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삼해소주 불목잔치
[기고]삼해소주 불목잔치
  • 문정/자유기고가
  • 승인 2019.02.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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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삼해소주는 매주 금일(金日) 잔치를 열어 온갖 사람들과 취흥을 누렸다.

공방을 찾는 이는 나이나 성별이나 인종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히 공방에 발을 디뎠다. 오는 이마다 각기 안주거리를 지참하고 공방을 찾았으니, 정작 잔치가 열릴 때는 공방에 펼쳐둔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온갖 산해진미를 두고 마시는 삼해주는 극히 천하절미였고, 흥이 극에 달할 무렵 나오는 삼해소주도 그 맛이 달고 향기로워 삼청동에 제 집을 두지 않은 것을 누구나 통탄했다.

▲삼해소주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김택상 명인이 삼해소주를 직접 빚고 있다.

함께 앉은 이들은 대개 안면이 없어 낯설었으나 술이 있으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저 술이 몇 순배 돌아서 잔을 부딪치면 취흥에 겨워 절로 말을 나누고 있었고, 어쩌다 함께 앉게 된 색목인도 이내 나와 함께 혀가 꼬부라져서 비슷한 발음을 하게 되니 실로 술이란 만국 공용어였다.

본디 삼해주란 조선땅을 취하게 만들어 나라의 근심이었다.
초기 조선의 최고 문장가 서거정은 『태평한화』에서 "삼해주가 없다면 극락이라도 가고 싶지 않다." 고 밝혔으며, 조선땅을 극락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삼해주를 힘껏 마시고 열심히 취했다. 겨울날 일이 없는 토기장이들에게 가마를 빌린 삼해주 업자들은 게서 술을 빚어 팔았고, 그 중 아무개는 한 개인으로서 수천 독의 삼해주를 빚어 팔아 조선땅에 극락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집집마다 술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의 조선에서, 이토록 상업용 양조가 성행한 것은 실로 드문 일이라 하겠다.

▲김택상씨가 직접 빚은 삼해소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실정이 이러하니 정조대에 이르러 신하들이 금주령을 청원했다. 술로 곡식을 허비하는 해악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에 정조의 답이 다음과 같다.

"삼해주(三亥洒)가 이미 다 익었으니 이제 와서 이미 다 빚어놓은 술을 공연히 버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조대왕이 괜히 대왕이 아니며, 성군의 자질은 남과 다름을 알 수 있으니 대왕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이 삼청동의 잔치를 찾아 삼해주가 나오는 족족 마심으로써 남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뜻을 같이하려 삼청동으로 향하는 동지(同志)들은 실로 기쁘게 술을 마셨고, 술을 마셔서 기뻐 흥겨웠다. 매 금요일 삼청동을 찾은 그들의 몸엔 삼해주의 은혜가 가득하여 낯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며 흥이 올라 날아갈 듯했다,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이 다음과 같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80p)'

▲삼해주 공방에서 불목잔치가 진행 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술을 마시며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며, 직장에서 노동하며 술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한 주의 노동을 마치고 이 삼청동에 모인 이들은 삼해주를 몸속으로 들이며 다시는 술에서 깨어나 지상의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채, 밝아오는 해와 함께 각자 집으로 흩어지곤 했다.

그러나 저마다 리터 단위로 술을 마셔대는 전국의 꾼들이 둘러앉아 내일 없이 술을 마셔대니 어찌 삼해주 공방이 먹고 살 길이 열리겠는가. 그렇다고 먼 걸음 한 이들에게 술값을 받을 수 없던 명인 김택상과 대표 김현종은 여러 날을 궁리하다,  그들이 스스로 내일을 자각할 수 있게끔 잔칫날을 하루 당겨 목요일로 정하고 금요일을 술 만드는 날로 했다.

그러나 장 담그는 이가 어찌 구더기를 두려워하며, 바다가 어찌 강물을 거부하랴.
쇠귀 신영복이 뜻을 남겨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바다' 라고 했으니, 우리는 해방의 바다를 향해 역발산기개세로 삼해주의 빈 병을 늘려가야 할 것이다.

▲어느 잔칫날은 삼해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위한 셰프의 쿠킹 클래스가 진행되기도 한다.

취흥은 젊음과 같아서, 날과 함께 저물어 다음 날 뜨는 해와 함께 일터로 흘러야만 하더라도 어차피 다음 날 하루만 잘 수습하면 다시 주말이니 이곳 삼청동 공방에서는 청담(淸談)만을 논하며 구더기 같은 출근은 생각지도 말아라. 다만 이곳의 삼해주와 삼해소주는 그 향미가 깊고 진진하여 다른 곳에서 들더라도 언제나 그 취흥을 약속하니, 잔치에 앉았다 돌아서는 길에 두어 병 술과 함께 나가 다른 곳에서 마시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필자는 논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니 그것은 필경 삼해주일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삼해주로 극락을 짚었다가, 다시금 떨어져 이 지상에서 어렵게 밥 벌어먹고 사니 말이다. 필자 역시 불목잔치에서 과음하고 다음 날 출근하여 실로 고생하였다. 그렇다고 다른 날 이 잔치를 찾아 술잔을 앞에 둔 채 출근생각에 절주한다면 그 어찌 호걸이라 하겠는가.

▲삼해소주

금돼지의 해가 열려 우리는 앞으로 숱한 목요일을 두었다. 이 날들 중 어느 목요일, 삼청동을 찾아 세 돼지날에 빚은 술과 함께 새날을 맞이할 만하다. 필자 역시 어느 목요일에 이 곳에서 시나브로 취하고 있을 것이니, 이 글을 읽는 그대와 삼청동에서 술잔을 부딪치길 기대한다.

정조대왕의 뜻을 위하여 한 병에서 나온 술을 같이 마시니, 우리가 어찌 동지가 아니며, 동무가 아니랴. 이름 모를 그대와 동지가 될, 오지 않은 날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