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골목길이 밝아지면 ‘까불이’는 없어질까?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골목길이 밝아지면 ‘까불이’는 없어질까?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01.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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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쇄 살인범 ‘까불이’의 범죄는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희미한 불빛의 좁은 골목길, 버려진 창고, 불꺼진 상가...

드라마의 배경인 옹산이 낮에는 아무리 활기차고, 오랜 이웃들이 주고 받는 웃음과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해도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 앉으면 다른 동네인양 음침하고 스산한 기운이 골목에 가득찬다.

이런 어둠과 밝음의 대비가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이끌었던 선한 멜로와 스릴러가 공존하는 복합 장르의 넘나듦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의 불편한 어둠을 마주할 때마다 “저 골목 가로등 개선 사업 좀 해야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골목길의 가로등 개선사업을 통해 안심귀갓길을 조성하는 것은 좁은 골목길을 가진 마을의 단골 경관사업이었기에 가로등의 수를 늘여 설치하고 후미진 곳 없이 온 동네가 밝아지면 까불이가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못할텐데.. 라는 아주 시시한 생각을 해보았다. 한편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사회에 대한 복수로 범죄를 저지르는 ‘까불이’가 골목길이 밝아졌다고 살인을 멈출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과연 어둠은 범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어두운 환경이 밝게 개선되면 범죄를 줄이는데영향을 미칠까?

2015년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단위면적 당 가로등 수가 가장 많은 구는 노원구이고 그 다음으로 서초구, 강남구의 순이란다. 또한 가장 적은 수의 가로등이 설치된 구는 강북구로 노원구의 1/8 수준이고 그 다음은 강서구, 도봉구, 동작구의 순으로 어두운 것으로 조사되었다. 예상대로라면 이 세 개 구의 범죄 발생율이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심지어 도봉구, 강서구는 범죄발생율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국제조명위원회에서는 골목길이 밝아져 시야가 확보되면 범죄심리가 억제되어 범죄발생율이 감소하고 각종 사고로부터 두려움이 없어져 환경의 안전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생긴다고 발표하였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이야기한 바 없다.

오히려 1997 미국법무부 연구소는 조명 환경 개선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고 하였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시카고 시티의 골목길 프로젝트는 이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시카고시티는 도로의 가로등과 골목길의 보안등 개선을 통한 범죄를 줄이기 위하여 첫 단계에 간선도로와 주택가의 가로등 175,000개를 높은 밝기의 조명기구로 교체했고, 두 번째 단계에는 시카고 역과 고가 주변의 조명을 보수 혹은 교체, 마지막 단계에 공공의 안전과 범죄와의 전쟁 차원에서 도시 전체 골목길의 조도를 상향 조정했다.

이 프로그램의 의도는 골목길의 밝기개선을 통하여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하고 범죄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두 개의 지역을 선택하여 야간 뿐 아니라 주간에도 발생하는 범죄율과 밝기 개선 후 6개월과 1년, 2회 그 범죄 발생 추이를 조사하고 범죄의 종류도 조사하였는데 밝아진 환경에 대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수는 늘었으나 범죄율은 오히려 증가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명개선이후 6개월 동안 현저히 증가하였고 약물범죄와 같이 이전에는 발견되기 어려웠던 범죄의 신고 수가 현저히 늘고 기타 다른 범죄도 그 수치가 조금씩 늘었다. 물론 절도와 같이 밝기가 개선되어 시야가 확보되면 현저히 줄어드는 범죄의 타입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조명여건이 좋아진다는 것이 범죄율을 낮추는데에 필요한 조건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다른 이야기로 말하면, 가로등 조건의 개선과 범죄발생율의 감소가 그다지 크게 관련성이 없어 사고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는 것은 바보같은 일인 것이다.

작년 서울시는 ‘사회적 조명’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조명시티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 조명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뉘앙스는 이제까지의 정책과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정량적으로 효율과 수치에 근거한 조명이 아닌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장소의 특성을 반영한 조명이 아닐까 한다. 특히 조명의 사회적 역할이 매우 중요한 곳 - 빈민가, 낙후된 재래시장, 복구가 필요한 재난 등 -에서 조명의 역할은 일반적인 그것과 많이 다르게 때문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아시아 도시조명 연맹 워크샵에 스피커로서 참석 했었던 런던의 돈 스레이터 교수는 사회학자로서 경제수준이 낮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밤에 필요한 조명의 역할에 대한 연구결과로 그들이 사는 도시는 어두우나 친근감과 믿음이 존재하는 환경으로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며 조명이 거리를 밝힐 필요가 없는 환경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런던의 LSE에서 Configuring Light 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나은 조명의 역할을 찾아가는 실험을 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조명 전문가들은 Social Light Movement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명 기술의 발전 속도 만큼이나 도시의 조명에 기대하는 역할이 빠르게 달라진다. 안전한 밝기제공에서 상황에 따라 스마트하게 변신하는 조명 그리고 이제는 밝기의 논란은 뒤로하고 사람의 정서를 보듬는 빛이라니...

까불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조명계획, 이것이 앞으로 요구되는 도시조명의 가이드라인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