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구글이 가르쳐 주는 것들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구글이 가르쳐 주는 것들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1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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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얼마 전 한 서양 친구의 전시 서문을 짧게 쓴 적이 있다. 며칠 후 그 친구는 구글을 비롯한 두 세 개의 번역기를 사용, 직접 번역했다면서 글을 보내왔다. 놀랍게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어 번역문이었다. 인공지능은 이처럼 놀라운 속도로 우리의 곁을 파고들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또 어떤 직종이 사라질 것인가?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예술 분야이다. 컴퓨터 아트, A.I 아트는 가능해도 예술 그 자체의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창작의 메카니즘에 있다. 대저 예술가의 영감이란 전광석화와 같아서 도대체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에 서양의 군대가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고군에 패한 이유도 이 전광석화와 같은 전법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한 서양의 역사학자는 몽고군의 전술을 가리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불쑥 출몰해서 삽시간에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잔인함에 겹쳐 지축을 뒤흔드는 기마부대의 말발굽 소리 또한 공포심을 조성하는데 한몫했다.

동양의 바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즉 폭격을 닮았다. 기사는 두 손가락 사이에 낀 바둑돌을 땅 소리가 나게 바둑판에 내리 꽂는다. 바둑의 전술은 정해진 행로를 지켜야 하는 서양의 체스나 동양의 장기와 달리 정해진 규칙이 별로 없다. 바둑에도 정석이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정석을 초월한 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HanQ, <예술과 자본>, Arsenal, 포즈난, 폴란드, 2019(사진=윤진섭)

미술에도 상상력과 영감에 의한 작품제작을 금기시 하던 때가 있었다. 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은 정보와 지식, 개념, 논리, 과학적 사고를 중시했다. 개념미술가들은 영감이나 상상력을 과거 낭만주의의 산물로 취급했다. 샤프해져라! 70년대 당시 개념미술가들은 비트겐쉬타인, 노장철학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으며 미술에서의 논리를 추구했다. 개념미술가들을 비롯한 당시의 실험미술가, 전위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사리에  맞게 이론적 틀을 갖춰 설명하도록 강요받았다. 미술은 곧 지식이었으며, 극히 일부이기는 했지만 과학이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그 시절에는 해외미술의 정보 취득이 어려웠기 때문에 남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국제전 참가 작가들 중 일부는 알게 모르게 정보를 훔쳐 자기 것으로 삼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표현을 빌면 '새것 콤플렉스'에 젖어 있었던 그들은 그것이 표절이라는, 창작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을, 별 죄의식도 없이 들이마셨다. 그들은 불과 40년 뒤에는 인터넷과 SNS 매체라는 것이 생겨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구글과 같은 검색기기가 탄생하여 세계의 정보를ㅡ 마치 깻단을 털듯ㅡ순식간에 모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점은 앞날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HanQ, <예술과 자본>, Arsenal, 포즈난, 폴란드, 2019(사진=윤진섭)

고대 그리스 비극의 특징은 신탁에 의해 한 인간의 운명이 암시된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에서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오이디푸스 왕의 위대성은, 비록 모르고 저지른 죄악이라도 스스로 두 눈을 파내는 형벌을 가한 사실에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피다우로스 극장에 모여 비극을 감상하면서 공동체적 반성을 꾀했던 것이다.

반성은 삶의 질서가 정연히 자리잡은 일상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파국의 국면에 접어들어야 이 숭고한 정신작용이 나타난다.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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