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삶 담은 판소리 ‘열사가’ 발견
안중근 삶 담은 판소리 ‘열사가’ 발견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11.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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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노동은 교수, 고 박동실 명창의 창작 판소리 필사본 공개


월북한 판소리 명창 고(故) 박동실(1897~1968) 선생이 일제 강점기 안중근,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창작 판소리 ‘열사가(烈士歌)’의 필사본이 공개됐다.

▲ 고 박동실 명창의 창작 판소리 '열사가' 필사본에는 가사를 고쳐쓴 흔적도 남아 있다.

중앙대 창작음악학과 노동은 교수가 공개한 박동실 선생의 안중근ㆍ유관순ㆍ윤봉길ㆍ이준 등 4명의 ‘열사가’ 판소리 필사본은 A4용지 절반 크기의 노트에 잉크로 적은 40쪽 분량이다.

‘박동실 작곡, 서동순 씀’이라고 적혀 있는 필사본은 소리꾼인 고(故) 서동순(1910-1982)이 광복 무렵에 박동실로부터 열사가를 배우면서 노트에 직접 가사를 적은 것으로, 군데군데 가사를 고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안중근 열사가’는 의거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안 의사가 순국하기 전 감옥에서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을 비통하게 그리고 있다.

“뜻밖에 어떤 사람이 권총을 손에 들고 번개같이 달려들어, 기세는 추상같고 심산맹호 성낸 듯 이등 앞으로 우루루루. 이등을 겨눠 쾅, 쾅, 또다시 쾅, 쾅. (중략) 감추었던 태극기를 번듯 내여 휘두르며 ‘나는 원수를 갚었다. 이천만 동포들 쇠사슬에 얼궈놓은 우리 원수 이등박문, 내 손으로 죽였오. 대한독립 만세’ 우렁찬 소리로 외치니 할빈역이 진동”

필사본을 공개한 노동은 교수는 “민족주의자였던 박동실은 1930년대말 고향인 전남 담양에 초당을 짓고 박석기라는 거문고 명인과 함께 김소희, 박규희, 한승호 등 제자들을 가르쳤다”면서 “이때 판소리 다섯 마당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민족영웅을 소재로 한 판소리를 만들어 비밀리에 전수했다”고 설명했다.

▲ 고 박동실 명창

또한 “당시 판소리 공연도 일본어로 해야 했던 상황이라 ‘안중근 열사가’ 등은 실제로 공연되지는 않고 전승만 됐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박동실 선생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기 때문에 ‘열사가’는 널리 퍼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이후 월북 예술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자 1990년대에 음반이 녹음되기도 했지만,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노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음악인들이 애국지사들을 그려 민족정기를 확립하려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하지만 ‘열사가’가 묻혀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이 조명받지 못한 것이 많은데 이런 노래가 많이 알려져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