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머리 돈놀이 경제에 들이대는 칼
잔머리 돈놀이 경제에 들이대는 칼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8.12.24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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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소련이 무너졌다. 이어 90년, 91년으로 이어지며 동구권이 무너졌다。 동독도 무너지며 독일이 통일됐다.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시민들의 총에 맞아 죽은 충격적인 모습이 대문짝만한 사진으로 신문 1면에 실린 것도 이 즈음이다. 이른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었다.

초등시절 도덕시간에 배운 반공교육대로 ‘아동적 수준’의 사고방식이라면, 이제 세계는 평화가 실현되는 듯 했다. 자유세계를 위협하던 반대 진영의 맹주 소련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군비 경쟁도 없을 것이고 전쟁 가능성도 없어져야 했다.

모든 인류가 화평하게 자유의 깃발을 휘날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날만 다가와야 했다.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강대국의 협박 없이 자주적으로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갈 인류 공영의 이상세계가 그려져야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곧이어 이라크 전쟁이 터지고, 새로운 ‘악마의 축’으로 이슬람 세계가 설정됐다. 한반도 북쪽의 북한도 그 악의 축에 들어갔다. 라이벌이 사라진 거대 제국은 견제 받을 것도, 눈치 볼 것도 없이 세계를 마음대로 재단하며, 종횡무진 날뛰었다.

거대 제국은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상대될 만한 적대국 감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했다. 게임도 안 되는 상대들이 그의 적으로 등장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알카에다,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이 그의 새로운 적이었다. 거대 제국은 다양한 세계를 하나의 획일적 체제로 통합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싶어 했다.

그 방편으로 내건 것이 신자유주의의 기치였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시장 제일주의적 신자유주의는 세계 금융권을 틀어 쥔 거대제국이 개방이란 이름으로 자국시장을 확산, 다른 나라들을 영향권아래 두기에 가장 좋은 방편이었다.

특히 거대제국의 세계지배에 걸림돌이 되는 이른바 ‘악의 축’에 해당하는 나라들을 제거하거나 압박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생산력 확대란 미명하에 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작고 약한 나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좋은 방법이었다. 거대제국이 이렇게 나오자, 그를 추종하는 나라들도 생겼다.

특히 제국의 핵우산아래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원하는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뀌면서 한 술 더 뜨는 분위기다. 이미 무한경쟁의 도가니로, 강자생존 약자도태, 이웃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풍조에 만연된 대한민국은 이른바 교육열을 중심으로 신분세습이 굳어져 가는 형국이다.

가진 자는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못 가진 자는 대책 없이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해 간다. 길거리 굶어 죽을 사람은 포기하고, 잘 나가는 사람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가 정책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1명의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린다는 명분아래 100명의 둔재보다 1명의 천재에게 지원과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기도 한다.

1등이 아니면 주목받을 수 없는 사회, 최고 레벨이 아니면 힘을 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경쟁이 점점 치열한 것도 당연시 됐다. 이웃과 함께 가려는 정신과 복지의지는 점점 희박해졌다. 피땀 흘린 노동으로 생산력과 경제를 유지하기보다 증권과 주식과 펀드로 잔머리 굴려 돈놀이 잘하는 사람들이 금융인재라는 이름으로 떵떵거렸다.

그러다가 미국 발 금융위기를 맞았다. 돈놀이 게임을 너무 추종하다 제 무덤에 든 격이다. 노동에 바탕한 경제보다 잔머리 돈놀이 경제를 유지하겠다는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극단적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래봤자 결국 피해는 서민들이 입고, 금융지상주의자들은 또다시 일어나게 되겠지만 이참에 대한민국도 엄혹한 반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까지나 국민들보고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선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IMF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견디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