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예술과 놀이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예술과 놀이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10.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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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나는 1977년 서울화랑에서 연 이건용과의 2인 이벤트 발표회 <조용한 미소>를 통해 퍼포먼스에 입문하였다. 이 때 <반죽과 돌>, <종이와 물>, <노랑구두> 등 3개의 이벤트를 발표하였는데 주로 사물과 언어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같은 해 제6회 [S.T]그룹전 오프닝에서 행한 퍼포먼스 <서로가 사랑하는 우리들>은 유목적인 성격의 작품으로 관객참여를 시도하였다. 80년대에는 1986년 서울 남영동 소재 아르꼬스모미술관에서 열린 [’86행위설치미술제]에 참가, <숨쉬는 조각>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팬티 차림의 13명 행위자의 전신에 청색 물감을 칠한 후 먹과 모필을 사용하여 드로잉을 한 후 실내에 장미셀 자르의 신시사이저 전자음악 <주룩>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정해진 위치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인체가 조각으로 변하는 퍼포먼스였다. 같은 해, [’86 여기는 한국]전에서 10mx10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 천에 싸리비, 대걸레 등으로 드로잉을 한 <태ㆍ동>을 발표하였다. 1989년 ['89 청년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홀 유리창에 계란 180개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994년 터갤러리에서 열린 퍼포먼스 행사에서 <유선전화-이건용과의 대화 : 전화하시겠어요?>를 발표했는데, 이 행위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전화로 통화하는 대리 퍼포먼스였다. 이와 유사한 행위가 2007년에 [한국 퍼포먼스아트 40년 40인]전에서 벌어졌는데, 제목은 <무선전화-김백기와의 대화-전화하시겠어요?> 였다. 이 작품은 휴대폰으로 이루어졌는데 내가 인사동에서 공연장인 홍대 앞의 클럽씨어터 벨벳바나나에 있는 김백기 감독에게 준비된 내용을 불러주면 김감독이 그대로 전달, 이를 들은 관객들이 흥겹게 복창하는 퍼포먼스였다.  

2009년에 열린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의 특별전인 [국제도자퍼포먼스 Ceramic Passion]에서 <우주의 소리Ⅳ>, <예술과 정치Ⅰ> 등 2개의 퍼포먼스를 발표할 때 방독면을 쓴 이후, 다양한 형태의 가면을 사용하거나 여성으로 분장하거나 왕치(Wangzie), HanQ 등 다양한 예명을 써 신분을 숨기는 등 약 40여 회에 걸쳐 정체성을 묻는 퍼포먼스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비평가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작가로서의 또 다른 분신들이 스며든 것이다. 워낙 작가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비평 혹은 전시 큐레이팅에도 창의적 발상이 개입하게 된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공모에 응모한 글의 제목도 ‘로즈 셀라비여, 왜 재채기를 하는가?“였다. 이 제목은 새장에 각설탕 모양의 대리석 조각들을 넣고 온도계를 꽂은 마르셀 뒤샹의 저 유명한 오브제 작품 <로즈 셀라비, 왜 재채기를 하는가?>의 제목을 살짝 비틀어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쟁점들을 상징한 것이었다. 이 이상한 제목은 상패에도 그대로 적혀 있어서 당시 시상식장에서 사회자가 비평문의 제목으로는 엉뚱한 이 제목을 낭독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나는 형식적이며 딱딱한 것을 싫어해 본격적으로 비평을 시작한 이후에도 가령 <달마가 모나리자의 속옷을 훔친 까닭은?>과 같은 암시적인 제목을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나의 행위에는 못 말리는 전복적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다. 기성의 틀에 박힌 제도나 관습에 대한 도전과 저항은 평상시 나의 사유를 점유하고 있으며, 어떤 사안을 만날 때 이는 곧 바로 행동으로 옮겨진다. 삶의 총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일련의 행동강령과 연결돼 즉각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014년 2월,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을 위한 발표의 장인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가진 나의 개인전 [사물은 초즈의 치즈를 골랐다(La chose chose Chose's cheese)]는 70년대 이후 나의 예술 행위를 둘러싼 쟁점들이 노출된 발표의 장이었다. 이때 나는 나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다음과 같은 글로 대변했다.  

▲왕치(윤진섭),의적 일지매, 홍대앞 피카소거리, 2009

“educricurartist(에듀크리큐라티스트)는 educator(교육자), critic(비평가), curator(전시기획자), artist(작가)의 합성어이다. 최근에 나의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키워드로 설정한 용어이다. 나는 이 네 가지의 삶을 살아왔다. 7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는 작가로서, 80년대 초반부터는 교육자로서, 80년대 후반부터는 전시기획자로서, 90년대 이후에는 비평가와 전시기획자, 교육자, 작가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예술적 삶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일상적 삶 또한 내 삶을 구성한다. 밥을 먹거나 술 마시는 것 또한 내 삶의 일부다. 예술적 삶과 일상적 삶은 생활 속에서 믹싱이 돼 춤을 추는 가운데 발효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은 경전이 아니며 그냥 심심한 물과도 같다. 그렇다. 예술은 발효이거나 물이다. 썩지 않는 물이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불이 필요하나 발효된 물은 불이 필요하지 않다 예술은 춤춘다. 우리의 머리 위에서, 가슴팍 안에서, 그 안에 오직 삶만이 존재한다, 단지 살아갈 뿐이다." 한큐(韓Q)/왕치(王治,Wangzie)/윤진섭

오직 하나의 전문성과 직업, 하나의 정체성을 요구받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나의 철없는 행위는 분명히 낯선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짐짓 딴청을 피거나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엄숙한 사회에서는 철없는 애처럼 놀거나, 끊임없이 옹알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궤도이탈이며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 필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연이 훨씬 더 많다. 일상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변수에 의해 끊임없이 변경되는 인생의 행로는 그렇기 때문에 수백 수천 개의 선로가 엇갈리는 거대한 기차역처럼 늘 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일상을 가볍게 여기겠는가? 예술과 일상이야말로 평생의 화두로 안고 가도 해결이 안 될 주제인 것이다.

“일상과 예술의 일치는 지난 몇 년간 나의 삶을 잘 대변해 주는 키워드이다. 예술은 ‘따로 국밥’이 아니라 ‘잡탕’이자 ‘짬뽕’이며, ‘비빔밥’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2011년 부천 전철역 광장에서 발표한 <청소> 퍼포먼스처럼 예술은 청소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실제 환경미화원을 고용해 퍼포먼스를 시키는(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퍼포먼스를 하는지조차 모르는) 대리 행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예술인가? 나의 궁극적 지향점은 예술이 아니길 바라는 지점에 두어지지만, 예술계에 보고가 돼 번번이 실패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딜레마가 나의 숙제인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도 인생처럼 빗나가야 한다.”

그렇다. 예술은 빗나가야 제 맛이다. 사회가 깔아놓은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삶의 유일한 도피처인 예술이 정도를 가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삐딱선을 타는 가운데 특유의 톡 쏘는 풍자를 통해 멍청한 사회의 따귀를 때리거나 인공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관점은 이처럼 기존의 전시 문법의 ‘관례(convention)’와 ‘틀(frame)’을 바꿔보자는 데 있다. 나는 한번 설치되면 작품이 철수될 때까지 고착돼 있는 전시를 ‘죽은 전시’로 규정한다. 그것은 시체처럼 비활성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은 전시장에 설치되는 순간 죽는다. 전시장은 장례식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시가 장례식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인공호흡을 하거나 정신을 차리게 따귀를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무당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작품을 살리기 위해서는 늘 ‘푸닥거리(굿)’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굿(Gut, shamanism)은 노는 것이다. 그래서 ‘Good'하다. 신명나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가운데 죽은 영혼을 불러내(초혼(招魂)) 위무함으로써 해원하는 것이 ’굿‘이다. 해원해서 다 함께 정겹게 사는 대동(大同)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놀이 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 좌우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 사회의 오늘은 놀이가 핵심인 예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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