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스트라빈스키’
[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스트라빈스키’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12.1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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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 감독 취임 후 첫 작품으로 ‘3 볼레로’(2107,5)를 기획했던 안성수의 올  후속 작품은 ‘쓰리 스트라빈스키’(Three Stravinsky, 11.30~12.2, 토월극장)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한 곡을 3명의 안무가(김용걸, 김보람, 김설진)가 각각 해석하여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 작년 공연이었다. 

올해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러시아)란 음악가를 먼저 정하고 3명의 안무가가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다양성을 즐기면서 안무가들의 음악적 취향을 비교해볼 수 있는 진일보한 기획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음악을 사용할 때 일체의 편곡이나 악기재편성 등을 금지했다. 자르거나 순서를 바꿀 수도 없다. 안무가들이 공연시간과 정확히 일치하는 음악을 골라야한다는 제한이 주어졌다. 

이렇게 선택된 김재덕의 ‘Agon’(24분), 정영두의 ‘심포니 인 C’(30분), 안성수의 ‘봄의 제전’(36분) 세 작품이 각각 15분의 인터미션을 두고 차례대로 무대에 올랐다. 

‘심포니 인 C’(Symphony in C, 1945)를 정영두는 여정(旅程)으로 해석한다. 여행길에서 느끼는 흥분, 낯섦, 새로 만나는 자연풍경과 사람들, 외지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외로움을 그는 4개 악장으로 나누어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서막은 경쾌하게 시작된다. 녹색바닥은  자연적인 초원을 상징한다. 장난 끼가 느껴지는 소녀들의 표정은 밝고 기대에 찬 눈빛이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표현한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흐르는 연주를 따라 탄력을 받은 여인들의 춤사위가 관객의 마음을 가볍게 이끌어준다.

2막은 라르고음악이 로맨틱하게 흐른다. 코발트색으로 바뀐 바닥 위에서 두 여인이 만난다. 한예종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최다빈과 현대무용의 박상미는 둘 다 장신의 무용수다. 듀엣을 추는 발레리나와 같은 섬세한 춤사위와 소통의 기쁨을 교환하는 듯한 유연한 파트너링이 무대를 빛나게 한다. 

3막에서 음악은 활기차게 변하고 3명, 4명, 6명으로 숫자를 불리는 여인들은 무대를 콩콩 튀면서 자유스러움과 여유로움을 강조한다. 4막의 바닥은 푸른색이다. 8명 모두의 군무로 어울리는 무대는  음악과 춤이 하나로 수렴되는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안성수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1945)은 스트라빈스키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913년 파리에서 처음 공연되면서 현대음악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음악으로 만든 안성수의 첫 작품이 ‘장미’(2009)였다. 당시 5명의 무용수를 이번 작품에선 11명으로 늘렸다. 

이들이 입고 있는 검정색 바지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치마처럼 엉덩이부분이 넓게 퍼진 바지가 춤사위를 넉넉하게 한다. 여성무용수들만으로 구성된 정영두의 춤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낸 작품이었다면 안성수의 춤은 여성(5명)보다 많은 남성무용수(6명)를 포진시키고 두 집단의 춤을 대비시킴으로써 스트라빈스키다운 열정과 격렬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봄의 제전에 바쳐지는 제물도 남성이다. 주술적 분위기가 연출되는 조명, 신에게의 기원을 담아 제단 앞에서 추는 절망적인 군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속도를 더해가면서 혁명 전야 같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근육질의 남성 춤이 선도하는 안성수의 봄의 제전은 정치용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하면서 컨템퍼러리 현대 춤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김재덕의 ‘아곤(Agon)’은 스트라빈스키의 후기(1957) 작품으로 ‘12명 무용수를 위한 발레’란 별명을 가졌다. 30분 공연시간에 맞추기 위해 24분 음악의 앞과 뒷부분을 침묵으로 처리했다.

희랍어로 토론, 갈등 혹은 경쟁이란 뜻을 갖는 제목답게 머리에 쓴 두건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검정색으로 통일한 9명 남성무용수들이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몸짓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악기의 불협화음을 단속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무술의 투로를 연상케 하는 빠르고 직선적인 춤사위가 계속된다. 징소리로 공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발상은 재미있다.        

‘쓰리 스트라빈스키’를 위해 선택된 세 안무가의 공통분모는 세련된 음악성이다. 김재덕이 춤보다 음악을 앞세우고 안성수의 작품에선 음악보다 춤이 돋보인 반면 정영두는 음악과 춤을 일치시켰다.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적 발레곡 중 하나인 페트루슈카(Petrouchka, 1911, 35분)가 포함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음악이 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참신하고 인상 깊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