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월화’를 이끈 4인의 여성들에게 묻는다
연극 ‘월화’를 이끈 4인의 여성들에게 묻는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6.25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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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민 연출· 송지인 무대 디자이너· 문수아 배우· 이정표 음악감독
강원도립극단이 전하는 ‘월화’의 목소리…“여배우는 오늘도”
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00년 만에 무대서 부활

1958년 톨스토이 원작의 독일영화 <부활>이 국내에서 큰 흥행을 거뒀다. 이에 유두연 감독은 1960년 최무룡과 김지미를 앞세워, 원작 여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한 리메이크 영화 <카츄샤>를 제작했고 이 역시 대히트를 기록했다.

카츄샤의 이야기가 처음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3년 9월 토월회의 제2회 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로 올려지면서부터다. 토월회의 <카츄샤>는 다음 해인 1924년 2월과 6월, 그리고 그다음 해인 1925년 5월에도 재공연됐다.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사진=강원도립극단)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사진=강원도립극단)

토월회의 <카츄샤> 성공의 중심에는 카츄샤를 연기했던 이월화가 있었다. 세상에 카츄샤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전, 이월화는 그의 독백을 방백으로 바꾸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올여름 이월화가 100년 만에 다시 카츄샤의 독백을 읊는다. 조선 최초 여배우로 활동한 ‘이월화(李月華, 1904?~1933)’를 모티브로 한 강원도립극단의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지난해 초연 이후 “어중간하던 근대물에서 드디어 한방이 터졌다…서울의 국립극단이 못했던 걸, 춘천의 강원도립극단이 해냈다”(평론가 윤중강) “‘월화’가 보여 준 ’강원도의 힘‘은 대단했다”(저널리스트 정중헌) 등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 힘입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1920년대 조선의 연극판의 중심에는 오직 남성만이 존재했다. 여성은 배우가 아닌 기생이자 노리개로 취급받던 시절에 이월화는 성별, 신분, 시대적 상황에 맞섰다. 이 작품을 쓴 한민규 작가는 이월화를 ‘변혁과 혼돈의 시기에 피어난 혁명의 꽃’이라고 정의했다.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

여전히 여성만이 직업 앞에 성별이 표기되는 시대이기에, 배우 이월화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귀 기울인다.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오는 20일 동해를 시작으로, 강릉공연 이후 ‘2020 연극의 해’ 기념 제11회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에 참가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연일인 28일은 서울문화투데이와 공동주최로 평생 독자 및 구독자 초청, 특별공연으로 진행된다.

많은 수식어를 달고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여배우의 이야기, 공교롭게도 연극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를 만든 중심에는 4인의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치민 연출(이하 이치민)과 송지인 무대 디자이너(이하 송지인), 문수아 배우(이하 문수아), 이정표 음악감독(이하 이정표)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조선의 카츄샤 이월화를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고 전하고자 했을까.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 인터뷰로 대체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대면은 대학로 아르코 공연장에서 대신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치민
양정웅 감독님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1920년대 우리나라 최초 여배우의 이야기라는 기획서에 흥미를 느꼈다. 그 시대의 음악을 추가해 공연을 만든다면 색이 분명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아 이끌렸다. 

송지인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대본 외에 숨겨진 월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1920년대의 여배우의 긴 삶을 듣고 그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프로덕션을 통하여 그 첫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수아 조선 최초의 여배우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른 시대에서 같은 꿈을 꾸던 배우를 만나는 일에 대한 기대감에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됐다. 

이정표 여러 장르가 혼재된 일제강점기 시대 노래에 매료되어 2019년 음반 <경성살롱>을 발표했다. 대본을 보는 순간 그 시대 한가운데 있던 배우 이월화의 이야기에 이 음악들이 극의 전체적 톤을 만들어주고, <월화>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 

▲(왼쪽부터)무대 디자이너 송지인, 음악감독 이정표(사진=강원도립극단)
▲(왼쪽부터)무대 디자이너 송지인, 음악감독 이정표(사진=강원도립극단)

1920년대 개화기, 당시 불우했던 시대의 연극계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이치민 모든 연출은 배우들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시대를 고증하는 의상이나 음악은 그 열정에 색과 분위기를 더해주는 힘이었고, 당시 불우한 상황 속 연극계의 갈망은 지금 배우들의 내면에 자리한 열정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실제로도 배우들과 그 당시 배우들의 간절함이나 열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현재 우리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열정으로 채우고자 했다.

1920년대 무대를 옮기면서 가장 중심에 둔 것은?
송지인 위에 말했던 것과 같이 여러 개의 짧은 장면들을 모두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간을 최대한 비우면서도 1920년대의 분위기가 동시에 충족이 되어야 했다. 디테일한 대 도구들을 최대한 생략하는 대신, 무대의 틀이 되는 건축물 리서치를 많이 했다. 그와 더불어 월화의 서사와 어울리는 세트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오프닝에 꽃잎이 날리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조명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소품 대신 조명을 활용한 연출을 선택한 의도가 궁금하다.
이치민 작품의 특성상 전환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기술적으로 선택한 부분이다. 그리고 대극장 공연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품들로 무대를 채우기보단 조명과 영상을 활용해 극의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왼쪽부터)연출 이치민, 배우 문수아(사진=강원도립극단)
▲(왼쪽부터) 배우 문수아, 연출 이치민(사진=강원도립극단)

장면과 무대 전환 시, 미닫이문을 사용한 이유가 있는지?
송지인 <월화>에서의 공간변화는 마치 영화 속 교차편집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발생한다. 많은 장소의 변화를 짧은 시간 안에 전개하기 위해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문의 속성을 사용하여 그 전개를 이어나가기로 약속했다. 오랜 연습과 논의를 통해 배우들은 매 공간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다른 호흡으로 연기하며 새로운 공간을 관객들이 상상하게 해주었다.

많이 노출되지 않은 실존 인물 ‘이월화’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연구가 필요했나?
문수아 이월화 선생님의 배우 생활은 강렬했지만 아주 짧았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여 남아있는 기록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작품은 팩션 극으로 실제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들이 있기에, 그분의 삶 그대로를 옮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그분의 열정과 마음이 이어지길 바란다. 

그 당시 배우로서 인정받기까지 처참했던 상황들을 그려봄, 어떤 마음이었을지 함께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장면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그 시대 예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대적 상황, 사회적 배경에 대해 조사했다. 또한 작품 내 공연을 선보이는 극 중 극이 많다 보니 당시의 작업 방식, 무대에서 작품을 구현해내는 형식 등을 찾아보고 유추해보며 연구했다.

1920년대 많은 노래 가운데, 극에서 사용된 곡들의 선별 기준은?
이정표 <월화>에는 이 풍진 세월, 바다의 꿈, 화류춘몽, 이태리의 정원, 처녀일기, 그대 그립다, 황성옛터, 사의 찬미 등 총 8곡의 노래가 삽입되었다. 

먼저 오프닝을 여는 ‘이 풍진 세월’은 잘 알려진 노래이고 현악 4중주의 따뜻한 편곡으로 극을 부드럽고 밝게 여는 역할을 한다. 이월화가 부산에서 윤백남의 눈에 들어 한 달 후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오는 사이의 노래는 ‘바다의 꿈’인데 극을 통틀어 가장 신나고 빠른 곡으로 당시 모던걸, 모던보이가 활동하던 경성의 느낌과 본격적으로 배우로 태어나는 월화의 포부와 미래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왕평렬의 등장에 전반적으로 쓰이는 ‘화류춘몽’은 그 시대 기생들의 애환이 담긴 가사와 함께 요나누끼 단음계로 작곡된 멜로디가 왜색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의도하였다. 이월화와 박승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1막이 마무리될 때 사용되는 ‘이태리의 정원’은 역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에 대한 세레나데이다.

‘처녀일기’를 통해서는 복혜숙과의 다툼 후에 처연한 월화의 마음을 애수 어리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극의 클라이맥스 후 무반주로 시작하는 ‘그대, 그립다’는 허무함, 고독함, 그리움 등의 감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극 전반에 걸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노래인데 당시 시대상의 쓸쓸함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곡이어서 편곡 또한 담담하게 하였다. ‘황성옛터’는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산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아 한없는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의 3절이 이월화의 인생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선택했다. 극을 맺는 마지막 곡은 ‘사의 찬미’다. 이 또한 잘 알려진 1절 대신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니가 아느냐’로 이어지는 가사에 <월화> 속에 담긴 주제와 당시의 분위기를 녹여내고자 하였다.

극과 인물, 음악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의 시대적/공간적 배경과 장르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특히 신경 쓴 부분?
이정표 극 중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노래하는 본인은 장면마다 배우들의 심리를 대변해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시대를 아우르기도 하면서 음악을 통한 정서적 중심 잡기를 하는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어디쯤 있는 존재인데, 그러므로 극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도, 많이 벗어나 있지도 않은 균형을 잡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미리 작곡되어 플레이되는 음악과 라이브 연주가 함께일 때 이질적으로 모니터 되지 않도록 음향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하여 음악이 튀지 않고 <월화> 속에 잘 스며들어 극과 인물, 음악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살리고자 하였다.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
▲‘월화-신극, 달빛에 물들다’ 공연 모습

극 중 월화의 처지와 상황이 반영된 듯한, 톨스토이의 부활 속 카츄샤의 독백이 두 번 나온다. 각각 어떤 다르고 또 같은 감정으로 그 장면을 연기하는지 궁금하다.
문수아 처음 카츄샤의 독백은 톨스토이 <부활>에 등장하며, 월화가 배우로서 연기하는 장면이다. <부활>은 실제로 배우 이월화의 대표작인 동시에, <월화>에서 월화가 가장 꿈꿔온 작품, 그리고 가장 전성기가 되는 시점을 나타낸다. 

그러나 9년이 흐른 뒤 다시 연기하는 카츄샤의 독백은, 지나온 시간 동안 몰락해온 삶의 끝자락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는 대사다. 상황 자체가 다르다 보니 표현되는 감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월화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같으나, 결 자체가 다르고 그 안에 있는 무언가들이 아주 많이 함축되어 있다. 너무나 큰마음들이 소용돌이친다. 

9년 전과 같은 카츄사의 독백을 연기하지만, 변화한 상황 속 대사와 월화의 실제 삶이 어느 순간 겹쳐 보인다. 극 중 극의 독백 대사가 오롯이 그녀의 이야기가 되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가장 빛이 났던 시절 연기했던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닫게 된다. 즉, 월화의 마지막 외침과 깨달음, 그리고 삶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치민 100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사실 지금도 많이 달라진 건 없다는 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현재에도 이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극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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