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2020 연극의 해’, 담론과 실천 그리고 도약
“변해야 산다”…‘2020 연극의 해’, 담론과 실천 그리고 도약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7.2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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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담론과 방안 모색, 14가지 사업 통해 ‘건강한 연극’ 환경 조성
젠더적 고정관념 확인 및 새로운 창작 원찬 발견 독려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최근 몇 년간 격동기를 겪은 연극계가 ‘2020 연극의 해’를 축제의 장이 아닌 담론과 실천의 변곡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2020 연극의 해’(이하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는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기자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고, 위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14가지 사업 내용을 발표했다. 행사는 ‘연극의 해’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으며, 현장의 수어 통역사를 통한 동시통역이 함께 제공됐다.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모습(사진=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모습(사진=2020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

앞서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은 2020년을 ‘연극의 해’로 지정하겠다고 선포했다.  연극의 해가 지정된 것은 1991년 연극영화의 해 이후 29년 만이다.

심재찬 집행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2020 연극의 해’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조성해 앞으로 연극예술의 방향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사업의 방향성을 소개했다.

이어 심 위원장은 “축제처럼 들썩이는 행사 분위기보다 건강한 공연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집행위원을 구성했다”라며 “여러 세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이들로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안전한 창작환경과 지속 가능한 공연 생태계 조성이 가능케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의 해’ 3대 전략 목표는 ▲안전한 창작환경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 ▲관객소통의 다변화다. 

우선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해 ‘연극인공감 120’ 사업을 추진한다. 연극인들의 현실적인 복지증진과 환경개선을 위한 복지 플랫폼으로써, 해결사가 아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콜센터’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어 전국 연극창작환경 실태조사와 공연예술인들의 예술노동에 대한 ‘공정 보상체계를 위한 기초연구’가 추진된다. 전국 10개 지역(의정부, 수원, 인천, 춘천,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 제주)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고 차별과 폭력 없는 안전한 창작환경을 위한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orea Theatre Standards) 전국 워크숍’도 진행하고자 한다.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강윤지 집행위원 발언 모습

또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전국 6개 지역의 청년 연극인들이 모인다. 인구와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밀집되는 사회 문제에 대해, 청년 연극인들이 연극의 언어로 네트워킹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연극계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METOO(미투) 라고 할 수 있다. 젠더 감수성은 관객들이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관점이자 지속가능한 연극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시대적 과제이다. 이에 연극 작품 내에서 여성/퀴어/장애 등의 소수자성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성별/나이/세대를 막론하고 함께 모색하는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연 접근성 확장의 일환으로, 극장 시설 접근성을 점검하고 장애인의 극장 이용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을 확인한 후 개선안을 함께 고안하는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관객소통의 다변화>를 위한 해결방안으로는 ‘대면’과 ‘비대면’의 양방향 사업이 진행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도슨트(docent)’ 시스템의 도입이다. 기존에 미술관에서 사용되는 도슨트라는 단어를 차용한 ‘연극 도슨트’는 말 그대로 연극 공연과 관람을 설명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연극이 친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역할을 하며, 향후 연극인들에게 또 다른 일자리로 확장될 것을 전제로 한다.

더불어 프리랜서가 많은 연극계의 특성상 구인ㆍ구직자 간의 원활한 연결이 어렵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구인ㆍ구직 플랫폼 역할을 할 ‘연극인 일자리 매칭 앱’ 개발 계획을 밝혔다. 구인ㆍ구직자 간에 신속한 매칭을 도우며, 수많은 일자리가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순환 효과를 기대하는 사업이다.

전국 연극인 세대 공감 사업도 마련된다. 연극인들의 세대 공감을 주제로 220인의 유튜버를 공모하는 ‘2020 공감버튼’과 자체 제작 콘텐츠 ‘라떼토크’ 총 두 가지의 콘텐츠로 구성되는 해당 사업은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한국 연극사에서 배제됐던 연극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1920년부터 현재까지 언도큐멘트 된 작품들에서 장면들을 발췌해 갈라 형식으로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집행위원회는 “한국 연극사를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며, 지난 시대의 작품들이 현재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해석의 관점”이라며 “10월 마지막 주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 작품 당 10분 내외로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심재찬 집행위원장 발언 모습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심재찬 집행위원장 발언 모습

‘연극의 해’의 다양한 기반 조성을 위한 14개 사업 설명은 한 시간가량 진행됐으나, 사업 계획의 다양성에 비해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심재찬 집행위원장은 “서울과 다른 지역의 연극 제작 인프라 차이는 극심하다”라며 “이번 ‘연극의 해’ 사업 추진을 통해 전국 연극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취합된 자료들이 문화예술 정책에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방지영 부위원장은 “연극은 시대의 거울인데, 포스트 코로나를 반영할 때 올해 '연극의 해'를 정돈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라며 “연극계가 먼저 건강하고 튼튼해져야 더 건강한 연극으로 관객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전국 청년 연극인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한 성지수 극단 콜렉티브 뒹굴 대표는 “연극을 만드는 동안 배제됐던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려 한다”라며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 활동인 것은 맞지만, 이미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움직임들이 함께 참여한다. 다양한 정체성이 호명되는 것은 그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인공감 120’ 등 지속성이 중요한 사업들이 많이 계획된 가운데, 단발성 행사인 ‘연극의 해’를 통해 얼마나 추진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심 위원장은 “예술인복지재단이나 연극인복지재단 등에서 우리의 사업들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문체부와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2020 연극의 해’ 기자간담회 윤태욱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장 발언 모습

윤태욱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장은 “‘2020 연극의 해’ 사업 성과에 따라 연계 가능성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변화를 꿈꾸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극인들에게 ‘2020 연극의 해’가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은 단비가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효과는 정확한 곳에서 꾸준히 진행됨을 전제로 한다. 좋은 취지를 가진 연극인들이 뜻을 같이해 한배를 탔지만, 분명한 목적성과 지속적인 연료 공급이 없다면 이 배는 어중간한 위치에 멈춰 설 것이다. 간신히 땅에 발을 붙이고 있던 이들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 사업을 이끈 주역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