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따로 또 같이, 디지털 산책' 좀 더 조화를 이뤘더라면
[전시리뷰] '따로 또 같이, 디지털 산책' 좀 더 조화를 이뤘더라면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6.13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디지털 프롬나드'

'따로 또 같이, 디지털 산책' 서울시립미술관의 개관 30주년 기념전 <디지털 프롬나드>를 보고 느낀 한 줄 생각이다. 개관 30주년을 맞고 서울 서소문본관을 새롭게 단장한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에 미술관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자는 마음으로 미술관 소장품과 젊은 작가들의 뉴커미션 작업을 모은 <디지털 프롬나드>를 열었다.

프롬나드. 불어로 '산책'이라는 뜻이다. 즉 '디지털 산책'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디지털이 전시의 중심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미술관 측은 "관람객이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소문본관 2~3층의 전시장과 계단, 복도를 산책(프롬나드)하듯 거닐면서 전시에 참여해보는 기회"라고 밝히고 있다. 부담없이 거닐면서 작품을 보고 참여하는 전시라는 게 미술관의 설명이다.

▲ 박기진의 <공>. 스피커와 진동시스템 등이 구형 안에 들어있다.

전시된 소장품은 '자연과 산책'을 키워드로 한 작품 30점이다. 김환기, 유영국, 천경자, 김수자, 장욱진, 이불 등 한국 현대 미술가의 주요한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여기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미술과 미술관, 그리고 소장품에 대한 재해석을 보여주는 10점의 뉴커미션 작업들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보면 딜레마를 안고 시작한 것일수도 있다. 미술관 측이 지정한 작품으로 소재를 한정하면 젊은 작가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작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소장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작품들이 나오면서 조화가 깨질 우려가 있다.

미술관은 일단 지정을 하되 강요는 하지 않았고 작가들은 소장품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을 넘어 '미술관'이라는 존재, 더 나아가서는 '미술품을 소장한다는 것'이라는 상상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 조영각의 <깊은 숨>. 지나가는 관객, 바라보는 관객이 하나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된다.

그렇다면 왜 '자연과 산책'일까? 미술관 측은 디지털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디지털이 어떤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그것이 30년 전 작품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의도는 충분히 파악된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표현을 선보이고 있었다.

대형 스피커와 진동시스템이 안에 들어있는 구형을 통해 소리와 진동을 느끼지만 그 소리와 진동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숨기는 것을 표현한 박기진의 <공>, 소장품 30점의 목록을 키워드로 검색해 동일한 년도와 단어로 찾아낸 18개의 뉴스를 각 작품 제작년도에 태어난 관객이 낭독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Sasa의 <18개의 작품, 18명의 사람, 18개의 이야기와 58년>, 한 소장품에 대한 키워드를 관객이 선택하면 그 키워드를 반영한 변환 필터를 적용해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일상의실천의 <Poster Genarator 1962-2018>은 관객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지고 느끼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이미지의 작품을 만드는 또 다른 창작자라는 새로운 생각을 실현해보인다.

그런가하면 조영각의 <깊은 숨>은 아예 로봇 팔을 통해 관객을 미술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지나가는 관객들의 모습이 로봇 팔을 통해 그림 형태로 비춰지고 얼굴을 대면 내 얼굴이 바로 그림처럼 나타난다. 이처럼 디지털로 변화되면 미술이, 미술관이 어떻게 변화될까라는 생각 속에 하나의 예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디지털 프롬나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일상의실천의 <Poster Genarator 1962-2018>. 관객이 터치한 키워드에 따라 소장품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조화'였다. 디지털 퍼포먼스와 다양한 미디어 예술이 등장하지만 관객이 작품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내기가 퍽 어렵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같이 전시된 소장품과의 관계, 그리고 조화를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에 왜 이 작품이 있고, 이 작품이 이 소장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에 전시는 답을 하지 않는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관객이 알아서 판단하라. 그게 답이다' 사실 그 말이 가장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관객이 전시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러면서 이해를 해야 '산책'이 가능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은 단지 거니는 것만이 산책이 아니다. 자연 풍경을 보고 느끼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상상해보는 게 산책이다. 좀 더 친절한 '디지털 산책'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결국 이 전시는 '따로 또 같이, 디지털 산책'이라는 결론을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