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위정자여, 나훈아를 말하지 말라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위정자여, 나훈아를 말하지 말라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20.10.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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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IMF(1998년)의 박세리와 코로나(2020년)의 나훈아. 두 사람이 내겐 똑같다. 그 땐 박세리고, 지금은 나훈아다. 힘들고 지친 대한국민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박세리하면 상록수(양희은 노래)가 연결된다. ‘저 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 ’ (김민기 작사, 작곡)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 땐 희망이 필요했다.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희망은 진작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추석이 온다 해도, 추석답지 않았다. 이럴 때 나훈아가 등장했다. 박세리의 맨발투혼처럼, 나훈아의 민소매열창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은, 저승에 가있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해서 노래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자에게, 나훈아는 푸념조로 노래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얼마나 어렵다는 걸, 그에게도 알려준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코로나시대를 살고 있는 ‘내일이 두려운’ 대한국민에게, 가황(歌皇) 나훈아는 그렇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노래가 애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취적이다. 힘센 락(rock)적인 사운드에 강한 비트(beat)가 ‘테스형’이 그리 들린다. 희망은 이미 희망이 아니고, 위로의 말조차 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나훈아는 그렇게 대한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왜 저래.” 

나훈아 콘서트를 보고, 정치인이 저마다 한 마디 했다. 참으로 가관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고 해도 이미 너무도 도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정치인들 반성 좀 하라고 넌지시 건넨 말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너무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꼴이 볼썽사납다. ‘아, 저들이 정말 저 정도인가?’   

나훈아는 콘서트 중간에 위정자(爲政者)라는 단어를 등장시키셨다. ‘정치를 행하는 사람’을 위정자라 한다. 나훈아가 말하는 ‘위정자’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정치인 = 위정자’일까? 나훈아의 발언을 떠오려보자. “국민의 힘이 생기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나훈아가 언급한 위정자를,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하려 한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위정자(爲政者)이고, 또 하나는 위정자(僞政者)이다. 위(爲)와 위(僞)의 차이는, 같은 발음일지라도 극명히 다르다. 위(爲)는 긍정이요, 위(僞)는 부정이다. 위(爲)는 행하는 것이고, 곧 베푸는 것이다. 위(僞)는 행하는 척 하는 것이고, 속이는 것이다. 지금의 위정자(爲政者) 중엔 위정자(僞政者)가 많다. “국민의 힘이 생기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진의(眞義)를 제대로 알아야 할 사람은 바로 위정자(爲政者)가 아닌가? 

나훈아는 결국 KBS 공영방송에 출연해서 위정자 (爲政者)가 위정자(僞政者)되지 않길 희망하면서 얘기를 했다. 그럼에도 행간의 의미조차 파악하지도 못하고 세치 혀를 나불대는 정치인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훈아에게 편승(便乘), 곧 ‘무임승차’해서 뭔가 자신의 진영의 입장과 논리로 만들려 했다. 아무리 착각도 자유라지만, 사태가 심각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 입 다물라’라고 일갈(一喝)하고 싶다.  

그 시절엔 “상록수”(양희은)란 노래가 필요했다. 지금의 우리에겐 ‘테스형’같은 노래를 필요하다. 세월을 원망하며, 사람을 다독인다. 지금 우리에게 딱 필요한 노래를 부른다. 트롯의 주된 정서가 그렇고, 나훈아의 노래가 특히 그렇다. 

나라에서 주는 훈장은 받지 않겠다고 일찍이 선언한 사람에게, 대한민국의 정치가는 아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군대를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는 아이돌에게, 대한민국정치가는 선심 쓰듯 그들을 군대에서 빼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위정자들이 자꾸 이렇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위정자(爲政者)와 위정자(僞政者)는 어떻게 다른가? 두 한자를 자세히 보라. ‘할’ 위 (爲)에는 인변 (亻)이 없고, ‘거짓’ 위(僞)에는 인변(亻)이 있다. 앞의 것은 신념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뒤의 것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여! 행한다는 [爲]의 미명아래서, 제발 나 자신, 나의 가족, 나의 주변, 더 나아 대한국민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편승해서, 참된 것을 저버리고 거짓을 행하지 말라. 

아이돌의 군복무와 관련한 뉴스를 접하면서, ‘아미’가 진정 BTS를 깊게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BTS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국회의원인가? ‘아미’인가? 아미의 성숙한 자세를 보았다. 그들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멀리 본다. 대한민국 위정자들도 그래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반문할 필요가 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들만큼 위로를 주었는가? 그들처럼 희망을 주었는가? 이미 상록수에서도 얘기했듯이, ‘돌보는 사람들 하나 없는데’ 대한국민들은 스스로 개척해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여! 당신은 나훈아와 BTS를 얘기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들의 발언 속에 예인(藝人)을 존경하는 진정성이 얼마큼 담겨져 있는가? 스스로 잘 판단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 관해 말하지 말라! 간청하노니,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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