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사람이 그리워서 호박 한 덩이 갖고나와
온종일 바람과 햇빛과 놀아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 곳이 장터다.
우리선조들의 정신이 숨어있는 장터에는 우리의 원형인 정체성이 살아있다.
장터 골목 귀퉁이에서 홍시 감 몇 개 소쿠리에 담아,
고루내리는 햇빛을 등에 이고 앉아있는 할머니얼굴에는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장에 나온 사람들 얼굴을 들여다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다.
한 할머니 얼굴에서 아쟁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얼굴에서 삶을 관통하는 그네들이 살아낸
모진 세월이 빚은 남도육자배기가 흘러넘친다.
그런데 장터에도 그 지역만의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얼굴은 서구인을 닮아가고,
물건과 패션도 우리 것이 아닌 퓨전으로 변해,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삶의 원형과 정체성을 하나둘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 없는 사회학이 사진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얼굴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사진을 통해 배운다.
저작권자 © 서울문화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