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신무용가 조택원의 행적을 찾아서(2)
[성기숙의 문화읽기]신무용가 조택원의 행적을 찾아서(2)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8.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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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택원 정신세계의 기원, 파리의 박물관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80여 년 전 조택원의 활동여정을 찾아 나선 파리탐방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가 왜 한국무용사에서 기념비적인 존재로 각인되고 있는지 순간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무용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일조한 조택원, 그의 정신세계의 기원을 찾아 나선 지난 여름의 파리탐방은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알다시피, 조택원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한국의 춤을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춤의 선구자다. 그는 한국무용가 중 최초의 파리 유학파로 기록된다. 파리에서의 경험은 창작의 자율성 구현으로 발효되어 이른바 춤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조택원의 무용관을 잉태한 파리는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특히 파리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박물관은 그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신세계를 살찌운 귀한 성소(聖所)였다.

자연스럽게 ‘조택원의 파리’를 추체험하기 위해 박물관 탐방으로 일정을 잡았다. 우선 파리의 심장부 콩코드광장으로 향했다. 콩코드는 파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유서깊은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프랑스혁명 때는 1,300여명의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이 처형되어 피로 얼룩지기도 했다. 피로 물들은 광장은 미래의 희망을 담아 화합을 상징하는 콩코드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콩코드광장 서쪽 편에 위치한 오랑주리미술관을 기점으로 국립장식미술관,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세느강 건너 오르세미술관까지 파리 제1구 지역은 소위 박물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콩코드역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향하면 오랑주리미술관과 마주한다. 이른 아침임에도 오랑주리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심상치 않다. 사뭇 진지하고도 들떠있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모네의 예술혼이 담긴 오랑주리

파리의 자존심 오랑주리는 모네의 필생의 역작 ‘수련’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모네는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라며 정원을 즐겨 그렸다. 0층은 온통 모네의 ‘수련’으로 채워져 있다. 타원형으로 설계된 천정을 통해 자연광이 스며들어 감상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정원을 재현한 모네 그림은 하늘과 구름과 물과 꽃의 하모니를 이뤄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빛의 작용에 의한 사물의 변화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리고 이토록 환상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다니!

▲오랑주리미술관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지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층에 전시된 르누아르, 세잔, 루소, 모딜리아니 등의 걸작들 속에서 마리 로랑생의 ‘스페인 댄서’의 발견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관능적이고 몽환적인 댄서의 모습을 환상적인 색감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로랑생은 20세기 입체파, 야수파로부터 영향 받은 프랑스 여류화가다. 사교계를 휘어잡은 당대 파리 여성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 유명세를 탔다.

인상주의의 진정한 성소라 할 수 있는 오랑주리를 곱씹어 음미하고는 1층과 지층 사이 층간공간을 활용한 카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미술관 내부의 독특한 공간구조가 새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오랑주리미술관은 온통 자연광을 이용하고 있으며 인공빛은 그저 보조수단으로 쓰일 뿐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모네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기념으로 자신의 작품을 오랑주리에 기증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작품을 시민에게 공개할 것,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하게 할 것, 그리고 미술관 내부는 자연광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작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이 담겨질 그릇(공간)까지도 세심하게 챙긴 따뜻한 마음가짐 그리고 시민과 함께하려는 공공성까지도 고려한 모네의 속 깊은 철학에 새삼 감동받는다. 그리고 그 철학이 도도하게 지켜지는 프랑스의 자존감 넘치는 문화정책이 마냥 부러웠다. 오랑주리의 품격에 흠뻑 매료된 심신을 일깨워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오랑주리미술관 모네의 '수련' 앞에서.

오랑주리미술관을 나와 세느강변 쪽으로 쭉 뻗은 길을 한참 걸으니 퇼르리정원 한 복판에 다다른다. 중앙의 인공연못에서는 분수가 하염없이 솟구치고 주변 벤치에는 여행자와 파리지앵이 뒤섞어 한낮의 여유를 즐긴다. 멀리 상젤리제거리와 에펠탑까지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확 트인 전경이 시원스럽다.

화려하면서도 품격 넘치는 퇼르리정원은 애초 왕실정원이었음을 상기시킨다. 1667년에 『신데렐라』의 작가로 유명한 샤를 레로의 요청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이런 내력 때문일까. 큰 규모를 자랑하는 퇼르리정원은 사치스럽고 호화롭다. 300년 넘게 파리시민과 여행자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고 있음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퇼르리정원 이곳 저곳을 배회하다가 정원 끝자락에 우뚝 서 있는 카루젤개선문 앞으로 다가선다. 카루젤개선문은 1808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기념하여 건립한 건축물이다. 나폴레옹이 규모가 작다고 불평하자 새로운 개선문이 세워졌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상젤리제거리에 있는 에투알개선문이 바로 그것이다. 1985년 라 데팡스에 세워진 신개선문과 함께 이상 3개의 개선문은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구도로서, 파리의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카루젤 개선문 좌측에 위치한 국립장식미술관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외관은 파리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고풍스럽고 품격이 넘친다. 장식예술과 의상, 보석, 섬유, 가구 등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별 호화로운 소장품을 보고 있노라니 눈은 더없이 즐겁다. 루브르박물관과 리셀리외궁전 중간에 위치한 국립장식미술관은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모처럼 여유롭게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루브르의 걸작들

세계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루브르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험난했다. 깃발을 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분주하게 이동하는 단체여행자 사이를 헤치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은 쏟아지는 한 낮의 태양빛도 아랑곳하지 않는 채 시종 가이드의 해설에 집중한 모습들이다. 생애 첫 파리 여행자라면 누구에게나 루부르는 필수코스가 아니던가. 수십 명의 여행자를 인솔한 가이드의 해설은 다국적 중계방송을 연상케 한다.

▲루브르박물관 전경.

루브르박물관은 길이가 1km, 너비 200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각지에서 약탈해온 문화재가 약 40만점에 이른다. 12세기 요새로 건축된 루브르는 14세기에 이르러 왕실궁전으로 사용되다가 16세기 프랑스아 1세가 수집한 이탈리아 회화를 전시하면서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프랑스 혁명에 즈음하여 시민들의 개방요구가 빗발치자 1793년 일반에 공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9년 루브르에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생겼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예오 밍 페이가 설계한 유리피라미드는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관람객들은 너 나 없이 중앙에 설치된 유리피라미드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 속 ‘오래된 미래’의 공간 속에 갇혀 역사와 문화, 예술의 숲을 거닐다 나온다. 각자의 기호와 심미안, 그리고 지성의 무게에 따라 느끼는 루브르의 숲에서 발견하는 질감은 제각각 다르리라.

사실 루브르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린단다. 박물관 안내지도를 들고 최소한의 동선에 따라 훑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루브르의 걸작들은 여전히 큰 감동을 안겨준다. 흰 대리석으로 제작된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는 근육이 뒤틀리는 형체 속에서도 평화로운 표정을 담고 있어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밖에 ‘밀로의 비너스’, ‘니케’,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모나리자’ 등 기념비적 걸작 앞에는 수많은 인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앞 관람객들.

루브르의 관람객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오묘한 미소를 머금은 모나리자 얼굴에 담긴 신비성을 간파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하다. ‘모나리자’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 찍는 모습을 연출한다. 언뜻 퍼포먼스를 연상케 한다. 수년 전 방문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날로그카메라에 의존하는 모습은 이젠 찾을 수 없다. 인류의 걸작 앞에서 시공의 경계를 초월한 지구촌 사람들이 연출하는 풍경 또한 이채롭다. 15세기경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자신의 그림을 대하는 오늘날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청년 조택원이 루브르에서 발견한 지성의 힘, 감성의 맥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루브르의 소장품 상당수가 제국주의 시절 약탈문화재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수용했을까? 걸작이 안겨주는 감동의 깊이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을 끌어안고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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