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원하는 김수길의 ‘시간을 지우다’전
기억을 복원하는 김수길의 ‘시간을 지우다’전
  • 정영신
  • 승인 2018.08.13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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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진작업 ‘큐픽cupic’, 갤러리나우에서 오는 21일까지

우리에게 과거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미래는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상상 속에 태어나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들은 김수길의 ‘시간지우기’로 구체화된다.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으로 이어지는 끊임없이 흐르는 삶의 이야기들이 중첩된다.

‘감성을 주는 것이 미래를 지배하다’는 철학가 베르그송은 시간은 공간에 불과하고, 직관적인 삶의 흐름에 공감할 때 참다운 시간인 지속을 붙잡을 수 있다고 했다.

▲ '시간을 지우다' 사진가 김수길 Ⓒ정영신

사진가 김수길은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다가 감성이 말을 걸어올 때면, 과거에 축적되어 있는 시간을 조각조각 해체했다가 재구성한다. 과거의 시간을 오늘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바로 지난 8일부터 열리고 있는 나우갤러리 기획전 ‘시간죽이기’가 그의 세 번째 소환전이다.

▲ 보이지 않는 도시 (4) 150x100 Pigment Pri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그는 기억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을 중첩시켜 또 다른 미래를 구현해 낸다. ‘개념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듯 마주치는 일상을 그만의 기억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다양한 기억으로 편집된 이미지들은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근 그린다. 대중들에게 다소 낯선 ‘큐픽cupic’(큐비즘과 사진의 합성)으로 사진작업을 한 것은 영화에 심취한 그만의 고집이리라.

자신의 사진작업은 한 장면 한 장면에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며, 단편영화를 제작하듯 사진으로 스토리를 엮었다고 한다. 기억이 불러 낸 이미지들은 사라진 도시를 담은 단편영화처럼 차곡차곡 채집되어 새로운 미래로 안내한다.

▲ 김수길, 서소문 연가 90x60 Pigment. Prl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카페人’ 발행인 손인수씨가 쓴 평론을 보면 “꽃들 사이로 자전거가 보인다. 한쪽 구석엔 대걸레도 있다. 타자기가 널려있는 사진 위로 하얀 꽃이 지천이다. 담벼락 낙서 위에는 무용수들의 발이 차지하고 있다. 한쪽 벽에 있는 창문은 막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 한 여인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숨은 그림 찾듯 사진들을 응시하다 보면 저마다의 품고 있는 기억이 피어난다.”고 썼다. 손인수씨가 말하듯 김수길은 무수한 스틸 컷을 잘라내 영화 한편을 만들 듯 ‘시간지우기’를 통해 완성해 나간다.

▲ 보이지 않는 도시 (4) 90x60 Pigment Prl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영화가 우리네 일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듯이, 그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같은 장소를 시기별로 찾아다니며 변해가는 공간들을 채집한다. 사라져가는 도시에 대한 기억들이 때로는 낯설게 본질을 드러내지만, 사진가 김수길의 사적인 기억에서 비롯된 문제의식들을 ‘시간지우기’로 구체화시킨다. 그에게 사진이란 개인적 사색에 의한 고백이지만, 대중과의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 묘연의 방 2018 (3) 90x60 Pigment Prl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월간‘샘터’ 편집장인 이종원씨는 “작가 김수길에서 나는 종종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 고고학자의 집념을 본다. 그에게 ‘시간(時間)’은 지금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물리현상이 아니라 오래 전 기억의 지층 밑에서 봉인해 버린 과거의 유물로 존재한다. 켜켜이 쌓인 지층 아래로 파고 들어가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해내려는 사람- 내가 아는 김수길은 그런 일에 천작하는 사람이다.”고 쓰고 있다.

▲ 묘연의 방 2018 (2) 90x60 Pigment Prl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지우는 과정들은 잊지 않기 위해, 잘 기억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그는 2컷에서 많게는 8컷까지 여러 시점(視點)에서 찍은 사진을 서로 겹치면서 사진 한 장에 여러 이야기를 담아낸다. 과거에 존재하는 것도, 미래에 존재하는 것도 아닌, 여기에 존재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억을 바탕으로 채집된 체험이 구체화되어 추상적인 미래로 이끈다.

작업노트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늘 시간 속 기억으로 살아간다. 현실과 이상을 조율하기도 하고, 과거나 미래의 꿈에 빠져 환상을 찾기도 하며,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시간은 그대로 기억되지 않는다. 시간 속 경험과 느낌은 의식, 무의식적 편집을 거쳐 기억이라는 공간으로 저장된다. 그렇게 저장된 기억은 편집된 시간의 스토리가 만들어 진다. 그렇게 기억된 이야기는 나의 삶과 존재로 다가온다.”

▲ 2017- 36 90x60 Pigment Prlnt (사진제공:갤러리나우)

우리 겹겹이 겹쳐진 그의 사진틈새에 한 번 들어 가보자.

생각과 생각사이에 도사린 욕망을 엿보며, 제철에 피는 꽃처럼 봉인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자.

김수길의 ‘시간지우기’는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갤러리 나우 02-725-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