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포토 에세이59]수덕여관
[천호선의 포토 에세이59]수덕여관
  • 천호선 금천문화재단 이사장/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19.11.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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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수덕사와 수덕여관을 촬영할 기회가 있었다. 6.25전쟁 피난시절을 예산에서 보낸 나로서는 수덕사는 항상 친근한 이름이다. 전쟁이 끝나 서울로 돌아와서 중학교 입학후에 예산에 가서 옛날 친구들과 같이 놀러간 곳이 수덕사였다. 한국 최초 여성운동가로서 수덕사 스님이 된 김일엽 여사가 우리를 반갑게 대해준 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우리를 대하면서 일본에 남겨두고 온 어린 아들 생각이 난 게 아닌가 싶다.

▲수덕여관 전경(사진=천호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로 김일엽과 함께 여성운동을 한 나혜석도 수덕사 아래에 있는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주지 스님에게 수차례 중이 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임자는 중노릇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계속 거절당했다. 그러나 당시 수덕사 인근 홍성에 살고있던 젊은 이응노화백은 수덕여관으로 나혜석을 찾아와, 그녀로 부터  파리 유학생활 경험 등 미술에 관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수덕여관 전경(사진=천호선)

수덕여관에 정이 들은 이응노는 수덕여관을 사서 6.25 피난시절 등 1950년대 전반을 여기서 보냈으며, 50년대 후반 애인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나고, 여관 운영은 본부인 박귀희가 맡는다. 이응노는 동백림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잡혀 왔다가 석방된 후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여관 마당에 암각화 몇점을 남긴다. 2000년대 들어 수덕여관은 폐허가 되었으나, 충청남도는 2007년 수덕여관을 ‘이응노화백사적지’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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