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술현장, 지금] 베니스 비엔날레2019② ‘응시 당하는 자’가 ‘응시 하는 자’로 시선이 승격되는 순간, 퍼포머와 관객은 소통한다
[세계미술현장, 지금] 베니스 비엔날레2019② ‘응시 당하는 자’가 ‘응시 하는 자’로 시선이 승격되는 순간, 퍼포머와 관객은 소통한다
  • 이은주 아트스페이스 와트 대표
  • 승인 2019.10.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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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 - 리투아니아 파빌리온
▲이은주 아트스페이스 와트 대표

필자는 실상 베니스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은 리투아니아 파빌리온 이었다.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유도 작동했겠지만 무엇보다 전시장 안에서 하루 종일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를 대리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따라 작품 자체가 예술가의 능력을 더 뛰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 세계적인 미술 전시장에서 하루 종일 퍼포먼스 형식으로 공연이 된다는 일은 미술계와 공연계를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을 선사한다. 통상적으로 공연은 정해진 러닝타임이 있으며, 실제 배우, 성악가가 등장하기 때문에 전시장에 예술작품이 놓여지는 것과는 상반된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전시장 오픈과 동시에 마감까지를 포함하여 7-8시간의 공연이라니, 도저히 가보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 계속 출몰했다. 배우는 시간대별로 바뀌는지, 조명은 열을 많이 받으면 어떻게 대치시키는지, 7-8시간을 공연하는 내내 배우들의 체력은 어떨 것인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양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국가 전시 하나를 위해서 비엔날레의 주제전시 공간 섹션을 다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여서 전시를 보기 시작한 첫날은 지아르디니와 아스날레를 먼저 관람했다. 이 두 장소의 전시를 훑어 보고 나니 오후 5시가 좀 안되었다. 

1. Sun & See(Marina), 리투아니아 파빌리온 가는길의 홍보 배너ⓒEunjoo Lee
▲ Sun & See(Marina), 리투아니아 파빌리온 가는길의 홍보 배너ⓒEunjoo Lee

리투아니아 국가관(아직도 누군가가 이 전시를 관람하기 원한다면, 공연은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까지 관람할 수 있다. 오전 10시에 오픈을 하지만 필자는 이 공연 무대까지 가는데 족히 1시간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그만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인기가 많은 공간으로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전시 기간은 5월 11일부터 11월 24일 까지지만, 이 공간은 10월 15일에서 18일 사이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공연이 없는 화요일에는 무대세트장만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6시까지 위치는 Magazzino n. 42로 지도상으로는 아스날레와 지척 같았지만, 실제로 골목골목 걸어서 찾아가니 족히 30분 이상은 걸렸던 것 같다. 전시장 도착은 5시 40분, 하지만 무대는 조용했다.

▲ Sun & See(Marina) 전시장면ⓒEunjoo Lee

화요일이라 공연은 없고 세트장만 관람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공간을 전시형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공연이 실현되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샌드 비치에 여기저기 깔려있는 돗자리, 널려있는 신발, 가방, 썬배드, 의자, 모래놀이 도구, 쓰레기 통 등 여느 바닷가 비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하지만 이 공간은 그야말로 공연을 위한, 무대 세트장 일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필자는 《제안 A》와 《제안 B》를 통해 해체된 내 이성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서는 “내게 꼭 감각과 감동이 있어야만 해”라고 아주 절실하게 외쳐댔다. 실제로 그랬다. 영국 국립미술관에 수 없이 소장되어 있는 베니스 풍경화들과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그려진 베니스, 유럽의 왕족들이 ‘그랜드 투어’를 떠났던 도시, 베니스는 그 풍광 자체로도 오랜 세월부터 오늘까지 황홀함을 안겨준다. 

▲ Sun & See(Marina) 를 보기위해 줄을 선 관람객들ⓒEunjoo Lee

필자는 이 풍광의 감동이외 많은 이들이 난해하다고 믿고 있는 현대미술이 주는 감격적 울림을 꼭 느껴야 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가(代價)도 치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결국 베니스를 떠나기 전 하루의 반나절을 리투아니아 파빌리온 전시를 보는데 투자했다. 퍼포먼스는 바로 그 현장에서 발현되는 감각체를 수집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전시와 공연형식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는 작업에 대해 긴밀하게 연구해 보고 싶었다. 올 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국가관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파빌리온은 무엇보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매체와 퍼포먼스, 전시와 공연이라는 복합미디어 형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예측 불가적인 연출 상황이 발생하면서 또는 기존에 시도 않았던 것들이 임의성을 띠는 일시적 퍼포먼스가 된다는 것은 관객에게 굉장한 지적 호기심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채비를 마치고 리투아니아 파빌리온으로 다시 향했다. 필자가 머물렀던 산 마르코광장 근처에서 걸어가니 대략 40분 이상이 걸렸다. 리투아니아 국가관은 지아르디니 공원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해 마다 전시 공간이 바뀐다고 한다. 전시공간이 매해 바뀌기 때문에 더욱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픈시간에 딱 맞춰오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가능 할 줄 알았던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젊은이들, 필자와 동일하게 가족단위의 여행객들, 예술계 종사자들 등 다양한 관객층이 즐비하게 전시장 입구를 메우고 있었다. 오전 10시 오픈시간 이전에 도착했었도, 이 파빌리온에 들어가기 위해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다. 이미 공연을 보고 나온 중년의 남성은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엄지손을 세워 들기도 했다. 그만큼 베니스의 수많은 전시 공간 중에서도 리투아니아 관은 관객에게 굉장히 매혹적인 공간이었다. 필자의 순서가 다가왔고, 공연 무대 세트장을 관람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실제 무대는 1층에 설치되었고, 25명 이상의 퍼포머들은 바닷가 샌드 비치에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관객은 모두 위(2층 객석)에서 아래(1층 무대)를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그러한 무대 구조 때문에 객석에서 무대로의 시선이동이 마치  권력구조처럼 느껴졌다.

▲ Sun & See(Marina) 관람하는 관객ⓒEunjoo Lee

통상적으로 우리가 바닷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옆에 있는 사람들과 수평적 시선이 교차된다. 하지만 이 공연을 위한 무대는 1층이었고, 관객은 2층에서 수영복 입은 성악가, 퍼포머를 응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마치 나보다 옷을 덜 입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듯한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는 나의 시선을 다시 거두어 들였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성악가들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한 군데서 공연이 시작되었고 다양한 방면에서 코러스가 울려퍼지면서, 어느 순간 오페라 공연이 완성되었다. 다방면에서 순차적으로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 필자의 시선은 여기저기 노래하는 성악가들을 찾아다니기 바빴고, 어느 순간 성악가의 시선과 필자의 시선이 맞교환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결국 필자의 시선이 그들에게 관음증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배우의 시선이 위로 승격되는 순간, 마치 필자는 무대 위의 배우와 시선이 교차하는 평행 구조적 상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위아래가 상정된 수직이 아닌 수평적 시선들이 서로 교차된다. 필자의 시선이 응시하고, 필자 또한 응시당하는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퍼포머들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는 우렁차고 황홀했다. 

▲ Sun & See(Marina) 공연장면ⓒEunjoo Lee

샌드 비치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공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선탠을 즐기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그들은 여념 없이 노래했다. 연기를 보는 것인지, 성악가의 무대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인지...이 모두가 하나로 통합되어 눈, 소리, 몸의 경험으로 저장되고 있었다. 그 순간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장르간의 통합이 자연스럽게 실현되었으며, 관객은 전시와 공연을 동시에 감각하는 순간을 체험하고 있었다. 공연은 영화관에서처럼 특정 시간 속에 관객을 가둔다. 하지만 전시는 전혀 다르다. 관객은 주체적으로 자신이 할애하고 싶은 만큼의 시간을 작품 앞에서 결정할 수 있다. 공연 중에 관객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해서 공연의 객석은 계속 듬성듬성 거리다 채워지곤 했다.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마치 바닷가에서 휴식을 즐기듯 그 무대(샌드 비치)안에서 주변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했다. 그 순간 이 곳은 전시도 공연장도 아닌 것 같은, 그저 그들이 사는 일상 공간과도 같았다. 예술과 일상, 실재와 가상, 이상기후 속에서도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가짜 샌드 비치이지만 진짜처럼 즐기는 배우들, 성악가과 관객의 시선을 분리하거나 교차시켰던 2층 구조의 무대 세트장 등 이 퍼포먼스는 단일한 관점과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레이어가 구축되어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 Sun & See(Marina) 2층 객석에서 1층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Eunjoo Lee

필자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2019(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과 리투라이나 파빌리온 전시를 교차시키면서 통합적, 개별 국가관의 주제들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인터넷으로 인한 시공간의 혼합성, 실제사건과는 다르게 가공된 보도 이미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짜여 진 가짜뉴스,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뛰어 넘는 다중적 혼재 등 우리의 일상은 냉철한 정신이 수반되지 않은 이상 그야말로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단 번에 파악할 수 없는 회오리 콘텐츠 속에 갇혀 있다. 각 주체가 특별히 하나의 사건을 두고 진실로 다다르기 위해서는 여러 층의 정보를 거쳐야 한다. 수많은 생산자들이 끊임없이 쏟아 내는 인터넷 정보는 진실, 진실을 숨기기 위한 거짓을 비롯하여 거짓이 진실처럼 보여야 하는 여러 편집장치들이 가공되어 실시간 부유한다. 따라서 한 사람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복수적 정보를 접하고 판단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가짜뉴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거대한 미디어 가상 시대를 담보했던 20세기 후반, 그리고 다가올 21세기의 전자시대의 삶은 회색지대이다. 

7. Sun & See(Marina) 전시와 공연 리플릿과 오페라 LP판ⓒEunjoo Lee
▲ Sun & See(Marina) 전시와 공연 리플릿과 오페라 LP판ⓒEunjoo Lee

끊임없이 발전되는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유패턴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지만 이것이 결국 유토피아 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 인가? 따라서 이 전시는 수많은 SF영화에서 관객에게 질문해 왔던 세계에 대한 반문이었다. 당신은 새롭게 발달된 이 기술과 이 순간을 즐기고 있지만, 과연 이 순간이 즐거운 순간일까?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쾌락과 환멸감 사이의 감정이다. 핑크 빛 연애를 하기 위해 온 감정을 몰입하여 채팅 사냥에 나서지만 온라인 속 만남이후의 허무함, 게임을 하면서 환타지가 절정에 올랐을 때 다시 현실로 발 딛기 싫어하는 허망함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 이란 이 전시 제목은 무엇보다 현대인의 빠른 속도의 삶 속에서 각자가 가지는 여유로운 사색의 길 같다. 하지만 실제로 전시관람 이후, 이 전시 주제가 주는 속뜻을 알고 나면 의미심장한 슬로건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