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09.12.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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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 자유로운 방황 '여름궁전'

<여름 궁전, 중국명: 이화원>은 2006년 칸느 영화제 경쟁 부문에 아시아권 영화로 유일하게 초청되었던 중국 감독 로우 예의 작품이다. 강한 멜로의 성격을 가진 청춘 드라마이지만 1989년 천안문광장 시위와 당시 대학생의 사랑과 격정, 성장통을 묘사함으로써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여름 궁전> 속에는 실제 천안문 시위 필름을 극중에 삽입시켜 영화적 현장감과 현실의 무게감을 잘 조화시켰다. 로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 중국의 사회적역사적 격변기라는 시간과 북경이란 공간을 그려 중국 당국으로부터 5년간 영화제작 금지조치를 받았고, 당시 보도에 의하면 이 영화로 벌어들인 수익금도 몰수당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어 화제를 낳은 <여름궁전>은 사실 충격적이다. 우리나라 감독들조차 과연 시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짙은 섹스 장면과 자유분방한 기숙사 생활을 아직도 사회주의 외피를 입고 입는 중국 감독이 묘사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쓸쓸한 표정 연기와 진솔한 화면 구성, 연출은 중국의 제5세대 감독이라 불리던 첸 가이거, 장 이모우 감독 등이 화려하게 등장한 20년 전 영화들에서 보이던 경이로움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로우 예 감독을 중국 작가주의 6세대 대표주자라 지칭하는데, 5세대들의 작품이 중국의 전근대성과 과거 모습을 그렸다면 후자는 현대 중국과 중국인의 고민을 들려주는 차이가 있다.

주인공 위홍은 조선족(북한과 중국 국경의 도문지방 출신. 아버지가 운영하는 낡은 가게에는 김일성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으로 1988년 북경의 북청대학에 입학한다.

북경에서 위홍은 엄마 없이 자란, 가난하며 중국 변방지방에서 온 아웃사이더이다. 외롭고 의미 없는 대학생활을 하던 위홍은 잘생기고 대학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우웨이를 만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목마름은 사랑을 할수록 오히려 위홍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서태후의 여름궁전 이화원을 배경으로 행복한 데이트를 나누던 둘의 사랑은 위홍의 불안과 방황, 대학가에 불어 닥친 정치적 대자보 열풍, ‘언론 자유 보장’, ‘나라의 주인은 인민이다’라는 피켓이 말해주는 1989년 천안문광장의 시위와 오버랩된다.

천안문광장으로 가는 대학생들은 환호와 열망에 가득 찬다. 그러나 광장의 시위 현장에서 발포되는 총소리와 흩어져 도망가는 학생들 속에서 위홍은 천안문 사건이 중국 사회의 큰 전환점이 되었듯 자신도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 도문으로 돌아간다.

이후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모스크바 변화, 1997년 홍콩 반환이라는 역사적 격동기가 이어지는데, 위홍은 여전히 중국 무한에서 저우웨이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며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좇는다. 10년이 지나 둘은 다시 만나지만 저우웨이가 쓸쓸히 돌아서며 그들의 사랑은 막을 내린다.

저우웨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중국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젊은이라면 한 번씩 겪을 수밖에 없는 특권이자 고통이다. 위홍을 연기한 학뢰(Hao Lei)의 흐느적거리는 눈빛 연기와 위홍의 친구 리타의 사랑과 그 밖의 주변 인물들이 촘촘히 위홍의 일기 속에 박혀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 낸다.

사랑에 빠진 20대 초반 여성의 심리묘사가 탁월했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느끼는 우리의 정서와 너무나 편할 정도로 잘 맞는다.

장쯔이 주연의 <자줏빛 나비:자호접 >, <수쥬>라는 영화를 보면 로우 예 감독의 작품이 궁금해질 것이다.

2006, 중ㆍ프 합작, 멜로, 로우 예 감독

황현옥 영화평론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