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자존심을 만난다, 잊었던 근대미술사를 되찾는다
'대한제국'의 자존심을 만난다, 잊었던 근대미술사를 되찾는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1.2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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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대한제국'은 우리에게 어떤 국가로 알려져 있을까? 자주 독립의 능력도 없으면서 '허장성세'로 일관한 국가로 기억되고 있을까? 혹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왕조를 이어가려했던 '자주국가'로 기억되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대한제국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로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대한제국의 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의 개막 직전,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전시를 소개하면서 '한국 근대미술사의 사각지대'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곧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전시를 보면서 우리는 근대미술의 태동 과정과 더불어 대한제국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려했던 '제국'의 자존심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눈에는 열강들에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나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대한제국은 어떻게든 '제국'의 이미지를 남기려 애썼다. 그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이 전시다.

검은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 어진>을 시작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그려진 불화 <신중도>다. 이 그림에는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호법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문성 만총 정연 외 10인 신중도神衆圖 1907 면에 채색 181.7x171.2㎝ 신원사 소장
▲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19세기 말-20세기 초, 종이에 채색, 10폭병풍, 139.6x366cm,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Collection of Museum am Rothenbaum
▲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1902년 추정 비단에 채색과 금박 227.7x714cm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Honolulu Museum of Art Gift of Anne Rice Cooke 1927

전통적 화원화 기법에 서양화법을 절충한 <곽분양행락도>는 대한제국의 새로운 궁중회화 경향을 보여주고 금박을 사용한 <해학반도도>는 대한황실의 자존심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에 채색을 하고 금박을 수놓으며 궁중회화의 격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허장성세이기보다는 제국의 자존심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이 전시에는 고종과 순종, 대한제국 주요 인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김규진의 첫 고종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을 비롯해 왕실과 대신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보여지고 외국 잡지가 소개하는 대한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고종의 사진은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고 이 사진을 바탕으로 많은 화가들이 고종의 어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왕의 얼굴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의 등장은 왕과 백성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용안'은 이제 신성한 존재에서 벗어나고 있다. 근대화가 이렇게 다가오고 이렇게 왕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 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1905년 추정, 채색 사진, 22.9x33cm,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Newark Museum, Gift of the estate of Mrs.Edward Henry Hariman, 1934

전시는 대한제국이 마침내 무너진 후 궁중에서 일했던 화가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며 이를 통해 한국 근대미술이 발전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김규진, 변관식, 안중식, 채용신, 김은호로 이어지는 근대미술의 역사가 공예와 병풍, 회화를 통해 나타나고, 우리는 이를 보며 근대미술의 하나의 퍼즐을 맞추는 발견을 하게 된다.

이들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림을 그린다. '장인'에서 벗어나 '예술가'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그들의 활약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잇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는 잊었던 대한제국의 자존심과 더불어 제국은 멸망했지만 예술은 살리려했던 이들의 노력을 볼 수 있는, 그리고 '사진'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발전한 것은 물론 예술인들의 인식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됐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전시다.

적어도 대한제국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던 간에, 이들이 이런 역사를 거쳐왔고 조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려했다는 노력이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근대미술이 발전했다는 점은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숨겨진 혹은 우리가 모르고 넘어간 미술의 역사,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를 이번에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019년 2월 6일까지 열린다. 참고로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가이드 투어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종 역을 맡은 배우 이승준이 특별 홍보대사로 참여했다고 하니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