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잇기] 가리봉의 목소리 … 진정성 있는 주민주도, 도시재생
[박희진의 문화 잇기] 가리봉의 목소리 … 진정성 있는 주민주도, 도시재생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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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요즘 도시재생과 관련한 일로 지역의 문화예술 공동체를 재생하기 위한 예술체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공동체예술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변의 오래된 시설을 주민들이 다 같이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공간을 조성 한 후 주민들의 수요를 반영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수 있다. 주민의 수요라 함은 몇몇의 관심 있는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구성하는 주민들의 다양한 연령층과 대상을 반영해 지역의 가치를 주민과 함께 끌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가로봉동 일원이 2015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렇게 가리봉에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된 지 4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가리봉의 지역 가치를 다시 찾고 싶었던 주민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에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가리봉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7월부터 ‘가리봉아트수다방’이 열리고 있다. ‘가리봉아트수다방’은 예술치유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예술체험 프로그램으로 낯선 예술체험을 동네주민과 함께 즐기면서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주민들이 문턱을 낮춘 도시재생 앵커시설 내에서 편안하게 수다를 떨 수 있도록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가리봉아트수다방’이 처음 문을 연 날, 여든이 넘은 연세가 무색 할 만큼 건강하신 모습의 어르신이 한 분이 마흔이 넘은 따님의 손을 잡고 가리봉도시재생지원센터 행복마루를 찾으셨다. 농지였던 구로에 공단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주거지역과 산업공단이 유일하게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공존했던 구로공단이 가리봉의 역사라고 했다.

허허벌판의 농지였던 동네에 공장들이 지어지더니 아파트가 올라섰다고 했다. 그렇게 하늘 높이 지어지던 아파트 가운데 한 채가 어르신이 지금까지 살고 계신 삶의 터전이라고 하셨다. 그 터전에서 자식을 낳고 공부시켜서 그 자식도 여기 구로에 살고 있다고 하시며 옆에 앉은 딸의 손을 꼭 잡으시곤 이제야 딸이랑 같이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신다.

▲가리봉아트수다방 진행사진2(사진=움직이는예술학교 제공)

‘가리봉아트수다방’은 앵커시설의 문턱을 낮춰 수다공간으로 활용하는 데에 프로그램의 취지를 두고 있다. 그들의 수다에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중심이었던 가리봉의 과거인 공단 근무자들의 쪽방 촌 이야기부터 생애 첫 내 집 마련의 추억,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집와서 구로가 제2의 친정이 되었다며 비비고 산 세월의 이야기들까지- 이들은 단순히 천 쪼가리에 색깔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난 사람들만은 아니다.

‘가리봉아트수다방’에 참여하고 계신 주민들은 50% 이상이 가리봉에 10년을 넘게 거주하신 분들이다. 수다방은 비록 한 달 간 파일럿으로 진행되지만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일주일 내내 기다린다고 했다. 처음 본 동네사람이지만 함께 수다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가리봉에 웃음꽃이 가득한 것만은 아니다. 여느 도시재생사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수다방처럼 행복한 추억만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둡고 낡은 가리봉의 이미지 변화를 기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또한 크게 울리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늦다.

도시재생을 위한 앵커시설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수요에 걸 맞는 주민들의 공간으로 구성하기도 하고, 행사나 이벤트로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 삶을 담아 둘 수 있는 쪽방 빌라를 개조해 만든 가리봉도시재생지원센터처럼 지역성을 보존하기 위한 준비된 공간으로서 가치도 크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주민이 만들어가는 앵커로서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에 기반하고 보존에 염두에 둔 도시재생은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을 중심으로, 변화하게 될 주민의 삶까지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하며, 도시재생 앵커시설에서 들려오는 소소한 주민의 행복한 웃음소리부터 격양된 주민들 외침의 목소리까지 귀 기울여 주민이 주도하는 진정성 있는 도시재생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