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숙 칼럼]불 같이 끓어오르는 격정 밑에 숨어 있는 냉철한 균형과 조화
[남정숙 칼럼]불 같이 끓어오르는 격정 밑에 숨어 있는 냉철한 균형과 조화
  • 남정숙 문화평론가/본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9.11.0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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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 일 트로바토레'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민간오페라단을 보며 지속적인 일자리 보장 절실함 더 느껴
"예술인들을 제대로 고용하고, 삶의 터전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기회와 비용을 제공해야"

베르디의 3대 오페라 중에 하나인 ‘일 트로바토레’에 대한 평론을 부탁받았다. 

직업 상 자천⦁타천으로 많은 예술작품을 보게 되는데 가끔 평론을 의뢰하는 작품들을 대할 때면 일반 작품 관람에 비해 흥미와 관심이 배가 되어 보게 된다. 우선, 까다롭고 객관적이기로 소문난 사람에게 평가받고 싶어 하는 자신감과 배짱은 뭔가라는 생각에 창과 방패가 만난 양, 괜스레 경쟁심 같은 것도 생겨서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수정하고 피드백 받고 싶어 하는 제작자와 작가들의 간절함이 읽히기도 해서 일반 관람보다 좀 더 신중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호남오페라단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한장면.(사진=호남오페라단)

나름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평론비는 물론 교통비, 숙식비를 자비로 충당하고 전주로 향했다.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주변에는 가을이 깊어져서 모악당 앞마당에 좌우로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의 잎들이 불긋해졌고, 바람에 스칠 때 마다 낙엽에서는 스산한 소리를 내며 제법 농익은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분수도 모르고 모악당의 가을 분위기에 취해서 ‘가을에는 역시 진한 비극이 어울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 트로바토레’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의 3대 오페라 중에 하나로 비극이다.
베르디의 3대 비극 중에서도 다른 두 작품보다 좀 더 낭만주의적 비극이고, 출연하는 성악가 개개인의 기량과 역량에 따라 감상의 질도 달라지는 벨칸토 오페라의 일종이라 캐스팅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 트로바토레’를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고, 성악가들의 벨칸토 가창기법을 감상할 수 있으면 된다.

‘일 트로바토레’에는 느리고 서정적인 아리아인 ‘카바티나’와 격정적이고 경쾌하게 부르는 ‘카발레타’를 연달아 불러야 하는 성악가들이 부르기 힘들 것 같은 곡들이 많다. 성악가들은 매우 힘들겠지만 관객들은 오래간만에 우렁찬 오페라가 아니라 마치 나비 날개 위에 올라서 너울거리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아름답고 기교가 넘치는 예술가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트로바토레’는 무예에 능숙한 기사이면서 동시에 음유시인이기도 한 지덕체를 갖춘 중세 기사(騎士)를 말한다. 물론 ‘트로바토레’인 ‘만리코’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일 트로바토레’의 스토리를 알면 주인공인 ‘말리코’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배역은 ‘만리코’를 길러 준 집시여인 ‘아주체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는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그대로 닮고 있다.
15세기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에서 백작의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배고픈 비스캐이 지방의 떠돌이 집시여인이 백작의 집을 기웃거리다가 아기를 쳐다본 이후 아기가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백작은 이를 그 집시여인의 저주로 여겨서 죄 없는 집시여인을 잡아다가 화형에 처했다. 이를 목격한 집시여인의 딸이자 그 역시 집시여인이었던 ‘아주체나’는 횡포한 백작에게 복수를 맹세하며, 백작의 두 번째 아들을 어머니를 태웠던 불구덩이에 던진다. 그런데 실수로 백작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불구덩이에 던진 것을 알았지만 ‘아주체나’는 백작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사랑으로 정성껏 키운다.

‘아주체나’의 바뀐 아들이 주인공인 ‘트로바토레(음유시인)’인 ‘만리코’이다.

호남오페라단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한장면.(사진=호남오페라단)

‘만리코’는 멋진 기사이자 음유시인으로 성장하였고, 결투시합에서 우승한 후 이상적인 여성상인 ‘레오노라’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레오노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만리코’뿐만 아니라 죽은 백작의 첫 번째 아들인 ‘루나백작’도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루나백작’과 ‘만리코’가 형제인 것을 알고 안타깝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서로 형제인 줄 모르는 ‘루나백작’과 ‘만리코’는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고 철천지원수가 되어간다. 이상적인 여성상인 ‘레오노라’는 백작이 아닌 집시의 아들인 ‘만리코’를 선택하게 되고 ‘루나백작’은 질투에 눈이 멀게 된다.

호남오페라단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한장면.(사진=호남오페라단)

이때 ‘루나백작’의 부관이 백작의 두 번째 아들을 납치한 집시여인 ‘아주체나’를 알아보고 체포한다. 이미 자신의 생모가 아닌 줄 알면서도 ‘만리코’는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오히려 ‘루나백작’에게 체포된다. 이상적인 여인 ‘레오노라’는 자신의 몸을 ‘루나백작’과 거래하고 ‘만리코’를 석방하려고 한다. ‘만리코’는 잠시 ‘레오노라’를 비난하지만 순결을 잃게 되자 약을 먹고 자살하는 ‘레오노라’을 안고 오열한다.

‘레오노라’에게 속은 것을 안 ‘루나백작’은 집시여인 ‘아주체나’와 집시여인의 아들 ‘만리코’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집시여인 ‘아주체나’는 아들 ‘만리코’가 처형되는 모습을 보면서 ‘루나백작’에게 ‘만리코가 바로 당신의 동생 가르치아’이며 ‘이제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이루었다’고 외치며 막을 내린다.

이 얼마나 서늘한 이야기인가!
왕이나 귀족 등 높은 분들이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영웅들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서 인간적인 고뇌, 욕망, 저주, 복수 등 인간 심연의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내어서 자아를 투영하고 공감하고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서사가 그리스 비극을 꼭 닮았다.

이 통속적이지만 비극적인 서사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베르디가 고전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벨칸토 식 작곡을 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보았다.

‘일 트로바토레’는 확실히 베르디가 전략적이고 수학공식처럼 정교하게 만든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출연하는 누구하나 처지지 않게 균형 있고 조화롭다. 이래서 수세기 동안 사랑받는 작품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고, 원작자의 작품을 잘 해석하고 구현해야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특히 ‘일 트로바토레’는 4명의 주역들의 역량과 기량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할만큼 주역들의 비중이 매우 큰 작품이다.

일 트로바토레 배역의 주인공 및 배역 구성도.

이번 호남오페라단의 작품에는 주인공 4인 중 2명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 2명은 한국 성악가로 배치했다.
이상적인 여인상인 소프라노 ‘레오노라’ 역의 ‘레베카 로커’는 사랑스럽고 슬픔에 가득한 연기를 잘 소화할 뿐만 아니라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영역까지 아질리타(빠르게 위로 아래로 오르내리는 창법) 기법을 구사해서 감탄을 자아냈다.

‘만리코’ 역을 맡은 ‘렌조 줄리안’은 타고난 미성으로 High C 까지 자신감 있고 편안하게 부를 때마다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자신감 있고 탄력 있는 High C 가 오페라전당에서만큼 관객석에 전달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오페라 전용극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얼마나 연기를 잘 하던지 ‘레오노라’가 사랑하는 ‘만리코’를 위해 죽으며 부르는 아리아 ‘이 괴로운 눈물을 보아서’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 오페라에서 감탄이 아니라 연기에 감동된 건 처음인 것 같다.

연기 외에 감동적인 건, 외국 성악가들에 비해서 ‘루나백작’ 역을 맡은 ‘장성일’ 성악가와 집시여인 ‘아주체나’ 역을 맡은 ‘최승현’ 성악가의 역량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성악가들이 이탈리아 본 고장에서 온 성악가들과 같은 무대에 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과 역량을 보고 감동스럽고 자랑스러웠다.

특히 ‘루나백작’ 역을 맡은 ‘장성일’ 성악가는 마치 이탈리아 장군의 모습 그대로인 듯 당당하고 용맹스럽게 보여서 마치 ‘루나백작’에 최적화된 배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가장 어려운 역할이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불에 던지고, 원수의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결국은 어머니의 복수를 완성한 ‘아주체나’ 역이다.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양면적인 캐릭터를 메조소프라노로 표현해야 한다. 메조소프라노의 배역 중에서 가장 어렵고 비중 있는 배역일 것 같다. 물론 ‘최승현’ 성악가가 성량이며 처철한 연기력 등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조금 더 연륜이 있는 중견 성악가가 해도 좋았을 것 같다.

베르디가 수학적으로 계산한 듯한 ‘아주체나(메조소프라노) - 만리코(테너)’, ‘레오노라(소프라노) - 루나백작(바리톤)’ 등의 이중창도 매우 조화롭고, 그 유명한 ‘대장간의 합창’과 ‘수도사들의 합창’은 듣기 좋았지만 해외 오페라처럼 합창단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면 좋았을 법하다.

호남오페라단 공연은 ‘달하 비취시오라’를 볼 때도 느꼈지만 무대 배경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각 장과 막마다 무대 변환이 이루어져서 지루하지 않게 한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이 맡았는데 섬세하고 서정적인 연주가 돋보였다.

3일 간 전주에서 공연된 ‘일 트로바토레’의 운영적인 면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전주의 민간오페라단과 전주시립교향악단, 전주시립합창단 등이 협력해서 이탈리아의 성악가들, 연출가들과 베르디의 대작을 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

전주에서 제대로 된 오페라 한 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 칼럼(참고 : 기형적인 국가문화정책이 성악가들을 기형적인 고용구조로 내몰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에서도 예술의전당 등 국가와 지자체에서 국민들의 문화향유 권리를 책임지지 않고 민간 오페라단에 떠넘김으로써 발생하는 예술가 고용문제와 예술의 위기에 대해 지적하고 대안으로 대한민국 대표 국가극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스타지오네 방식’으로 운영하고 예술가를 고용할 것을 요구했다.

민간오페라단은 민간오페라단 대로 오페라 한 편을 올리기가 어렵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오페라 한 편 보여 주기도 어려운 현실은 문화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나눠주는 방식의 문화정책으로는 제대로 된 창작품과 문화향유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언제까지 예술가들의 희생을 요구할 것인가?

예술인들을 제대로 고용하고, 삶의 터전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기회와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 국민들의 삶의 질은 문화복지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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