욱이 기존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운용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과 개선방향을 고민하기보다는 기존의 관행 지속을 염두에 둔 인적 구성이라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왜 그러한가? 무형문화재 전승자와 전승현장에 대한 존중보다 문화권력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 변화하는 전통예술 환경에 부응하는 개혁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지속’을 상징하는 이들이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쇄신보다는 관행, 진화보다는 퇴행을 염려하게 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아쉽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구성 유감

문제는 문화재청이다. 무형문화재를 바라보는 문화재청의 관점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 대응을 모색하고 전승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말 잘 듣는’ 이들로 관리의 편의성을 꾀한 것이 아닌가? 민망할 정도의 극단적인 얘기들도 흘러나온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무용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 실기인 비중이 높다. 현장의 실기인들이 무형문화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무형문화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전통예능분야에서 음악의 경우는 대부분 전문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반해 무용의 경우는 실기인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무형문화재위원회 구성에서 장르안배 등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전통예능분야는 음악·연극·무용·의식·놀이·무속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총 140여 종목 중 무용분야는 7종목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통예능분야 전문위원 17명 중 무용위원은 약 9명에 달한다. 놀라운 숫자다. 편파구성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혹자는 말한다. 무용분야 위원이 많으면 좋은 것 아닌가? 라고. 사적(私的) 영역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공적(公的) 영역에서, 특히 조사·심의 등을 수행하는 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 장르 안배는 모든 행정의 기본이다. 의도적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무용계가 호의로 받아들일 것으로 인지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이렇듯 실기인 중심의 특정분야에 편중된 인적구성 및 전문성 결여는 향후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제도실행의 방향을 어둡게 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전통예능분야 위원은 총 7명이다. 그중 무형문화재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 유임됐다. 2016년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 시, 위원을 지낸 분들이다. 각자 역할의 경중은 있겠으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이번 무형문화재위원회 구성에서는 기존에 고수했던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예컨대, 당연직 문화재위원으로 포함됐던 국립국악원장의 경우 이번에는 제외됐다. 또 그동안 보유자는 전승현장 당사자들과의 이해관계를 우려해 배제했으나 이번엔 예외적으로 포함시켰다. 그것도 신무용 전승자로서 이북5도청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전문위원으로 선임됐다. 더욱이 무용분야 2명의 위원 중 1명은 신무용 계보선상의 무용가가 차지했다. 두 사람 모두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와 동문이라는 사실은 공교롭다.

여전한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의 파장

문화재청은 2015년 12월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을 대상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심사를 실시했다. 3개 종목에서 총 27명이 응시했다. 15년만의 일이었다. 원로전승자들에겐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려온 절호의 기회였다. 결과는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만이 보유자로 인정예고 됐다. 그러나 무용계의 거센 반발로 보류 결정된 상태이다.

파장은 예상 외로 컸다. 심사위원의 편파구성, 특정 학맥의 영향력 행사, 콩쿠르 심사방식 등 불공정 심사를 행한 문화재청은 국민적 공분(公憤)을 샀다. 무용계는 수차례 성명서를 발표했다. 보유자후보에서 전수조교로 강등된 원로전승자의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약 100여건에 달하는 언론 비판기사가 쏟아졌다. 그런 점에서 2016년은 무형문화재제도사(無形文化財制度史) 혹은 한국무용사(韓國舞踊史)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은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부당한 문화재행정의 본보기다.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된다. 문화재청은 불공정 심사라는 거센 현장의 비판에 직면하자 결국 태평무 보유자 인정 보류결정을 발표했다. 이는 문화재청 스스로 불공정 심사 및 행정절차의 오류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사 공모 시점부터 현재까지 약 5년의 세월이 낭비됐다. 그 사이 원로전승자들은 5살을 더 먹은 셈이다. 귀중한 시간을 날려버린 원로전승자들의 한(恨)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국가의 직무유기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저질러진 부당한 문화재행정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계되고 있다. 촛불혁명을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정기조로 ‘공정·평등·정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가 국정기조로 내세운 ‘공정·평등·정의’의 가치 실현을 위한 문화재청의 노력은 실종된 듯 보인다.

무용계에 엄청난 파장을 초래한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문화재행정의 정책 당국은 물론이요, 무형문화재위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중있게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문화재위원이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전문성이 결여된 편파구성에서 예측되듯 향후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활동이 무용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승무· 살풀이춤의 심사결과를 발표하라

문화재청 및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에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의 선임근거 및 장르안배 기준을 공개하면 어떨까? 문화재청은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 구성에 즈음하여 정식공모를 실시했다. 이제는 무용콩쿠르조차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심사점수까지도 공개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무형문회재위원회 공모에 응한 추천단체와 학회는 물론이고 위원 및 전문위원을 어떤 기준으로 선임했는지 공개하기 바란다.

둘째, 지난 2년간 실시한 무형문화재제도 개선방안 결과를 밝혀달라.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이후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을 모색했다. 50여년 만의 일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 토론회, 공청회 등이 개최됐다. 무용계를 대상으로 한 공식 토론회도 두 차례 치러졌다. 그러나 일체 피드백이 없다. 또 무용계 지도자들과 나선화 전 청장과의 면담도 두 차례 이뤄졌다. 나 청장은 합리적 해결을 위한 해법을 내놓기도 했으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셋째, 2015년 승무·살풀이춤·태평무 종목에 대한 보유자 인정심사를 실시했다. 약 2년 6개월이 경과했으나 지금껏 발표를 미루고 있다. 예컨대, 대학입학고사를 치루고 2년 6개월이 지났는데도 합격자 발표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승무·살풀이춤의 경우, 개인이 아닌 보존회로 지정해 달라고 해서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고 했으나 해당 보존회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항변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왜 승무·살풀이춤의 심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는가?

유감스럽게도, 무용분야와 관련하여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을 것이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는 향후 2년간 무형문화재 정책,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보유단체의 지정 및 해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선정 등을 심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누구보다 무형문화재위원장의 소임이 클 수밖에 없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장은 한국 희곡분야의 제3세대 학자로 알려진다. 전통연희 분야 전문가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나이를 잊은 채 전공을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실로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몇 해 전엔 신무용 제2세대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김백봉·송범에 대한 평전을 출간하여 무용학계의 결핍을 채워줬다. 그런데 평전의 주인공인 김백봉·송범이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의 스승이라는 점 또한 우연의 일치일까?

더욱이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에 신무용 계보선상의 인물들이 대거 진입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가 끝내 보류 결정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서양춤의 이식인 신무용 계승자라는 점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제2기 무형문화재위원회에 태평무 이수자들의 진입도 두드러진다. 직무의 성격상 전문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무형문화재위원회 무용분야에 실기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다는 것도 보편적이지 않다.

見利忘眞(견리망진) 태도

돌이켜 보건대, 1960~80년대 활동한 제1세대 문화재위원들은 이름 석자로서 그 권위를 대변했었다. 문화재위원의 말은 곧 법이었다. 이두현·임동권·정병호·장주근·지춘상·하효길, 이보형 선생 등이 떠오른다. 무형문화재 분야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 누구도 전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학자의 직분으로 전통문화를 보전·계승하려는 순수한 열정과 집념에 모두가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특히 전공을 초월한 지나친 간섭과 개입은 그것이 설혹 애정 어린 관심의 표명이라 할지라도 절제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민족의 혼과 얼을 무너뜨리고 무용계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며 나아가 생태계마저 파괴하는 일이라면 더욱 자제할 일 아닌가. 그 누구라도 말이다.

문화재위원이라는 권럭을 내세워  허약한 무용계에서 유어예(遊於藝)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다. 특히, 무형문화재 분야에서 정권을 초월하여  이른바 '꽃길'을  걸어온 분들이기에. 무형문화재는 그 실체가 비록 무형(無形)이라 할지라도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향유하고 즐기는 엄연한 공적(公的) 자산인 것이다. 지식인 혹은 전문가로서 사(私)를 버리고 공(公)의 직분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장자』에 나오는 ‘견리망진(見利忘眞)’은 큰 일깨움을 던져준다.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히면 참다운 나를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참된 학자라면 더욱 더 견리망진의 태도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이를 망각할 경우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이, “지식인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의 찌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