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김정헌 작가/4.16재단 이사장 “세상을 향한 자유의지를 저항하며 발산하라”
[Special Interview]김정헌 작가/4.16재단 이사장 “세상을 향한 자유의지를 저항하며 발산하라”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김지현 기자
  • 승인 2019.12.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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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저항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그럴듯하게 간다.
“문화예술도 메마르고 있음을 알고, 일부러라도 여유를 연출하라” 대통령에게 메시지 전해

우리는 남보다 먼저 세상일을 깨우친 사람에게 길을 묻곤 한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의 명쾌한 답을 얻고, 올바른 길을 탐색하기 위함이다. 다가오는 경자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 타칭 ‘민중미술 작가’이자 세월호 참사 4.16재단 김정헌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을 타칭 ‘민중미술 작가’라 칭한 데는 ‘민중’이란 단어의 무거움을 아로새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갖출 것 다 갖춘 ‘민중 부르주아’ 작가라 소개하며 민중에게 미안함을 품어온 그다.

하늘에 뜬 ‘달’과 같이 다양한 사람의 속사정을 밝혀온 김 이사장의 사회적 관심은 남다르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참여해 전두환 정부의 권력과 권위에 저항했고, 1994년에는 동학 농민혁명 100주년에 맞춘 ‘동학 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을 열며 혁명 실패 이후 동학농민 후예의 삶에 역사적 자각을 시도했다. 내년 1월 5일까지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어쩌다보니 어쩔수없이’에선 산업화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우연과 필연에 의해 결국 ‘쓰레기’화되는 실재에 주목했다.

▲김정헌 작가가 ‘어쩌다 당산나무’ 작품 앞에서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전시 외에도 민족미술인연합 대표ㆍ미술계 참여연대 문화연대 대표ㆍ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미술의 사회적 참여를 이어왔다. 공주사범대 미술교육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4·16재단 이사장으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그는 젊은 사람이나 후배 작가들에겐 “세상을 향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거침없이 발산하라”라며 도전과 용기를 북돋는 조언을 아끼지 않지만, 지난 정권 ‘블랙리스트’여파로 현 정부 문화예술의 무관심과 정책 발전 부재 등에 “문화예술 없는 세상은 윤기 없는 메마른 사회인데,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라는 쓴소리를 전한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의 ‘의도적 관심’을 주문한다.

▲김정헌 작가가 개인전 ‘어쩌다보니 어쩔수없이’이 열리는 김종영미술관에서 인터뷰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는 저항정신을 지닌다면, 문화예술은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김 이사장에게 작가의 입장에서 문화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물어봤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테니스 엘보’가 생겨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신작 발표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시제목이 ‘어쩌다보니 어쩔수없이’인 이유는

작품은 작가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는다. 작품은 좋으나 싫으나 어쩌다 보니 전시장에 걸리게 된다. 어떤 작품은 사람들에게 팔리기도 한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작가 다 가지고 있거나 작업실에 처박아 놓는 팔자 사나운 작품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다 이유가 있고, 우연이기도 하다. 작품의 운명은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웃음)

‘작품의 완성은 관객의 몫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싶다

작품은 작가를 잘 만나야 한다. 그러면 작품 팔자도 필수 있는데, 팔자가 피기보단 전시를 한번 하곤 작가 작업실로 돌아가는 작품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작품들 팔자가 대부분 그렇다. 작품과 나와의 상호작용 부분은 나같이 이상한 작가도 가끔 자신에게 베푸는 작품이 있다는 점이다.

앞서 스스로를 이상한 작가라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나는 한 번도 미술계 기본에 맞춰 활동한 적이 없다. 그래서 ‘민중미술’ 작가라고 불리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난 이상한 작가다. 보통 사람은 ‘민중미술’이라고 하면 의아해 한다. 한동안 ‘민중’이란 단어를 쓰기 미안했다. 민중도 아니면서 ‘민중미술’ 작가로 불리는 게 거북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나를 ‘민중 부르주아’ 작가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수에다 갖출 것 다 갖춘 사람이 민중을 찾는 것이, 내 나름대로는 쑥스럽고 함부로 민중이란 말을 사용해도 되는가 싶다. 감옥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한 번도 곤란에 처한 적도 없다. 그림 나부랭이를 약간 그렸다고 민중이란 말을 함부로 쓰기엔 자괴감과 비슷한 게 있다.

▲김정헌어쩌다보니 어쩔수 없이,50x23cm,종이박스에 아크릴,2019(도판=김종영미술관)

미안한 마음을 작품으로 돌려줄 수 있지 않나

작품으로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돌려주나? 작품은 작품대로 갈 길 가는 것이고 작가 자신은 자의식 같은 감정이 약간씩 있다.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누릴 것을 다 누린 거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고 있다. 더군다나 나는 나와 직접 관련 없는 세월호 참사 4.16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그런 것만 봐도 나는 앞뒤가 안 맞는 삶을 살고 있다. 후배들이 잡아끄니까 이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내가 이사장 직책과 맞는 사람인가에서 자의식이 항상 맴돈다.

그런 후배들이 주변에 왜 많을까? 4.16재단 이사장직을 맡으라고 미는 후배들 말이다(웃음)

후배들한테 나는 존경심이 가는 선배로 돼 있다. 올바른 일을 자주 해온 건 아니지만, 후배들이 보기에는 일단 품위가 있어 보이고(웃음) 알게 모르게 젊은 작가 지원을 쭉 해온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풀(Art Space Pool)에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공모전 풀랩(POOLAP)이 있다. 매년 공모 받는 형식인데 4년째 지원하고 있다. 매년 연말 3~4명씩 뽑아 작품을 선보이는데, 지금도 전시가 열리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관계를 이리저리 가지다 보니 이렇게 흘러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서울문화투데이랑 인터뷰하고 있는 거 아닌가.(웃음)

붓으로 직접 묘사한 작품뿐 아니라 의인화ㆍ패러디ㆍ콜라쥬ㆍ만화 등 다양한 매체 실험은 대중과 가까워지는 지점인가

그런 방식을 몽타주라고 한다. 다른 것을 끌어다 표현하는 방식이다. 미술적인 용어로 알레고리가 있어 상징적 의미가 생긴다. 메타포는 기존의 것에 다른 것을 모아 조합하는 것이다. 조금 더 괜찮은 비유나 은유를 할 때 메타포를 쓴다. 애매모호한 상징보단 은유를 사용하면 가치가 있다. 패러디ㆍ차용ㆍ크로스오버(혼성모방) 방식을 쓰는 것이다. 인용보단 차용으로, 비유나 메타포를 만든다. 작가는 작품 표현을 할 때 가져다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 사용해야 한다. 내 칼럼에서 그림 그리기의 '인용과 훔침‘을 말하며,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다 훔쳐라’라고 했다.

▲김정헌,개, 54x39cm,신문지에 유채,1980(도판= 김종영미술관)

내가 신문지 쪼가리를 가져다 쓴 것은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 때부터다. 1980년 작품 ‘개’는 그때 작품인데 다들 좋다고 하더라. 어떤 관계자가 내게 와 그 작품을 사겠다고 했다.(웃음) 그런 부분까지 다 그 작품의 팔자다. ‘개’는 신문지 위에 작품으로 신문지 위에 또 신문지를 붙인 것으로 민화를 가져다 그린 작품이다. 벽사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자 세상의 사악함에 개가 짖는다는 의미를 담는다. 젊은 친구들은 무엇인가를 훔쳐, 가치를 배가시켜야 의미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기존 가치를 떨어뜨린다면, 그는 단지 도둑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산업화의 부산물ㆍ폐기물과 같은 자본주의 모습을 담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산업화를 미술이 국가나 사회 분야ㆍ근대화 산업화로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작가의 생각을 탐색했다. 그 결과 국가는 실체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무뿌리를 이용한 것인데, 마침 화실 앞 정원에 나무뿌리를 캐 논게 있었다. 용머리 같기도 하고 작가 입장에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국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 속 국가, 근대 동력ㆍ국가적인 의제도 시간이 지나면 다 쓰레기가 돼 왔다. 이번 작품들은 독일 산업화에 상징인 ‘푈클링겐 산업 단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표출 가치는 2차 세계대전으로 만들어진 국가 산업단지라는 점이다. 그걸 찍은 사진이 있는데, 조춘만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그 사진을 보면 산업화 현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관광용으로만 쓰이지만 그곳엔 계속해서 나무가 자랐고 봄이 오면 새순이 자랐다. 거대한 산업시설 어디에나 나무가 자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작품화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나 근대화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엔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고민해 봤다. 그러나 이번 신작을 주목하지 않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김정헌, 봄의 소리,250x150cm,캔버스 천에 아크릴, 2019(도판=김종영미술관)

일반적으로 폐기물은 자연에 독성을 끼치는 존재인데

페기물이란 독성 같은 존재를 이기는 것은 자연뿐이다. 그림이란 원래 자연을 베낀 것이다. 시나 그림과 같은 예술은 자연으로부터 온다. 자연을 원천으로 삼지 않는 건 없다. 요샌 바나나를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여놓고 작가가 먹는 퍼포먼스도 있었는데 먹는 행위나 바나나를 벽에 붙이는 것이 결국엔 자연인 것이다. 이에 작가가 의미 부여를 많이 해 1억쯤에 작품이 팔리니까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자본주의 모순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변형된 것이다. 이 형상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난 그 작품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고가 상품화가 돼 버리는 작품의 비극적 결말이다.

나는 상업적인 미술관에선 전시를 하지 않는다. 연초에 이번 전시를 제안받았을 때 안 하겠다고 미루다, 후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하게 됐다. 전시를 위해 새 작품을 부랴부랴 그렸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 공간에서 상업적인 거래를 안 해서 좋다. 물론 작품 값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모른척하고 있다. 난 가만히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2019년 대작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라는 작품이 와 닿았다

‘어쩌다 당산나무’라는 작품과 함께 나의 엘보를 나가게 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술잔을 너무 많이 들어 올리다가 생겼을 거라면서 다들 웃더라. 작품 제목은 작품과는 상관없이 붙일 때가 많다. 나는 제목의 주목성을 강조하는 사람이지만, 제목이 그려진 그림의 시각적 리프라시 소위 시각적 읽기를 표제화해 정하는 것이 내 작품엔 많다. ‘말목장터 감나무아래 아직도 서있는(1994)’이나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이자 1980년대 내 대표작으로 지목되는 ‘냉장고에 뭐 시원한 거 없나(1984)’등은 광고 카피 느낌의 작품 제목이다.

▲김정헌,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250x205cm,캔버스에 아크릴, 2019(도판=김종영미술관)

‘갈등을 넘어 녹색으로’ 중 ‘갈등'의 갈(葛)은 칡 나무 갈으로 왼쪽으로 꼬여 올라가는 것이고, 등은 등나무 등(藤)자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감아 올라가는 방식의 차이를 갈등으로 표현한 것인데, 오래된 산업단지에 나무 하나가 자라는 것 자체가 갈등이 아닐까 싶다.

현재 문화예술의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문화예술도 사회를 구성할 땐 아름다움의 가치가 있건 없건 충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활발하지 않은 세상이나 사회, 나라는 윤기 없이 메마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이 행정적 의미로 잘 한다 못한다를 떠나, 사회 소통의 윤활유와 같이.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금 문화예술에 관해 무관심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남북 관계ㆍ국내 정치 문제가 얽히고설킨 상황 속에, 문화예술은 내부에서 알아서 생산하고 소비하라는 식이다. 정부가 나서 도와주거나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지가 없는 것 자체가 윤기 없는 세상이다. 문화예술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더라도 일부러라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정부가 먼저 나서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반짝 이벤트로 남북 판문점에서 회담할 때 그림 몇 점 걸어두는 모습만 보여선 안 된다. 어느 분야나 대통령에게 우리 쪽에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니까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땐 농정이 죽어가 농정에 관해 대통령이 한 말씀하기도 했는데, 농정만이 아니고 문화예술도 메마르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문화예술인만 즐기는 자족적인 예술이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은 시간을 내서라도 전시장에 방문해야 한다. 일부러라도 여유를 연출해야 한다.

‘문학은 그림을 담을 수 없지만 그림은 문학을 담을 수 있다’라는 말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문학은 절대 자신의 것들 외의 것들은 담을 수 없다. 글과 말은 힘 있는 매체인데 그 안에 갇혀 있다고 느껴진다. 송년회를 할 정도로 나와 가까운 문학인들도 내 전시에 관해 한 마디 말이 없더라. 인사차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물론 아예 없진 않았지만, 옛날부터 속상한 게 문학은 바깥세상에 대해선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담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문학 쪽이 특히 심한 것 같다. 다른 분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영역의 생명은 끝난 거다. 문학 쪽은 소통 부재에 갇혔다. 좋은 시를 썼던 고은 시인 등은 미투 재판까지 갔기에 그림쟁이 보다 더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문자 매체의 강력함에 스스로 취해버린 결과다.

▲김정헌, 산업화의 꿈,91x73cm,캔퍼스에 아트릴, 2018(도판=김종영미술관)

모든 분야는 바깥세상을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닫아놓고 자족인 것은 옛날 소위 순수예술 이럴 때 다 끝난 이야기다. 그래도 당시는 세상을 향해 엄중한 저항을 했고, 메시지를 발신했는데 요즘은 전부 하지 않는다. 자폐 증세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문학 쪽은 자폐 쪽에 가깝다. 크게 각성하면 좋겠다.

예술은 저항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그럴듯하게 간다. 문화예술인들이 저항하지 않는 세상은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작품을 하다 실패해도 투자인 것이고, 크는 것 아닌가? 도전정신에 깔려있어야 한다고 젊은 후배들에게 자주 말한다.(웃음) 그래야만 작가로서 자유정신과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앞서 말한 방법으로 가면 예술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꼭 강력하지 않더라도 항상 열려있는 정신으로 세상에 저항해야 한다. 카잔차키스의 유명한 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것처럼 두려워할 것이 없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 급급하기보단, 여유를 지켜야 한다. 필요만 충족하려다 보면 자폐증이나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생긴다. 세상을 향한 발산이 중요하다. 그냥 하는 발산보단 저항하며 발산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웃음)

선생과 강요배 선생과의 깊은 친분으로 가끔 매체에서도 언급이 되기도 하는데, 지난 6월 강요배 선생 인터뷰 당시, 강 선생은 새로운 미술사조를 창조하고 싶다고 했다. 김 선생의 사조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가 일종의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인 교차를 끝없이 겪는 것,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쓰레기처럼 소멸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선 안 된다. 세상을 향해 자유의지와 저항을 계속 발산해야 한다.

▲김정헌, 녹색이 보인다,70x60cm,종이박스에 아크릴, 2019(도판=김종영미술관)

4.16재단 이사장이자 예술인으로 두 가지 부분을 어떻게 접합시켜 나갈 예정인가

그냥 적당히 살려고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보고 고아원 원장 같다고 한다. 어떤 후배들은 나를 사회동포주의자라고도 하더라. 2~30년 전 일인데 성격이 내가 그린 작품 ‘개’와 비슷하다. 내가 또 개띠이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세상사에 관심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릴지라도 하늘에 뜬 ‘달’처럼 많은 사람들의 여러 속 사정을 밝히는 화가가 되고 싶다. 문화예술 쪽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9년대 ‘문화연대’에서 대표 비슷한 일을 하면서부터이다. 문화예술 정책에 관해 문체부를 견제하는 여러 제안을 냈다. 김대중 정부 때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이 생겼으며 문화산업과 예술정책을 담당하는 국장이 처음 생겼다. 당시 국장이던 오지철 씨가 우리들의 제안을 제일 잘 귀 기울여 듣던 고위 관료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의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 정책의 ‘베스트 플랜’을 만들었다. 그때의 것이 현재 문화정책의 매뉴얼이다. 문체부에 제안을 많이 냈다. 공공 도서관 도서 구입비에 관해, 전 세계 꼴찌인데 이 부분을 늘린다면 출판 산업이 잘되고 문학 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대규모 개인전인데...앞으로 전시계획은?

보통 5-6년 만에 한 번씩 전시했다. 이번 전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놀라고 한다. 화가는 일과 놀이를 같이하는 사람이기에 일하는 것에 순환적인 고리를 가지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작품은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엘보에 이상이 생겨서 그렇기도 하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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