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을 모두 선택한 명성황후, ‘불꽃처럼 나비처럼’
사랑과 죽음을 모두 선택한 명성황후, ‘불꽃처럼 나비처럼’
  • 임고운 열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09.10.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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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감독, 명성황후 아닌 비운의 여인 자영과 호위무사 무명의 사랑 그려내

김용균 감독은 영화 ‘분홍신’, ‘와니와 준하’에 이어 멜로사극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와니와 준하’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디테일하면서도 진지하게 다룬 감독의 로맨티시즘적 상상력은 명성황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다른 제작사와 감독의 손을 거쳐 오랜 시간 준비해 왔던 프로젝트였지만 김용균 감독의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으로 비로소 탄생된 것이다. 수많은 뮤지컬로 소개되어 이제는 별 새로울 것도 없는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감독으로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서 한나라의 황후가 그것도 궁궐 안에서 이웃 나라의 적군들에게 살해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극적인 역사라는 관점에서 명성황후는 장르에 관계없이 사극의 소재로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김용균 감독은 이 무겁고도 슬픈 주제를 미학적 영상과 황후와 호위무사가 아닌 자영과 무명의 인간적 사랑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한층 무게감을 덜어내고 있으며 3D디지털 캐릭터로 완성된 액션장면은 강물 위로 튀어오르는 잉어나 혹은 달빛, 바람소리와 구름과 함께 만화적 장치를 해 놓음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부각시키고 있다. 지루해질 수 있는 분위기에 새로운 재미를 더해주고자 하는 감독의 센스가 엿보인다.

영화의 장면을 매순간 화려하게 수놓는 명성황후의 의상이나 소품, 무대장치들은 퓨전사극이라고 하기에는 전문가들의 손길을 신중하게 거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김용균 감독은 이 작품에서 명성황후인 자영뿐만 아니라 고종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부여함으로써 고종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제까지 다루어왔던 명성황후 살해를 통한 일본세력 강화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살며시 벗어나 명성황후가 아닌 화려하지만 슬픈 비운의 여인 자영을 다룸으로써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여인상을 구현해 냈고, 영화배우 수애는 그 여인을 너무나 기품 있게 잘 소화해 냈다.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는 호위무사인 무명의 순수함을 그대로 재현해 낸 조승우 역시 큰 배우로서의 역량이 십분 발휘됐다.

감독의 미학적 로맨티스트의 관점으로 다루어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역사물이 아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이전에 보아왔던 명성황후의 절제되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여성성을 스크린 안에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코르셋의 지퍼를 올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초콜릿을 베어 무는 명성황후… 황후를 제거하고자 달려오는 일본군들을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맞이(?)하는 자영과 그녀를 지키고 서 있는 무명.

엷은 가리막을 사이에 두고 고조되는 사랑과 죽음의 절박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에 하염없이 눈물을 짓게 만든다. 백여 년 전에 명성황후가 죽음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를 사랑하는 무사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엔딩 장면이 오래도록 남는 이유는 그들이 죽음 앞에서도 같이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죽음으로써만 가능한 황후의 사랑을 “지금 두렵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일축한 감독의 절제력은 로맨티스트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그런 미학적 사랑 앞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요즘은 이런 사랑 이야기가 더욱 그립다.

김용균 감독도 시대를 달리해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황후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고 그러한 시도는 참신했다. 실존 인물의 허구적 사랑 이야기는 관객에게 오랫동안 질리지 않는 소재다.

역사가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해도… 결국은 다시 사랑이다.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