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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춤이 된 시와 그림-육완순의 ‘초혼’, 김성한의 ‘기억의 지속’
2018년 12월 03일 (월) 18:25:20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무.념.무.상(舞.念.無.想)’이라고 이름붙인 서울무용제 개막공연은 11월 20일 개막식 행사가 끝난 직후 아르코예술 대극장에서 펼쳐졌다.

Amazing Maestro란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4명의 원로 대가들이 보여준 기념비적인 무대였다. 김인희와 함께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고 우리나라 모던 발레를 개척한 제임스 전의 ‘Stairway to Heaven(천국으로 가는 길)’, 창무회를 설립하고 김백봉∙배정혜와 다른 한국 창작무용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김매자의 ‘光-Shining Light’, 선무(禪舞, Zen Dance)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선옥의 ‘2018 색즉시공’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60대(제임스 전)로부터 시작해서 70대와 80대로 이어지는 나이순 배열이다. 

마지막 순서이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육완순의 ‘초혼(招魂)’이다. 1963년 현대무용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국내 최초로 설립된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대무용가를 배출한 명실상부한 현대무용계의 대모로서 지금도 공연마다 빠지지 않는 열정을 품은 육완순이 직접 무대에 오른 소중한 무대다.

김소월의 시 ‘초혼’이 가수 이문세의 육성으로 들려온다. 무대가 밝아지면 위아래를 흰옷으로 단장한 여인이 바윗돌 위에 앉아 있다. 그녀의 앞에 통나무로 만든 장대모양의 옷걸이대가 비스듬히 걸쳐져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문세의 낭송은 음악적 운율을 가졌다. 육완순의 춤은 움직이는 시(詩)가 되고 소월 시는 그녀의 몸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넘어가는 붉은 햇살을 받으며 돌 위에 선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로 그녀는 허공을 응시한다. 하늘높이 들어 올린 두 손은 자랑스레 자라난 하트 모양의  사슴뿔이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의 운율을 따라 나이를 잊은 그녀의 몸은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고 숨죽인 객석에선 감동의 눈물이 하나 둘씩 배어나온다. “그대 오는가 나그네 새 되어/ 이 들판에 눈부신 흰 빛의 나그네 새되어...그대 눈부신 흰 빛의 나그네 새 되어/나그네 새 되어” 그녀의 흰 옷에서 양성우의 시(나그네 새) 한 구절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춤사위다.

“춤은 절대 늙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지속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남긴 그녀의 말이 “춤은 사라지기에 영원하다”는 알랭 바디유의 명언과 오버랩 되면서 긴 여운을 남겨준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올 최고의 공연으로 기억하고 싶다.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평소에 무대로 쓰이는 공간에 의자를 늘어놓아 객석을 만들고 계단식으로 된 객석이 무대로 변신했다. 계단 한 가운데 액자틀모양의 출입구가 설치되고 객석과 무대 사이를 기다란 테이블이 경계 짓고 있다.

네 명의 무용수들이 계단식 무대와 함께 객석의 2층과 1층을 폭 넓게 사용한다. 김성한이 살바도르 달리의 명화 ‘기억의 고집(Persistence of Memory’(1931)을 소재로 만든 2018년 신작 공연 ‘기억의 지속’(11.10~11)의 무대구조다. 기억과 현실을 넘나들며 연결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의식의 흐름을 추적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무대 2층에 흉측한 가면을 쓴 남성이 아래를 주시하고 있다. 줄을 타고 내려온 그가 객석을 헤집다가 가면을 벗어던지고 무대로 뛰어오른다. 가면은 위선이고 가식이며 과거의 악연이다.  자지러질 듯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창문을 통해 그 여인이 무대로 나아온다.

창문은 기억의 창고와 현실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의식의 통로이며 과거와 현재를 갈라놓는 시간의 경계다. 노랑, 초록, 빨강, 흰색 등 원색의 옷을 입은 네 명의 출연자들은 층계를 오르내리고 창문을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들이 가졌던 욕망과 상상력, 과거의 아픈 기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들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엔 네 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시계, 네모난 언덕 위에 반쯤 내려뜨려진 시계, 말인지 사람인지 혹은 바위인지 모를 물체 위에 안장처럼 걸쳐 있는 시계, 개미들이 몰려들어 바늘의 형체조차 없어진 시계들이다. 각기 다른 시간을 가르치고 있는 시계들은 치즈가 녹아내리듯 반쯤은 흘러내린 모양이다.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영향을 받았을까. 김성한이 만들어내는 무대 역시 달리의 그림만치 초현실적이다. 그동안 흔히 소재로 삼아온 신곡(단테), 구토(사르트르), 이방인(카뮈), 보이체크(뷔히너) 등 소설에 달리의 그림까지 추가된 김성한의 작품세계는 난해하다.

춤이 보이지 않는 거친 몸짓, 음악 대신 기계적 음향에 주로 의존하는 그의 작품에서 리듬감을 찾기는 어렵다. 관객을 희생하면서도 이러한 특징을 고수하는 것이 그의 춤 캐릭터일 수는 있지만 작품의 선택은 결국 관객의 몫임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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