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프리뷰]실제이기도 하고 허구이기도 한,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프리뷰]실제이기도 하고 허구이기도 한, 연극 ‘마우스피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7.19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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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빌려 쓴 예술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고찰
‘메타씨어터(meta theater)’ 형식으로 객석에 던지는 메시지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실화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지.”
지인과의 사적인 SNS 대화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피해자의 항의를 묵살해 물의를 빚고 있는 김봉곤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동성애자인 성적 취향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작가 본인과 닮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인과 그들을 둘러싼 많은 사건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예술가가 일상에서 수집한 글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재현하는 과정과 같기에 윤리적 고려를 잊어선 안 된다.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는 부분은 결국 누군가로부터 빌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극 ‘마우스피스’ 장면 시연
▲배우 김신록과 이휘종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시의적절하게 위의 이슈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열전의 8번째 시즌 두 번째 작품 <마우스피스(MOUTHPIECE)>(이하 <마우스피스>)는 스코틀랜드 작가 ‘키이란 헐리(Kieran Hurley)’의 최신작으로, 2018년 영국 트래버스 극장에서 초연됐다. 

‘입을 대는 부분’을 칭하는 용어이자 ‘대변자’라는 중의적 의미인 <마우스피스>는 누군가의 삶을 소재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 극장으로 대변되는 예술의 진정성 등에 대해 객석에 질문을 던진다. 

한때는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극작가 ‘리비’는 배우 김여진과 김신록이 연기한다.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데클란’ 역은 장률과 이휘종이 분한다.

<마우스피스>는 두 인물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 관객에게 동시에 전달되는 ‘메타씨어터’ 형식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이 ‘리비’의 작품을 보는 동시에 작품의 소재로 이용된 ‘데클란’의 삶과 선택을 지켜보게 하고, 이를 통해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배우 김여진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김여진은 “지금까지 연극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통해 민초들의 삶이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자부했다”라며 “그런데 이 작품의 대본을 본 후로 ‘과연 그들이 연극을 향유할 수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본을 해석해나가면서 이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의 삶을 차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리비의 창작 과정을 통해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기분이었다”라며 “리비가 미워진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작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대사처럼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며 극복했다”라고 설명했다.

리비 역을 맡은 또 다른 배우 김신록은 표현하는 예술가의 입장에 조금 더 집중했다. 그는 “연극은 인간의 삶, 인간 자체를 소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예술인데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라며 “너무 쉽게 리비라는 인물이 역으로 대상화되지 않도록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배우 김신록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배우 김신록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김신록은 “‘진짜가 어떻게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라는 대사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와서라도 어떻게든 진실에 닿으려 노력하지만, 예술가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가짜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표현하려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차이는 문화 자본이라는 또 다른 권력과 차별로 확장된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다룰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예술 작품의 진정성은 누가 정하는지,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어떤 책임을 갖는지 그리고 연극을 ‘본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부새롬 연출은 리비와 데클란의 관계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사이”라며 “에로틱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등한 위치의 관계도 아니다.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준다. 영감이 되어주는 예술가적 동지 관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배우 김신록과 이휘종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배우 김여진과 장률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부 연출은 “작품에 등장하는 베드신이 이들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며 “사랑의 본능적 행위를 극에선 베드신으로 표현하는데, 작품 속 베드신을 통해 이들이 만나려 했으나 결국엔 만날 수 없는 사이임을 알려준다”라고 설명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을 주고받던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관계가 기울어지는 순간 하나씩 미끄러지게 된다. 그것은 나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계급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마우스피스>의 리비는 “진짜가 얼마나 가짜처럼 보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데클란은 “정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판다”라고 이야기한다. 한 사건을 대하는 서로 다른 인물의 견해를 대변하는 대사다.

▲배우 장률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배우 장률의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시연 모습

데클란 역의 배우 장률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팔거든’이라는 대사가 이 극을 관통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나가는 과정에서, 충분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이 현존하는 시대에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을 하는 동안 한 번 더 사유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같은 배역을 맡은 이휘종은 “언덕 위에서 마리화나를 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라며 “리비가 쓴 결말,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판다’는 대사와도 닿아있다”라고 밝혔다.

데클란이 직접 전해준 이야기를 리비는 녹음하고, 그걸 토대로 극을 만든다. 데클란의 목소리를 연극이란 확성기로 세상에 전해주는 듯하지만, 정작 그 공연에서 데클란은 배제된다. 15파운드짜리 티켓값을 지불할 수 없는 극장 밖 데클란에게 그 이야기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에 불과하다.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출연진 단체 사진
▲연극 ‘마우스피스’ 프레스콜 출연진 단체 사진

리비 역의 김여진은 “일, 관계, 인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마우스피스>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실 앞에 방황하고 있는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나’를 찾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신록은 “무대 위의 인물들은 삶이 의미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하는 절박한 사람들인 동시에, 삶이 의미 없음을 깨닫더라도 살아내는 사람들”이라며 “남이 규정한 범위 밖으로 뛰쳐나가서라도 살아보려는 용기를 내보려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극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부새롬 연출은 “리비는 데클란의 인생을 차용해서 글을 썼고, 이 글을 쓴 원작자는 리비의 인생을 차용해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 지점까지 확장해서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한편, 연극 <마우스피스>는 오는 9월 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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