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만주군 지원 ‘혈서’
박정희, 만주군 지원 ‘혈서’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11.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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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논란 막고자 ‘친일의혹’ 관련 증거 공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설을 입증하는 신문 기사가 공개됐다.

▲ 1939년 만주신문 기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는 편지에 혈서를 동봉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신문 ‘만주신문’의 1939년 3월 31일자 사본을 5일 공개한 것이다.
연구소는 “아들 박지만 씨가 지난 10월 28일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후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본지가 흐려지고 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언행이 담긴 객관적인 원사료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 확대를 막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공개 취지를 밝혔다.

‘혈서 군관 지원, 만주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23세의 나이에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지만 연령 초과로 탈락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해 1939년 다시 한 번 지원한 것으로 쓰여있다.

특히 기사에서 공개된 편지에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일컬음)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등 내용이 담겨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 차례의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고 우등생으로 졸업하면서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恩賜賞)으로 받았다.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했고 1944년 4월 일본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했다.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 예비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국군 보병소위로 임관했으며, 보병 8단 단장의 부관실에 부임해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을종(乙種) 부관 겸 부대의 단기(團旗)를 책임지는 기수로 근무, 1945년 7월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