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유물 2점 국내 환수
조선시대 왕실유물 2점 국내 환수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6.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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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경매에서 '백자이동궁명사각호’‧‘중화궁인’매입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 정조의 서차녀, 수빈 박씨 소생)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인장 ‘중화궁인(重華宮印)’을 지난 3월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두 문화재는 문화재청 산하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외 경매현황을 점검하다 발견해, 전문가들의 가치평가와 문화재청과의 구매 타당성 등을 거쳐 경매로 구매했다.

▲중화궁인(重華宮印)(왼쪽)과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오른쪽)(사진=문화재청)

‘백자이동궁명사각호’는 조선 19세기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사각호로, 바닥면에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라는 명문이 있다. 궁(宮)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백자호에 쓰여 있는 ‘이동궁’의 이동(履洞)은 서울의 한 지명(현재 서울시 중구 초동 일대)이다. 백자호는 혼인 후 이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숙선옹주(淑善翁主)의 궁가에서 사용한 기물로 추정한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바닥면에 '이동궁' 명문이 써있다

‘중화궁인’의 도장 손잡이는 상서로운 짐승 모양이고, 인면(印面,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독특한 서체로 조각했다.

‘중화궁’은 『승정원일기』와 『일성록』,『비변사등록』 등에 언급돼 있어, 앞으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중화궁인' 인면(사진=문화재청)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은 앞으로 조선왕실유물 전문기관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며, 유물에 대한 보존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국민들에게도 공개 전시 등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이번 환수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협약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 한국대표 박준규)의 기부금으로 이루어졌다. 2012년부터 문화재 환수·활용을 위한 지원을 했다. 조선시대 불화 ‘석가삼존도’와 ‘효명세자빈 죽책’, 항일의병장 척암 김도화의 ‘척암선생문집책판’ 환수에 도움을 줬으며, 이번 2점의 문화재 환수로  의미 있는 환수 사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