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애리-팝핀현준 부부 “우리는 예술적 동지, ’전통’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무대”
[인터뷰] 박애리-팝핀현준 부부 “우리는 예술적 동지, ’전통’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무대”
  • 이은영 발행인/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6.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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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 국악으로 만들어 세계 무대 들려주고파” VS "후배 위한 공연예술 마련해 주는 모범 선배 되고 싶어"

팝핀현준 22일 홍대서 ‘춤추면 희망온다’ 특강, 박애리, 7월 6~7일 ‘서촌공간 서로’무대 꾸려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할까? 이들의 활약은 정말 눈부시다. 방송 출연과 공연을 통해 국악과 팝핀의 접목을 보여주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그러면서 국악의 멋과 맛을 알리고 있는 박애리-팝핀현준 부부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의 음악과 춤을 듣고 공유하며 그들은 ‘예술적 동지’가 됐고 자신의 분야를 지키면서 국악의 대중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국악의 활력소가 됐고 이후 많은 젊은 소리꾼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박애리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제2회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 때 팝핀현준과 결혼을 앞두고 연인인 박애리를 돕기 위해 그 자리에 동석한 것은 본지와의 만남의 인연을 더해준다.

싱가폴에서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이 만나고 합의문을 발표하던 시간,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을 지키는 두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곳곳에 팝핀과 소리꾼의 손길이 가득 담긴, 두 사람의 집 옥상에서 진행한 ‘정상 인터뷰’(?) 내용을 지금 공개한다. 

▲ 소리꾼 박애리-팝핀현준 부부.

결혼 후에 두 사람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애리(이하 애리) : 이전에는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는 박애리라는 국악인이 있어’ 정도만 알려졌는데 현준씨를 만난 후에는 대중들이 ‘국악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저뿐 아니라 국악이 잘 선보이는 기회가 마련된 것 같다. 

그 덕에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고 ‘국악이 저렇게 좋은 거였어’라고 대중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한 그 물꼬를 틔워준 게 현준씨다. 국악이 정말 좋은 음악이고 듣고 싶어지고 누구나 가슴이 저릿해지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면 직접 대중과 마주하고 대중이 듣고 보고 들어야하지 않나. 정말 현준씨 덕에 무대의 폭이 넓어지고 더 다양해지고 있다. 

팝핀현준(이하 현준): ‘아리랑’이나 ‘도라지타령’ 정도가 내가 아는 국악의 전부였고 국악기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원래는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가야금 선율이나 대금 산조 등을 들으면서 정말 클래식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국악을 하시는 분들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애리씨를 통해서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정작 대중화를 외치시는 분들이 대중의 성향을 하나도 모르더라. 그야말로 아저씨, 꼰대였다. 국립단체에 있으면서 공무원적인 마인드로 ‘대중화로 만들어’라고 그냥 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번은 국립극장을 클럽처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분은 클럽을 가본 적이 없단다. 클럽도 못가보면서 무슨 클럽을 만들자는건가. 그래서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하니 ‘내가 그 곳을 어떻게 가냐’라고 하더라. 자신이 직접 분위기를 느끼고 젊은 친구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알아야하는데 그냥 월급만 받고 일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정말 한심했다. 내 스스로가 대중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히 박애리와 팝핀현준이 만나서 보여주는 이벤트성 공연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야’라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려하는 것이다. 자꾸 대중에게 얼굴을 비추니까 호감이 점점 생기고 국악과도 어울리니까 재미있어한다.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재미를 느끼니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단순하다. 영화는 싸우는 것 아니면 울게 하는 것, 노래는 트로트 아니면 아이돌이다. 팝핀이나 비보이가 미국에서는 대중적이지만 우리에게는 대중적이지 않다. 깊이 빠져야 이해를 할 수 있는게 팝핀이나 비보이, 힙합인데 우리는 단순히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어린 친구들이 짤막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박수를 친다.

국악이나 한국무용을 사람들이 안 본다고 하는데 싫어한다고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볼 기회가 없어서 못 보는 것이다. 무대가 많지 않고 TV에서 방영을 한다고 해도 심야 시간에 편성하고 그리고는 시청률 낮다고 광고도 안 붙고 황금시간대 방영이 어렵다고 한다. 수많은 채널들이 생겨나지만 국악방송은 TV에 하나, 라디오에 하나밖에 없다. 우리나라 문화를 스스로 보호해야하는데 오히려 사대주의로 빠지는 느낌이다.

최근에 평양 공연에 국악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적어도 우리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박애리를 가리키며) 지금 제 옆에 보물이 앉아있지 않나. 과소평가되고 있다.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같이 콜라보를 하다보면 음악적인 면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텐데

애리 : 서로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려주고 배워가며 하고 있다. 현준씨의 경우 누구나 얼핏 들었을 굿거리 장단 정도만 알고 있는데 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 장단이 무슨 장단이냐’라고 물어보고 그렇게 한국의 장단을 알아가고 우리 소리를 알아가고 있다.

반면에 현준씨는 내가 예전에 듣지 못한 트렌디한 음악들, 팝 음악과 랩을 들려주고 ‘이 곡에 소리를 할 수 있지 않나’는 제안을 한다. 외국 곡이지만 우리 장단과 비슷한 점을 찾아보고 그것을 연결해보고 새로운 소리를 만들고, 그렇게 현준씨가 들려주는 음악에 제가 작창을 하면 새로운 소리가 나온다. 서로가 알고 있는 음악을 서로 공유하고 알려주고 그렇게 서로의 멋을 알아가며 좋은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 박애리와 팝핀현준의 만남은 '국악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배경 그림은 팝핀현준의 작품.

수많은 무대에서 함께 공연했는데 최근에 한 공연이 있다면?

현준 : 하도 많아서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네(웃음).

애리 : 최근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지난해 10월에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이다. 그 때 한국 대표로 성화가 채화되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 갔는데 100여명 정도의 그리스 공연팀이 퍼포먼스를 했다. 우리팀은 10여명 정도 됐는데 가장 한국적인 소리로 시작해 ‘아리랑’으로 이어지고 뒤에는 현준씨의 춤과 신명나는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적은 인원으로도 어마어마한 공연을 만들어냈다.

장관님을 비롯해서 현장에 있던 분들이 모두 감동하고 고마워했다. 현준씨의 에너지가 정말 큰 것 같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고 춤은 눈으로 보는 것이잖나. 소리가 현준씨 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발현되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 같다. 

박애리씨는 지난 4월 국립극장에서 <춘향가> 완창을 선보였다

애리 : 한 시간 반 정도, 잘라서 부르거나 부분만 부른 적인 여러번 있었지만 완창은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했다. 춘향가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제일 긴 데 그 긴 <춘향가>를 왜 하냐고 하기에 처음에는 우스갯소리로 ‘한 살 이라도 젊을 때 힘든 소리를 해야한다’고 했었다.

<춘향가>는 내가 처음 배운 판소리였고 어릴 때부터 줄곧 배우고 불렀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춘향가> 완창을 해온 셈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완창 연습을 해야지’하고 한 것이 아니라 체력 관리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 공연을 앞두고는 다른 공연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몸을 관리하는 데 주로 집중했다.

현준 : 직접 가서 봤는데 중간중간 나오는 사설의 경우 어려운 말도 많고 가사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잖나. 그 어려운 가사를 틀리지 않고 부르고 노래와 창을 하기에도 바쁜데 연기까지 일인다역을 해내니 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잘한다고, 대단하다고 느끼게 됐다.

애리 : 없는 사설을 집어넣기보다는 기본 사설에 충실하게 소리하되 그 매력을 100% 활용하려했다. 판소리가 관객과의 소통 놀음이라고 하는데 관객들과의 밀당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 바로 앞에 있는 관객에게 ‘방자야’, ‘향단아’ 하면 관객들이 웃으신다. 그 관객은 이 공연에서 향단이가 되고 방자가 된다. ‘농부가’를 할 때는 후렴구를 알려주며 후렴구가 열 번 정도 반복되니까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관객들이 후렴을 다 함께 불렀다. 관객들에게 참여하는 재미를 준 것이다.

후에 관객들의 평과 리뷰를 봤는데 한 분이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길다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는 리뷰를 썼다. 관객에게도 6시간을 버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 6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같이 울고 웃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판소리가 이렇게 멋있고 훌륭한 장르임을 새삼 느꼈다는 분들이 많았다. 박애리에 대한 칭찬보다 판소리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더 좋았다.

현준 : 어떤 분이 이번 공연을 보고 ‘참 영리하다. 완창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그 보물이 지금 제 옆에 있다니까요(웃음).

▲ 박애리

애리씨는 지금 문화콘텐츠에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리 : 고대 대학원 유영대 교수님이 개설한  문화콘텐츠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 중 서장원 교수님의 '문화콘텐츠와 인문학' 수업을 듣다가 고대 그리스의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디아>를 판소리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전에 창극으로 발표된 적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1인이 하는 판소리다.

판소리는 국내 공연보다 외국 공연에서 더 반응이 뜨겁다. 얼마 전에 중국에서 ‘아시아 전통문화 쇼케이스’가 있어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하고 더 보고 싶어한 것이 판소리였다. 폭넓은 음역대로 소리를 하는 것에 감동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메디아의 감성, 햄릿의 고민 등을 이런 판소리로 전한다면, 이 소리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면 어떤 장르보다 더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판소리 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작창이 중요한데 직접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고 현준씨와도 같이 생각하려한다.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히 해낼 수 있다고 본다.

문화콘텐츠가 원형에서 현대에 맞는 새로운 것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라고 다들 보지만 나는 역으로 원형을 부각시키는 것을 콘텐츠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젊은 소리꾼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를 통해 국악을 좋아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애리 : 굉장히 좋은 일이다. 내가 활동할 무렵만해도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판소리 하나에 매진해도 부족할텐데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다. SG워너비의 <아리랑> 피처링을 했을 때는 선생님들께서 ‘국립창극단 주연배우가 왜 대중가수의 보조 역할을 하느냐, 속상하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소리꾼으로 더 정진하라는 애정이 담긴 말씀이었다.

하지만 우리끼리만 좋다고 좋은 게 아니지 않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도전을 했는데 국악을 전혀 모르는 10대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에 처음보는 여자가 한복을 입고 소리를 하는 것에 신기해하고 인터넷 지식검색으로 ‘그 곡이 판소리인가요’ ‘멋있네요’ ‘감동이네요’ ‘부르시는 분이 누구죠’ 등을 묻고 있었다.

판소리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여지의 끈을 남기고 그 끈을 잡고 가다보면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을 알리고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젊은 친구들도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또래들에게 나누어주고픈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모든 분들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하고 있는 것에 깊어지면서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준씨와 내가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집착해 서로의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잘해야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안숙선 선생님도 소리를 놓지 않았기에 지금도 인정을 받으시고 다른 장르와 협업을 하고 계시다. 이것을 지켜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이들에게 골고루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이 있다. 이번에 <춘향가> 완창을 했으니 10년 안에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을 모두 하겠다고. 가장 긴 <춘향가>를 했으니 다음엔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웃음)

▲ 박애리와 팝핀현준의 공연

스승들에게 가장 많이 배운 것이 있다면

애리: 여러 스승님들을 만나면서 자기 관리는 이렇게 하는거다, 연습은 이렇게 하는거다라는 걸 배웠다. 처음 소리를 가르치신 스승님은 하루에 일정 분량만을 가르치시고 그것을 반복하셨다. 그러면서 점점 완벽해졌다. 정말 조금씩, 차분히, 제대로, 명확하게 소리를 가르쳐주셨다. 

모든 소리에 다 힘을 주지 말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집중과 이완, 정확하게 강조되어야 할 부분을 강조해야한다는 것을 배웠고 대단치 않은 공연이라도, 5~10분만 하는 공연이라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에 신경쓰지 말고 소리에 집중해서 좋은 소리를 들려줘야한다는 것도 배웠다.

'열 사람이 다 소리가 좋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한 사람이 더 무섭다'는 가르침도 있었다. 안숙선 선생님께서 무대에서 실수를 하셨는데 그 공연을 본 스승님께 들은 말씀이라고 한다. 안 선생님은 음식을 가려서 드시고 자극적인 음식을 드시지 않을 정도로 관리를 하셨는데 그 때는 참 안돼 보이셨지만 어느덧 저도 그렇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 활동이 많아지니까 몸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들이 하나하나 쌓였고 이번 완창 무대를 하면서 이 가르침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공연을 앞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것도, 몸 관리에 신경쓴 것도 다 이런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빨리 자라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조급해지면 안 좋은 습관이 생긴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좋아서 하다보면 점점 자라게 된다. 

▲ 팝핀현준

팝핀현준씨는 자신의 분야에서 어떤 새로움을 찾으려하는지

현준 : 솔직히 우리는 시스템이 없다. 애리씨는 쟁쟁하신 선생님들이 앞에 계시고 그분들의 길을 이어받고 인간문화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쪽에는 그런 분들이 없다. 내가 선구자다. 이 나이 되도록 춤을 춘 선배가 한 명도 없다. 성공하면 다 춤을 포기하고 심지어 안 좋은 일에 이름이 나온다(웃음).

저렇게는 살지 말고 내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내 삶이라고 본다. 따로 어떤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꾸준히 춤을 추고 애리씨와의 콜라보를 통해 국악과 내가 하고 있는 힙합문화를 함께 알리고 싶다. 

애리 : 사람들이 현준씨에게 갖는 편견이 있다. ‘언제까지 춤출 수 있겠냐? 40 되면 은퇴해야하지 않나?’ 아니다. 지금이 현준씨의 전성기다.

현준 : 그런 편견은 자기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 나이에 힘드니까 나도 힘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예술은 해가 갈수록 깊어지는 거다. 내가 단순히 ‘오빠 멋있다’ 소리 들으며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은퇴해서 연예인으로 머물면 된다. 그건 싫다.

공연하다가 ‘야, 힘든데 좀만 쉬었다 하자. 나이 먹으니까 안되네’ 이렇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공연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더 깊어진 모습으로 보일 것 같다.

사무실과 집을 장식한 그래피티가 팝핀현준의 솜씨라는데,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현준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어릴 적 꿈도 화가였다. 그런데 중학교 때 어머니와 함께 미술학원에 갔는데 그 학원 원장이 어머니에게 “그림에 소질이 하나도 없네요”라고 말하더라. 그 뒤로 화가의 꿈은 포기했지만 그림을 종종 해왔다. 얼마 전에는 광주 나눔의 집에 돌아가신 할머니 10명의 초상화를 기증했다.

애리 :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림이 더 순수하다. 지난해 한 대학 교수님도 현준씨 그래피티를 보면서 ‘그림 절대 배우지 마라. 배우면서 순수함을 잃는다’라는 말을 전했을 정도다.

▲팝핀현준과 박애리는 두 손을 꼭 잡고 '따로또같이' 예술의 동반자로 정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애리 : 7월 6~7일에 이희문 소리꾼이 기획 연출하는 공연을 ‘서촌공간 서로’에서 하게 됐다. 무대가 아담하고 작아서 가장 최소의 인원을 가지고 단독 공연을 갖게 된다. 둘이 함께 하는 공연은 6월말 고베 조선인 학교 공연, 그리고 8월 브라질 세종학당 개원 기념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현준 : 22일에 홍대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한다. ‘춤추면 희망이 온다’. 이 자리를 빌어 홍보를 좀 하고(웃음). 공연물을 만드는 것이 내 마지막 목표다. 현재 예술기획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공연예술을 하는 이들, 춤을 추는 이들이 쓰여지고 목적이 되는 것을 만드는 것이 후배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나이 70이 넘으면 무대 뒤의 감독으로라도 참여하며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애리 : 근데 현준씨는 70 넘어도 무대에서 춤 출 것 같은데?(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