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웃음이 묻어나는 모녀열전 ‘애자’
눈물과 웃음이 묻어나는 모녀열전 ‘애자’
  • 임고운/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09.09.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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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되지 못한 모정과 철부지 딸의 좌충우돌 일상기

영화 ‘애자’는 거칠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로 어느 한 모녀의 일상을 엮어간다.

이 둘은 욕과 잔소리, 두들겨 맞고 때리며 “치아라  내 다시는 안볼기다” 하면서도 끝내는 눈물로 서로 부둥켜 안으며 화해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세상과 딸에게 거칠 것이 없는 최영희 여사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수술도 마다해 버린다. 이런 모습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거나 볼 수 있는 일상의 단편들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작은 전쟁을 치르는 모녀전(母女戰)은 문화선진국으로 불리우는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니가 이 나이에 한게 뭐 있니, 돈을 제대로 벌길해, 시집을 가서 아이를 키워봤니, 집에 데려올 남자친구도 없는 이 멍청아!” 

 이것은 모녀 이야기를 다룬 어느 프랑스 영화의 한 대목이다.

결국 자괴감에 빠진 딸은 매일 바라보던 세느강에 몸을 던진다. 엄마에게 늘 목덜미를 잡히고 욕을 먹어 가면서도 씩씩한 애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부산의 톨스토이인 작가지망생 애자와 수의사로 꼬장꼬장하게 살아온 영희는 만나면 늘 티격태격다다 영희의 예견된 죽음을 앞두고 두 사람은 서서히 대화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고 받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서로 너무나 지겨워 했던 인터넷과 휘파람이다.

본격적인 감동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처음으로 컴퓨터를 쳐 보는 영희의 오타들은 마치 사랑의 주문을 진열해 놓은 듯 화면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다. 이 오타들은 영희가 죽은 후 첫 소설집의 제목으로 세상에 소개되고 애자는 휘파람을 부르며 환하게 미소짓는다. 

 며칠 전 우연히 읽게 된 엄마의 메모. “5남매 키우느라 이 무릎이 다 닳았다. 이제 갈 날만 남았다.”

늘 강한 모습만 보이던 엄마에게 떼만 쓰며 살았던 나. 그날 영희의 메모를 읽고 우는 애자처럼 한없이 울었다. 

 4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과 수백명의  실제 모녀 이야기들을 토대로 만든 것도 감동이지만 김영애와 최강희의 체화된 연기는 마치 이웃집 모녀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렇게 많이 울던 애자가 영희의 죽음 이후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진 것은 엄마의 죽음을 죽음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엄마의 바람을 새로운 작가의 삶으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혹은 대들기도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영희와 우리들의 딸 애자는 가장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을 손쉽게 펼쳐 보이지만, 해답은 우리 스스로 묻게 만든다.

 드라마적인 구성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남지만 한번쯤은 크게 다뤘어야 할 시네마 코드였다. 세심한 시나리오와 연기력이 보장된 배우들, 그리고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 이 세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훌륭한 영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영화를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만족스러운 영화다. 영화 ‘애자’는 이런 좋은 요소들을 잘 갖춘 좋은 영화다. 진정한 슬픔은 희망을 품고 있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애자의 눈물이 처연해 보이지만은 않은 이유이기도하다.

임고운/영화칼럼니스트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