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시간들에 대한 오마주, ‘시간여행자의 아내’
기억하고 싶은 시간들에 대한 오마주, ‘시간여행자의 아내’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09.11.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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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니페네거의 대표적인 판타지로맨틱 소설, 영화로 탄생하다

2003년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500만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인 ‘시간여행자의 아내’ 는 영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오드리 니페네거의 대표적인 판타지로맨틱 소설이다.

텍스트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과 스크린을 통한 제한된 상상의 간격으로 인해 원작의 진가를 뛰어난 영상적 언어로 재해석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영화화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를 통해 영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롭게 원작을 표현해 낼 수 있는지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60여 년이 흘러서야 영화화 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게 한다.

1920년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즉흥적 단편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는 “만약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세기 작가로부터 영감을 얻은 20세기 작가의 단편이 21세기 감독 데이빗 핀처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기나긴 시간여행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표제 아래 비로소 휴식을 취하게 된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처럼 그리 긴 여정은 아니었지만 영화 배경으로 등장했던 비밀초원에 풀이 자라길 기다린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두 사람의 제 2의 만남장소인 도서관에서 촬영허가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설득해야 했던 수고가 드리워진 영화다.

두 영화 모두 베스트셀러인 원작소설을 영화적 언어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포레스트 검프’ 로 감동의 메커니즘을 열었던 에릭 로스의 각본 작업과 ‘사랑과 영혼’ 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던 브루스 조엘의 공이 크다.

시간일탈 유전자를 지닌 채 의도하지 않은 시간여행을 하며 현실에 머무를 수조차 없는 헨리(에릭 바나), 그런 그를 변함없이 기다리며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클레어(레이첼 맥아덤스).

6살에 비밀초원에서 헨리를 만난 클레어는 성장하는 시간들 속에서 가끔씩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시간여행자인 헨리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지만 가정에 정착할 수 없으며 끝없이 시간여행을 해야만하는 헨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간여행자의 운명적인 아내다.

이 비현실적인 소재는 치밀한 구성력과 상상력에 위배되지 않는 리얼리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게에 의해 아름다운 판타지 로맨스로 되살아난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나선 브레드 피트가 오랜 고민 끝에 캐스팅한 에릭 바나와 레이첼 맥아덤스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깊이 있게 혹은 자연스럽게 마치 그 자신들인냥 연기함으로써 텍스트로 잠들어 있던 주인공들을 감동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2002년 스릴러 ‘타투’ 로 유럽판타지 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줬던 로베르트 슈벤트게가 ‘시간여행자의 아내’ 에서 아름다운 판타지 로맨스를 펼쳐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너무 살리려다 어색해져버린 몇 장면들. 이를테면 클레어가 임신한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간여행을 해버림으로써 유산이 된다거나, 헨리가 결혼식 직전에 사라졌다 돌아오는 설정은 영화의 매끄러운 진행을 살리진 못했지만 판타지 로맨스의 위용(?)을 갖추는데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다분히 상업적 의도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보게 되고 세계적으로 관객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진정성과 리얼리티 이외에도 의도된 슬픔이나 감동을 한치의 오차 없는 각본작업과 탁월한 캐스팅 그리고 관객과의 정서적 마케팅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각본 수정을 위해서 10년 이상을 투자하기도 하는데 영화의 사소한 리얼리티에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리얼리티의 중요성은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성공적인 영화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는 얼핏 단순한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시공을 초월한 조건없는 사랑은 인류의 마지막 안식처인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며, 그것은 매순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삶의 진리(화목한 가정, 오랜 우정, 건강한 아이를 갖고 싶은 바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년기에 대한 추억과 아름다운 시절에 머물러 지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시간여행자의 삶을 살고 있음을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헨리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우리는 헨리처럼 알몸으로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속에 던져지지 않고 죽음을 제외한 시간에 대한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물리적인 시간여행자와의 차이점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내면적 시간 여행자로서 조건없는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을 꿈꾸고 있는 이 순간의 우리들, 그것이 삶이다’ 라는 단순한 삶의 진리가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요원한 것은 왜일까.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가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슴도치딜레마를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단면이 아닐까.

바람은 차고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