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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금연주자 이생강 “우리 소리 끝까지 들어보라. 깊이와 맵시가 있다”
“국악의 원형 절대 잃지 말아야, 민속악 가르칠 양성소 반드시 필요”
2018년 12월 05일 (수) 13:31:43 이은영 발행인/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이생강. 이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귀에는 은은한 대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다섯 살 때 단소를 처음 만진 이후 그의 손에는 소금과 피리, 태평소, 퉁소, 대금이 쥐어졌고 그의 연주와 소리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는 지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명인’의 경지에 올라있다. 그의 소리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고, 그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다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악 연주자로 도약하는 길은 여전히 멀다. 궁중악에 비해 민속악이 홀대되고 연주자에 대한 관심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생강’이라는 이름만 기억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는 후배들과 어린 학생들을 위해 양성소를 만들고 싶어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중간에 큰 실패를 겪는 어려움도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그것도 그의 염원을 꺼뜨리지 못하고 있다.

국악의 원형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우리 소리를 끝까지 들어보라’라고 당부하는 이생강의 이야기, 이제 시작하려한다.

   
▲ 대금연주자 이생강

선생께서 악기를 배우게 된 과정이 있다면

내가 다섯 살에 단소를 만졌으니까 벌써 악기 잡은 지 80년이 되어가네(웃음). 손에 잡히는 악기부터 먼저 배웠다. 단소, 소금, 피리, 태평소, 퉁소, 대금... 대금을 마지막으로 배웠다.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23분이신데 19분은 악기를 부시는 분들이고 4명은 판소리를 하시는 분들이셨다. 내 스승님이 한주환 선생이시고 그 위에 박종기 선생이 계셨다. 선생님께서 박종기 선생의 곡을 레코드를 통해 듣고 그것을 토대로 악기 연주를 정립하셨다. 그분에게 직접 배웠다.  

지금도 한 호흡으로 저음과 고음을 표현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뭐든 복식호흡이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것도 있지만  사실 사연이 있다. 선친께서 일본에서 운수사업을 하셨는데 아버님께서 외국 땅에 친구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고싶어하는 마음에 대나무를 친구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후에 부산으로 가서 살게 됐는데 말이 어눌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악기도 반짝반짝한 서양 악기가 아닌 우리나라 악기를 하니까 헐뜯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에서는 잘 했다고 박수 쳐주는 사람들이 뒤로 돌아서면 ‘퉁소 불다 거지된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음악을 안 했을 것이다.

안 맞으려고 운동을 많이 했다. 그 때 유행하던 유도, 검도, 마라톤까지 하고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악기주머니를 들고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했다. 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대금 연주를 하실 때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하는지 궁금하다 

공연을 하는 지역에 따라서, 모임에 따라서, 관객의 숫자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극장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음악으로 한다. 산조도 멜로디가 다 다르다. 

대금을 잡을 때는 항상 긴장이 된다. ‘예술가’ 소리를 들으려면 어떤 곡을 연주해도 청중을 감동시키고 공감을 갖게 해야한다. 이걸 못하면 예술가라 부를 수 없다. 편하게 반주나 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난 안 그런다. 원래 서서 연주하는 게 힘들다. 밑바닥부터 올라와야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전에는 앉아서 했는데 뒤에 계신 관객들이 못보는 경우가 많아서 그분들을 위해서 힘들지만 서서 연주한다.

국악을 해설하면서 연주하는 아이디어를 선생이 내셨다고 들었다 

궁중음악은 왕의 전통이지 대중의 전통이 아니다. 민속음악은 위계질서를 떠나 사람이 많다 . 그동안 궁중음악 위주로 간 것을 민속음악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해설을 하는 음악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민속악과 궁중악이 같이 가야하는데 궁중악이 민속악을 업신여기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국가 지원도 궁중악이 위주인데 민속악도 국가적으로 지원을 해달라고 국립국악원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왕의 가족보다 우리가 더 많지 않나. 그렇지만 국악원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민속음악을 하는 이들을 키우는 양성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솔직히 국악원에 이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부분이 맺혀 있다. 

   
▲ 대금을 연주하는 이생강 연주자

본인이 직접 양성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는지?

친한 기업체 회장이 외국인들도 많이 오는 제주도에 양성소를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나는 공연장을 만들어서 그 수익을 가지고 양성소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민속악이 가면 갈수록 퇴보하고 있기에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제주도에 토지를 사고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 회장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이 어그러졌다. 사회 물정을 너무 몰랐다. 기업에서 지원한 돈은 너무 적었고 결국 땅이 빚에 넘어가면서 파산했다. 

지금도 그래서 어렵다. 그때 파산한 빚을 지금도 갚고 있다. 내가 공연을 많이 다니고 이름이 있으니까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할텐데 그 돈도 다 빚을 갚는데 쓰고 있다. 내가 명예를 찾는 것이 먼저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경조사를 못간다는 것이다. 내가 돈이 많은 줄 알고 많은 돈을 낼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다.

국가에서 지원받는 국립국악원이 있기는 하지만 궁중악에 치중되어 있고 국립극장도 요즘은 창극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 민속음악을 전수할 방법이 없다. 서민의 음악을 살려야하고 그러려면 양성소가 꼭 필요하다. 지금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고 내가 아닌 누군가라도 꼭 해줘야하는 일이 양성소다. 

지금도 한 달에 평균 5~6회 정도 공연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예전엔 하루에 일곱 번 공연한 적도 있다. 비교적 다른 분에 비해 공연은 많다. 단소를 부는 사람들이 사실 많은데 연주자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나를 먼저 찾는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찾아도 나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국립국악원을 먼저 간다. 국악원 사람들이 90%가 넘으니. 국악 연주자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뜻이고 음악성에 대한 가치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일전에 청와대 행사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 식의 ‘굽이굽이’ 리듬이 아닌 서양식 리듬으로 아리랑이 나오는 모습에 마음이 서글펐다. 들어보니 누군가가 음반을 틀었는데 그 곡이 서양식 리듬의 아리랑이었다. 청와대만이라도 원음을 내 주면 정말 좋을텐데. 

조상들의 소리를 끝까지 들어가보면 우리 소리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깊이가 풍부하고 지혜로운지를 알게 된다. 세계를 다니면서 우리 음악을 알리고 국가에서도 알아줘서 훈장을 받고 했지만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궁중음악은 계속 지원도 받고 교육되고 있지만 민속악은 뿌리조차 발견하지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궁중음악은 창덕궁이나 경복궁 같은 곳에서 연주하며 하나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민속악은 다행히 지금은 밥을 먹을 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가르치는 곳이 적고 뿌리도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국악기로 서양 음악, 우리 가요를 연주하시기도 했다. 최근 ‘퓨전 국악’ 등으로 국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서양음악은 직선이고 우리는 둥글다고 표현하잖나. 오음은 둥글다. 그냥 하면 칠음계도 다 나온다. 시대에 맞게 발전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새로운 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길게는 못 간다. 깊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가락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으면 결국 식상해진다. 가볍게만 하면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남산국악당 개관 당시 정자에서 공연했던 것이 기억난다. 저녁 달빛과 연주가 어우러진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노래 하나를 불러도 목이 쉬면 못하잖나. 나의 것을 표현했다는 정도지 잘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자연의 악기를 가지고 자연의 음악을 했다는 느낌이다. 그 순간에 필요했던 것이다.   

   
▲ '이생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대금소리가 저절로 떠오른다.

가장 인상깊은 공연이 있다면

1972년 8월 덴마크 공연. 4~5개월 정도 유럽 순회 공연을 했는데 그 날따라 대금을 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할까? 선생님들이 분장을 좀 해야한다고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칠했는데 시간이 반 정도 지나니 땀이 흐르고 눈물이 나니 참 따가웠다(웃음).

그때 내 연주를 듣고 다른 분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곡이 그렇게 슬픈 음악이 아닌데도 소리 자체에 감정이 실리니 모든 분들이 울었단다. 장단이 외국 사람들 귀에 맞아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외국인들이 우리 소리를 좋게 들었고 그 때 내 감정과 더불어 감동이 됐다. 그렇게 10분짜리 공연이 18분이 됐다. ‘산유’라는 곡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이 선생께 대금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들었다

대통령이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비서실에서 악기를 구할 수 있느냐는 청이 들어왔다.  구해주겠다고 해서 제자들 몇 명과 함께 제작해서 선물을 해주셨다. 그 때는 가르치지 못했고 나중에 ‘누군가가 보잖다’해서 갔는데 그 분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과 독대를 했는데 노 전 대통령께서 ‘내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대금을 배우고 싶다.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해서 ‘하시고 싶으시다면 뭐든지 구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다 내 연주에 다 관심을 보여주셨는데 직접 배우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은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북한에서 최근 악기 개량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악기를 개량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퓨전이나 크로스오버가 주류가 되니까 악기 계량을 제안하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그러면 서양 악기를 하지 왜 우리 악기를 하냐’라고 답했다. 악기가 박수를 받는 것은 이 악기로는 안 될 것 같은 음악이 되니까 박수를 받는 것이다. 굳이 개량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연주 실력을 키우면 된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그리고 아직 국악에 대한 관심이 덜한 분들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후배들에게 ‘80%는 자기가 올바르게 배운 것을 그대로 하고 20%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다’는 말을 해준다. 그 말의 의미는 원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시대에 맞춰야하지않느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그 때 유행하는 음악만 하는 건 생명이 짧고 장기적인 발전도 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산조를 많이 한다고 산조만 했다면 지금처럼 못했을 것이다. 다시 원형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우리 국악을 TV에만 보는 식으로 하지 말고 끝을 한 번 들어보라. 깊은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우리 소리에는 맵시가 있다. 나이가 들면 옛날 것이 좋아지게 되는데 소리의 뿌리만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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