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렁스’, 길게 놓인 ‘좋은 사람’의 발자국
연극 ‘렁스’, 길게 놓인 ‘좋은 사람’의 발자국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5.16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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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장치·조명·의상 등 미장센 사용 절제
두 배우가 던지는 ‘좋은 사람’에 대한 질문

‘좋다’라는 감정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다만 여기에 많은 사람의 공감이 더해지면 그 판단은 보편성, 객관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여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인생의 중대한 결정의 순간에서 머뭇거리는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아이 한 명의 탄소발자국이 이산화탄소 1만 톤(t)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에펠탑 무게만큼의 탄소발자국을 발생시킬 아이를 낳을 정도로 그와 그의 연인이 좋은 사람인지 고민한다.

▲연극 ‘렁스’ 공연 모습(사진=연극열전)
▲배우 김동완과 이진희의 연극 ‘렁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연극열전의 8번째 시즌 첫 번째 작품 ‘렁스(Lungs)’는 영국 작가 던킨 맥밀란의 대표작이다. 2011년 워싱턴 초연 이후 미국, 영국, 캐나다, 홍콩, 필리핀, 스위스, 아일랜드 등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국내 초연작이다. 던킨 맥밀란은 선뜻 꺼내기 어려우나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 곳곳의 문제점을 다소 낯설지만 불편하지 않은 방법으로 소개한다.

연극 ‘렁스’는 평생에 걸쳐 각자의 감정에 대해,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 나아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해, 그리고 좋은 의도를 갖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커플의 대화를 담고 있다. 한 연인이 겪어내는 장대한 시간과 고민을 시의성 강한 메시지와 함께 대화로 풀어낸다. 

박소영 연출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여자와 남자가 사실은 모순적인 부분이 많은, 이상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라며 “각색해서 불편한 점을 없앨지, 온전히 그려내야 할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순적인 부분조차 우리와 닮아있다는 것을 연습하는 내내 깨달았고, 그들의 모습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온전히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무대장치, 조명, 의상 등 미장센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한 채 두 배우가 주고받는 연기와 감정, 호흡으로 일생에 걸친 희로애락을 펼쳐낸다. 실제로 런웨이처럼 길게 뻗어진 한 줄의 무대와 그 위를 누비는 2명의 배우 외 다른 무대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소품은 ‘신발’이다.

▲연극 ‘렁스’ 프레스콜 모습
▲연극 ‘렁스’ 프레스콜 모습

박소영 연출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들이 겪었던 큰 지점들, 전환점이 되는 부분들에 신발을 나열했다”라며 “공연 자체가 이 둘의 삶을 이야기한다.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무대를 채웠던 두 사람이 공연 종료와 함께 사라지고 나면, 그들이 걸었던 길 위에 신발이 쭉 나열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인생의 발자취와도 같다”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와 위로에 서툴러 긴 시간을 돌아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남자' 역은 배우 김동완·성두섭·이동하가 맡았으며, 이진희, 곽선영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생의 거대한 순간조차 갈등하고 부딪히며 성장하는 '여자'로 출연한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극에 도전한 김동완은 “꼭 해보고 싶었던 연극을, 이렇게 좋은 작품을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많은 선배들이 빠듯한 스케줄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무대를 놓지 않는 이유를 해 보니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10년 전 대본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의 현상과 맞닿아 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점을 이야기한다는 게 놀랍고 강하게 끌렸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018년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후 2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곽선영은 “이번이 두 번째 연극 무대다. 연극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연이 잘 닿지 않았다”라며 “대본을 봤을 때 너무 재밌었고, 연습 과정에서도 공연만큼 뜨겁고 치열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욱 신나고 재밌게 하고 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연극 ‘렁스’ 프레스콜 모습
▲배우 이동하의 연극 ‘렁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두 명의 배우가 온전히 극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방대한 대사량 또한 눈길을 끌었다.

이동하는 “대사의 양도 많았지만, 대본에 지문이 따로 없었다. 대사로만 이루어진 대본을 소화하는 것과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치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다”라며 “그만큼 배우들끼리 열심히 준비했다”라고 전했다.

성두섭 또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어, 작정하고 들어왔다. 대사량 자체가 많지만, 여자의 대사량이 월등하게 많다. 그럼에도 (두 배우가) 정말 빨리 잘 외웠다”라며 “2인극이라 기댈 곳이 상대 배우 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맞춰 열심히 했다”라고 전했다.

이진희는 “연습을 하는 중에도 연출님이 ‘좋은 사람’에 대한 질문을 계속 주셨다. 무대 위의 남녀는 좋은 사람으로 불리기엔 좀 모순덩어리이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 무대 위의 캐릭터가 완벽한 인물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체가 좋은 경험이라고 느꼈다”라며 “생각할수록 좋은 사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 각자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배우 곽선영과 성두섭의 연극 ‘렁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배우 곽선영과 성두섭의 연극 ‘렁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박소영 연출은 “대본을 읽을수록 공연을 볼수록 더 보이는 게 많아지는 공연이다. 연극을 보면서 많은 생각과 질문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라고 관객들을 독려했다.

개인의 신념과 선택,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 ‘렁스’는 7월 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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