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컬처몽탕과 난장, 그리고 새로운 문화운동의 가능성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컬처몽탕과 난장, 그리고 새로운 문화운동의 가능성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0.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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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 미술평론가

<컬처몽땅 블랙난장>의 오프닝 행사가 어제밤 11시경 많은 관객들의 환호와 열기 속에서 끝이 났다. 정릉 골짜기의 한 켠, 국민대가 멀지 않은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컬처몽땅은 화가인 이해성과 소설가인 김정아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다.

검정색 톤에 그림과 철조 조각품, 책들이 다양한 소품과 어울려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에는 연극을 위한 소극장과 언제든지 노래와 연주, 퍼포먼스가 가능한 작은 무대가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짬뽕난장]과 [블랙난장] 등 즉흥적 퍼포먼스 실연은 페이스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새로운 예술의 실험이자 문화의 혁명이다.

미술, 연극, 문학, 사진, 건축, 무용, 음악, 패션, 영화, 판토마임, 방송, 신문, 잡지 등 다방면의 문화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예술적 소통을 기하는 일은 그간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드디어 컬처몽탕이 봉화를 올려 세상에 그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 주최를 알 수 없도록 장치한 '익명위원회(Anonymous Committee)'란 명칭은 차후에 발생할 지도 모를, 공을 둘러싼 치졸한 분쟁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익명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은 난장의 적극적 실천자인 이경호의 말을 빌리면 ''많은 사람들과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참여 가능한 기획을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컬처몽탕의 '난장'이 지닌 전위적 급진성과 저항성, 탈권위성은 이러한 익명의 모험으로부터 나온다.

사실 성능경, 홍신자, 유진규 등 각 분야의 정상급 예술가들과 이제 막 예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대학생들이 한 자리에서 작품 발표를 한다는 것은 기존의 제도적 틀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할 때,  '난장'이 지닌 개방성과 진취적 전위정신은 구태의연한 예술의 제도적 틀을 허물고 새로운 문화운동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컬처몽땅의 '난장'은 1970년대 초반의 제4집단을 위시하여 80년대의 한국행위예술협회와 바탕골페스티벌, 1990년대 이후의 춘천국제마임축제와 씨어터 제로의 실험연극,  2천년대의 밀레니엄 난장 페스티벌, 그리고 2002년에 출범한 한국실험예술제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전위적 예술운동이다. 

'짬뽕난장'과 '블랙난장'의 포스터에 사용된 짬뽕과 짜장면의 이미지는 문화의 혼종과 예술의 이종교배 등 문화의 다양성 추구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것들은 한국의 고유음식인 비빔밥과 함께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문화예술도 섞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익명위원회의 자신감과 창의력을 표상한다. 예술인의 서열과 예술의 위계에 대한 과감한 철폐는 기성의 가치에 대한 저항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난장은 문화적 순혈주의를 거부하며 다문화를 수용하는 개방성을 표방하는 동시에 지엽적인 가치보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로칼이 아닌 글로칼리즘의 폭넓은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며 세계와 꾸준한 교섭을 기도하는 것이다.

난장은 1차대전의 와중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다급한 어조로 세계에 타전하기 시작한 캬바레 볼테르의 연행을 연상시킨다. 소란과 소동, 기성의 가치에 대한 전복과 야유, 시도 때도 없이 터진 개그와 조크 등은 사치와 풍요 속에 잠겨 세상이 어디로 떠내려 가는지 조차 모르는 태평한 대중에 가하는 문화적 일격일 수 있다. 그 싹이 서울시의 한 복판에 있는 정릉의 한적한 골짜기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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